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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이명박의 '노동관' 바꿀 수 있을까

10일 '친기업'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 '유력후보 줄서기' 논란

등록|2007.12.10 19:23 수정|2007.12.10 20:10

▲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 후보와의 정책협약 체결을 앞두고 환담하고 있다. ⓒ 남소연


"정통 보수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의 진보 운동을 하는 한국노총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아니겠나."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명박 후보와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정권 변화 시기에 힘 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떡고물이라도 주워먹어보자는 기회주의적 술수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공식 선언한 데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이명박 후보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모두 "새로운 노사정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정계와 노동계는 "사실상 지지율 1위 후보에 대한 밀어주기"라며 폄하했다.

이명박-이용득 "보수 정당과 진보 노동단체의 의미있는 연합"

한국노총은 10일 오전 이명박 후보와 '정책협약 협정서'를 체결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이 후보는 한국노총이 제시한 10대 정책요구 등의 실천을 약속받았다.

한국노총은 또한 이 후보 쪽이 사전에 작성한 정책요구 답변서 이행과 한국노총의 현안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한 논의의 장을 정례적으로 개최할 것을 추가로 약속 받았다.

한국노총이 제시한 10대 정책요구는 ▲비정규직의 편법적 남용규제 및 차별철폐 ▲노사발전재단 활성화와 고용정책․고용보험제도 개선 ▲노조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지급 보장 ▲연령차별금지 및 60세 정년보장법 제정 ▲사회적 대화기구 전면 확대 개편 등이다.

이명박 후보쪽은 이에 대해 대부분 '수용' 혹은 '부분적 수용' 등을 밝혔다. 다만 비정규직의 '고용 2년 이후 채용'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인력 활용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논의 필요' 의견을 내놓았다.

비정규직 해고의 빌미를 제공하는 법안에 대해 노동자 쪽 입장을 내놓지 않았음에도 한국노총은 총 투표자 23만 6679명 중 9만 8296명(42%)이 이 후보를 지지했다. 실제 투표 인원은 45만 6152명으로, 투표는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ARS로 실시됐다.

이 후보 다음으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7만 3311명·31%)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6만 5072명·27%)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정책연대에 응하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아 투표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인제 민주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등은 여론조사에서 10% 이상을 얻지 못해 대상에서 빠졌다.

10일 정오께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정책협약 체결식에는 이명박 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 후보는 "90만 회원들의 직접 선거로 정책 연대를 하게 된 것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용득 위원장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후보는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며 "한나라당은 이념적으로 실용 보수에 속한다, 우리는 일을 하고 계획하는 과정에서는 진보 진영보다 더 개혁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에 "정통 보수 정당이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다면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그 인식을 바꿔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책연대의 의미"라고 화답했다.

한나라당-한국노총 연대에 대한 차가운 시선

▲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 후보와 정책협약을 체결한 뒤 노총 관계자,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기호2번을 뜻하는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 남소연


하지만 '노동자들의 친기업적 후보 지지'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부에서는 "유력 후보에 대한 줄서기"로 한국노총 지지의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후보는 지난 7월 경선 중 열린 울산 합동연설회에서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파업을 없애겠다"고 밝힌 데 이어 9월 대구 중소기업인 타운미팅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비효율적이고 불법적이고 극렬한 노동운동을 하는 곳은 없다"며 사용자 편을 들었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에 대해 "노사 대립·적대적 상황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한국노총의 사회 개혁적 조합주의는 노사가 함께 사회적 역할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설사 이 후보가 그런(반 노동자적) 인식을 갖고 있어도 정책연대를 통해 이 후보의 인식을 바꿀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보의 인식 변화를 원하는 것이라면 굳이 한국노총이 이 후보를 지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민주노총은 즉각 "정책적 연대를 철회하라"며 한국노총을 압박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책연대는 정권변화 시기에 힘 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어보자는 기회주의적 술수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이 조합원 총투표 형식을 빌린 것은, 민주적 절차를 가장해서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한 계산"이라며 "총투표 대상인원은 49만 3480명인데 23만 6679명만 응답했고, 그 중 이 후보 지지는 9만 8296표로 응답자 과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 또한 이 후보를 향한 공세를 계속했다. 김현미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은 "한국노총은 반 노동자적인 이 후보와 정책연대를 중단하고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 노선을 선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후보 간 TV토론과 BBK 의혹 발표 이후 투표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문국현·이인제 후보 등을 배제한 것 또한 조합원 투표의 정당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반 노동자 경력, 심지어 노조 결성조차 인정하지 않는 이 후보와 연대하겠다는 한국노총 지도부의 발상은 실로 희한한 패러다임"이라며 "한국노총은 명분이나 실리도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일갈했다.

박 대변인은 "이 후보가 한국노총과 함께 한다고 해서 친 노동자적 후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노총 지도부는 노동자와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연대에 대해 역사 앞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후보 쪽 이혜연 대변인은 "이 후보가 현대건설 사장 시절 노조위원장을 납치, 폭행해 사법 처리됐음에도 한국노총이 이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은 한 마디로 자가당착이며 누워서 침뱉기"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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