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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커다란 껌은 누가 씹다 내뱉은 것인가

[시작 노트가 있는 나의 시 24] 지하도의 인간 껌

등록|2007.12.11 10:30 수정|2007.12.11 10:30


낡은 수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들이
지하도 바닥에 얼룩진 껌자국을 긁고 있다
거나하게 점심을 먹은 누군가가
단물이 빠지자마자 훅 뱉어버린 껌이
오가는 구둣발에 수없이 밟히고 또 밟혀서
바닥에 들러붙어버린 시꺼먼 껌자국을

지하도 바닥에 껌처럼 납작 달라붙어서
딱딱하게 굳은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박박 긁어대는 노동은 힘겨워도
긁어낸 자리들이 반짝반짝 윤기가 돌아
허리 한 번 쭈욱 펴고
이마에 솟아난 땀 팔뚝으로 훔칠 때마다
여인들은 웃고 떠드는데

저기, 아직 작업을 시작하지 않은
지하도 계단참에 눈길이 가 닿자
여인들의 웃음과 수다는 돌연 멈춘다
밑바닥 인생보다도 더 낮은 자세로
하루 종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사내,
오늘 운 좋게 긁어낸다고 해도
내일 아침이 되면 그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다시 달라붙을 저 커다란 껌은
누가 씹다 함부로 내뱉어버린 것인가!

<시작 노트>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이제는 그곳에서 손수 운전하기가 망설여져서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였다. 그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것이 바로 지하도 바닥에 마치 껌처럼 납작 달라붙어 엎드린 채, 행인들의 자비를 구걸하고 있는 걸인들의 부스스한 뒷통수나 때묻은 손바닥이었다.

어쩌다가 거기 그 자리에 달라붙게 되었는지, 누구의 입에서 뱉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달라붙어 있는 지하도의 인간 껌은 단물이 다 빠져버린 인생처럼 보여서 내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껌자국을 긁어내고 있는 나이든 아줌마들조차도 아직 건강한 노동의 땀방울을 흘릴 줄 아는데, 저들에게서는 그런 노동을 할 기운마저 없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도 어찌 처음부터 그러했겠는가. 단물 다 빠진 인생일망정 그래도 어찌 살아버려고 버둥거려 보았지만, 그때마다 무심한 구둣발들이 밟고 또 밟아서 저리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 역시도 그런 구둣발에 합세하여 그들을 밟고도 의식도 못한 채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계절, 지하도의 인간 껌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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