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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교류, '귀여니' 넘어 '박하사탕'으로?

[해외리포트] 한중수교 15년, 이창동 초청전 등 문화 교류 점차 활기

등록|2007.12.11 10:17 수정|2007.12.11 15:35

▲ 이창동 감독과 패널. ⓒ 조창완

"저는 이 감독님의 작품 중에 <박하사탕>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당대에 벌어진 사건인 '광주'를 배경으로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 중국에도 1989년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도 영화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관중)

"새로운 밀레니엄에 모든 이가 앞날을 말할 때, 나는 한국 역사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80년 광주와 IMF 사태에요. 그 시기는 개인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보편적으로 만난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1989년 천안문을 아는데, 어떤 사회나 사람도 그런 변화의 시간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가 문제이지요." (이창동 감독)

중국, 그것도 정치의 중심이자 사건의 현장이던 베이징 중심에서 한 관중이 한 말은 참석자들을 아연 긴장하게 했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은 지금까지도 중국 내에서 최고의 금기에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관중의 질문에 놀란 것은 오히려 한국 쪽 참가자들이나 질문을 받은 이창동 감독이었다. 중국 쪽 관계자나 관중은 오히려 냉정했다. 중국 사회가 이제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 사건 같은 일들을 역사의 터널에 들여보낼 수 있다는 것일까.

이미 몇몇 사람은 문혁 등 금기의 시간들에 앵글을 맞추고, 감독으로서는 사형선고인 제작금지 조치를 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은 당당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중국 영화계가 이제 당당히 문화대혁명은 물론이고 '1989년 천안문'에도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대화가 오간 곳은 12월 5일 베이징 중심에 위치한 주중한국문화원 회의실. 앞좌석 중앙에는 이창동 감독이 앉았고, 옆에는 다이진화 교수와 장시엔민 교수가 자리했다.

다이진화 교수는 베이징대에서 비교문화를 가르치며 중국 영화의 전개상황을 다룬 <안개속의 풍경> 등을 쓴 문화 전문가이고, 장시엔민 교수는 베이징영화아카데미 교수이자 <무산운우>의 주인공이기도 한 연기자이자 학자이다.

주중 한국문화원이 5~6일 마련한 '이창동 감독 베이징 초청전'의 일환으로 이 감독과 중국 관객 300여명이 나눈 대화는 천천히 진행됐고, 후반에는 점차 공감의 폭도 넓어졌다. 어차피 영화인의 숙명이나 고민은 비슷했기 때문이다. 중국 참가자들은 한 발 앞서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 영화의 노하우를 듣고 싶어 했다. 특히 이 감독이 문화부장관을 역임했기에 중국 영화인들이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베이징에서 식당 내려던 이창동, 중국 관객을 만나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보편적인 고민들을 이야기했고, 중국 측에서는 흥미진진하게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 감독은 말주변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날은 1994년 베이징에서 식당을 해보려고 건물을 살펴보고 인테리어를 해보려고 시도했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공감의 폭을 넓혔다.

"장이모 등 5세대 감독 이전의 영화를 접할 기회는 적었지만, 중국 영화에서 다른 나라 영화와는 다른 힘을 느낀다. 한국 영화는 이미 상업화되어 영화의 본연적인 힘을 잃은 듯하다. 중국은 우리 영화계에도 자극이 될 듯 하다." (이창동 감독)

그런데 이 감독의 이런 우호적 평가와 달리, 오히려 중국 관중은 5세대 이후 감독에 대한 비호감을 표명했다. 객석에서는 최근 5세대 감독의 영화가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며 화려한 미장센에만 몰두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감독도 그러한 점에는 동의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영화판 전체의 희생이 필요하다. 제작비·연기자·홍보·배급 등이 모두 이 공룡 같은 블록버스터에 치중한다. 그런데 이런 인프라가 없는 중국이 이런 꿈을 꾸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블록버스터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그 때문에 생기는 주변 환경의 희생이 너무 크다." (이창동 감독)

▲ 이창동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중. ⓒ 조창완

이야기는 스크린쿼터 등 한국 영화계의 경쟁력과 당면과제 등으로 흘러갔다. 이 감독은 한국영화 위기론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영화는 크게 발전했지만 늘 위기 상태라는 인식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위기가 제도적, 현실적인 문제에서 온 거라면 극복 가능하지만 창의성의 위기에서 온 거라면 극복하기 쉽지 않다. 나로서도 지금 상태가 어떤 위기인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결국 나 자신에게 귀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출구가 없는 위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창동 감독)

그밖에도 영화에 나타난 기독교, 연기자 문제,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둔 감독의 자기검열 문제 등이 오갔다. 이런 주제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일상적인 고민일지도 모르지만, 기자가 느끼기엔 중국 쪽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말들이 많았다.

한중수교 후 15년 동안 한국에 출시된 영화는 대부분 중국에서 출시됐다. 99.9%는 불법 복제된 VCD나 DVD였다. <엽기적인 그녀>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실상 한중간에 영화교류라고 할 만한 일들은 산발적으로만 이뤄졌다. 합작 영화 시도 등이 있었지만 서툰 커뮤니케이션 등 문제 때문에 대부분은 실패 사례만 남긴 채 막을 내렸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충분한 상호이해 없이 상대방의 좋은 점만 취하려는 거래는 결국 위기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번에는 한국문화원의 행사뿐 아니라 베이징영화아카데미에서 특별전과 간담회도 이뤄졌다. 여기에 감독이자 베이징영화아카데미 부학장인 정동톈 감독 등 굵직한 인사들도 적지 않게 참여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 행사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한 참석자들. ⓒ 조창완


통속문학 소개 수준 넘어 점차 활발해지는 문학 교류

최근의 이런 교류는 이창동 감독의 경우 외에도 많이 있다. 9월 3일에는 당대 한국 여성작가를 대표하는 박완서·은희경·신경숙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세 작가의 소설이 중국어로 출간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한중 문학인이 만나는 작은 장이기도 했다. 12월 12일에는 고은 시인과 소설가 김원일 등이 참가한 문학강연회도 열린다.

사실 수교 이후 15년 동안 한중 문학 교류는 상업성을 바탕으로 한 아주 기초적인 교류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중국에서 1차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한국 문학 작가는 귀여니와 김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귀여니의 경우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 한국에서 출간된 책이 대부분 출간되었으며, 일부 집계에서 2005년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등 공전의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하인의 소설 <국화꽃 향기>나 <목련꽃 그늘> 등도 중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밖에는 <대장금> <상도> 등 한류 드라마 열기에 편승한 몇몇 책이 인기를 끌었을 뿐이다.

▲ 신경숙 소설 <외딴방>의 중국어판. ⓒ

본격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번역되기도 어려웠지만 출간되더라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2000년대 초부터 신경숙의 <외딴 방(중국어판 제목은 '單人房', 인민문학출판사 간)>, 황석영의 <손님(중국어판 제목은 '客人', 상해역문출판사 간)>을 비롯해 은희경(<메이저리그>)·강석경(<숲속의 방>)·박경리(<김약국의 딸들>)·김인숙·권지예·이문열·구효서·윤대녕 등의 소설도 번역됐지만 대부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는 인터넷 소설 등 통속 소설이 주류를 차지하는 중국 문학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다. 중국 문단에도 위화나 지아핑야오 등 본격문학 작가들이 몇몇 있지만, 문단에서 득세하는 것은 궈징밍처럼 가벼운 연예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태반이다.

반면에 한국에 소개된 중국 문학에선 본격 문학이 주류다.

위화는 최근 출간한 <형제>로 여전히 문학 한류(漢流)의 주류임을 과시했다. 이밖에도 쑤통·모옌·류헝 등의 작가 등은 사회주의 문학 창작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독특한 자기 세계를 갖춘, 의식 있는 본격 문학 작가들이다.

이처럼 중국의 본격문학 작가들은 한국 내에서 시장이 형성되고 적극적으로 소개되지만, 중국에서 한국의 본격문학 작가들은 아직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가벼운 통속문학 작가들이 한국 문학의 대표 주자처럼 소개되고 군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재 무너뜨린 한국의 문화 경험... 중국 정치권에는 부담될 수도

상업성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진행되는 이런 흐름에 양국 문학 교류를 의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다행히 이런 판도는 올 들어서 급속히 변하기 시작했다. 9월 여성 작가들의 방문에 이어 12월 12일에는 대산문화재단 등에서 주최하는 한중문학인대회가 열린다.

이런 자리들에선 양국 문학 교류에서 가장 기본인 번역작업, 작가 간 교류 사업, 연구 지원 등이 포괄적으로 논의된다. 문화인들의 만남은 정치 논리로만 움직이는 외교 관계를 떠나 인간적인 유대와 메시지를 형성하는 데 소중하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들이다.

이창동 감독과 만난 이번 행사는 10일 폐막한 '한국교류의 해' 행사의 일원으로 열렸다. 특히 올해 초에 베이징 중심가에 새로 터전을 마련한 주중한국문화원이 중심이 됐다. 한중 서예교류전, 한중 화가교류전 등은 물론이고 한국 연극이나 공연 등을 소개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향후 이런 교류들이 어떤 모습을 띌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 정치권으로서는 이미 민주화 과정을 거친 한국 문화인들의 정서가 중국 문화인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는 게 한 중국 언론인의 귀띔이다. 반면 한국 문화계에도 여전히 저작권 보호 등이 부실해 부가가치를 만들기 어려운 중국에서 문화 활동을 펼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존재한다.

최근 일련의 활동들로 한국과 중국은 일단 좋은 문화교류의 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 주중한국문화원.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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