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TV토론 보느니, 원더걸스 보겠다"
[현장] 각 후보 지지하는 20대 젊은이들의 취중토크
▲ 각 후보를 지지하는 20대 유권자들. 사진 왼쪽 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규화, 홍승표, 김보민, 이동학, 김진성, 박승종 씨. ⓒ 나영준
이념이 아닌 경제가 중요한 시대. '민주화'란 단어가 지난 시절만큼 절박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그 원인을 오롯이 젊은이들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만이 '절대 선'이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후보도 각각, 지지 이유도 제각각
▲ 이명박 후보 지지자인 박승종(27)씨. ⓒ 나영준
박승종(27·이명박 지지) "숭실대 경영학과 4학년이다. 많은 친구들이 '너는 왜 이명박 같은 사람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중 40~50대를 생각하라고 한다. 지금 5년을 잘 보내야 한다. 그 답이 바로 이명박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고 현대에서 몸바쳤다. 또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이 찾지 않나. 많은 경제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분이다. 때문에 '왜 이명박 같은 사람을 선택 안 하냐'고 묻는다."
김진성(27·이인제 지지) "현재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예전에 음료회사에서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는데 회사도 잘리고 막막했다. 그 때 실업자 급여수당을 60만원씩 6개월을 타게 됐다. 굉장히 고마웠는데 알고 보니 이인제 후보가 노동부 장관시절 하신 일이었다. 바로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와 닿는 일을 하신 거다.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이동학(26·정동영 지지) "경기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도자의 선택 기준은 세 가지 정도라고 본다. 정책과 공약, 그것을 실행할 만한 능력과 자질, 그리고 각 면면에 새겨진 철학이라고 본다. 그 기준에 맞춰 몇 번을 뜯어보고 뒤집어 봐도 정동영 후보가 그나마 '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김보민(21·문국현 지지) "서강대 정외과 2학년이다. 친구들이 '놀러다닐 땐데 왜 후보지지 같은 걸 하냐'고 묻는다. '내가 살만한 나라를 만들 분을 뽑고 싶다'고 한다.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더럽다'라는 전제한다. 처음 정치외교학과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집에 돈 좀 있냐, 너희 아빠 뭐 하시니'라고 묻곤 했다. 또 친구들은 '어차피 대통령 누가 뽑혀도 정치는 더러운 거 아니냐'고 한다. 그런 의식을 바꿔줄 사람은 문국현 후보라고 생각한다."
최규화(26·권영길 지지) "고려대 국문과 4학년이다. 2002년 첫 투표권이 생겼을 때도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대학생이 되고 머리가 굵어지며 '사회가 이상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사회 모습이 드러나며 세상은 뒤틀어져 있단 걸 느꼈다. 누군가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민주노동당을 알게 됐다. 보수와 수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크기지만 부끄럽지 않은 당과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홍승표(27·이회창 지지) "연세대 법학과 3학년이다. 지도자나 CEO는 단면이 아닌 전체적인 면을 봐야 한다. 개미는 코끼리의 다리를 볼 뿐 전체적인 인식을 못 한다. 그런 면에서 국정운영을 두루 거쳤고, 정치·경제·안보 등 여러 방면에 있어 이 나라를 이끌어 주실 분은 이회창 후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는 정치인들, 투표하기 싫어진다
▲ 이회창 후보 지지자인 홍승표(27)씨. ⓒ 나영준
박승종(이명박) "삶이 너무 힘들어서다. 주위를 봐도 수업·도서관·자격증·아르바이트·인턴 등등.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기 삶도 가늠하기 힘든 이들이 어떤 후보의 정책을 보고 고민한다는 것이 힘들다. 기존 정치인들이 일자리 창출도 못 하고, 빈부격차만 늘여 놨다.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바로 보고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
김진성(이인제) "나는 대학을 안 가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예전엔 누가 돼도 똑같고, 심지어 내가 해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도 했다. 사실 투표라는 게 피부로 와 닿아야 할 마음이 생기는 거다. 내가 느끼지 못 하는데 하고 싶겠는가? 이인제 후보가 했던 많은 일들을 느꼈기에 이번에 투표를 할 마음이 생긴 거다."
이동학(정동영) "크게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1차적이고, 두 번째는 이 사회의 구조다. 젊은이들이 주체적인 발상을 못 하고 무기력하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90년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후 IMF가 터지며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됐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돼 버렸다. 대화를 해야 하는데, 과거 신한국당은 '20대는 다 빨갱이'로 몰았다. 그 때부터 젊은이들의 문제의식, 비판의식이 떨어지며 정치적 무관심이 시작됐다고 본다. 정당을 자극해서 제도적으로 20대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김보민(문국현)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다. 후보들 공약대로만 했으면 우리나라는 '원더랜드'다. 어차피 안 바뀔 거 왜 하냐는 거다. 내 또래가 첫 투표라 원래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후보들 TV토론을 본 친구들이 "저걸 5분 보느니, 원더걸스를 보겠다"라고 한다(일제히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이 서로 까 내리기에만 급급하다. 투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최규화(권영길)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지를 모르는 거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모습으로는 실현할 수 없기에, 누구보다 큰 좌절을 하고 있는 세대라고 본다. 정치는 '정치가'만이 하는 것이라고 묶어 둔 것이 문제다. 학생·직장인·농민 모두가 삶에서 정치를 할 수 있을 때 그런 무관심은 해소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홍승표(이회창) "정치인들의 무능함 때문이란 생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많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성교육은 하면서 왜 정작 중요한 정치 교육은 안 하는가. 구성애씨가 성교육을 시키듯이, 정치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 "이명박이 누구냐?"고 묻는 이도 있어
▲ 문국현 후보 지지자인 김보민씨가 직접 만든 홍보물을 나눠 주고 있다. ⓒ 나영준
▲ 문국현 후보 지지자인 김보민(21)씨. ⓒ 나영준
박승종(이명박) "다들 관심 없다. 심지어 지난 여름, 이명박 후보에 대해 물어보니 '그게 누군데'라고 되묻는 이도 있었다. 또 BBK 사건 때문에 김경준이 TV에 나오니 '저 사람 나중에 국회의원 나오는 거 아냐'라는 친구도 있었다. 답답하다. 사실상 마음 맞는 친구 한두 명 빼면 관심이 없다. 사실 부모님은 이회창 후보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TV를 보며 싸운 일도 있었다(웃음). 잘 설득시킬 생각이다."
김진성(이인제) "노량진에는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지지하는 이들도 제각각이다. 아직 지역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다. 영남·호남·충청권으로 갈려 지지한다. 지역감정은 문제라고 본다. 집에서는 아버지는 정동영, 어머니는 이회창 지지자라 세 사람 모두 다르다. 어머님이 완강하시다(웃음)."
이동학(정동영) "주변은 대개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 간혹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친구에게는 왜냐고 꼭 묻는다. '경제를 살려야지'라고 답하는데, '어떻게?'라고 물으면 말을 못 한다. 지지의 논리가 없다. 그래서 꼬박꼬박 짚어주면 철회를 한다. 어머님이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데 좀 더 이야기 나누어서 정동영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겠다."
김보민(문국현) "관심이 없진 않다.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본다. 포털사이트 첫머리가 정치기사 아닌가. 눌러는 보는데, 그냥 넘긴다. 나누는 이야기도 '허경영 후보가 결혼하면 돈 준다며?'정도의 흥미 위주다. 재미로만 보는 것 같아 아쉽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한나라당의 '짱' 팬이다. 노 대통령 당선 때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도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다니 성을 갈라고 하신다. 같을 순 없으니까, 토론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은 현상이라 본다."
최규화(권영길) "친구들이 '찍을 사람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먹고 살기 바쁜데 고민할 시간이 있냐고. 하지만 그걸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정치를 바꾸는 데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부모님 고향이 '한나라당이 허수아비를 세워도 당선된다'는 대구다. 사실 아버지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뻔 했는데, 어머님이 이혼서류를 내밀어서 간신히 무마가 됐다(웃음).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 대안이 달랐던 것뿐이다. 지금은 아버지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주신다."
홍승표(이회창)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 한 구청장의 선거운동원을 한 경험이 있다. 세 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연설 때는 심하게 서로를 헐뜯지만 사석에서는 서로 반갑게 웃으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지금 대선 레이스를 달리는 후보들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챙겨주는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끼리의 만남. 조금은 어색했던 첫 인사.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서로를 위해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며 밝은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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