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접시는 딸 줄 거, 한접시는 우리 밥상에.. ⓒ 정현순
"엄마 이게 무슨 맛이지?""먹어 보고 알아 맞춰 봐.""음…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맛도 나고…. 그런데 밀가루 맛은 아닌 것같고. 엄마 도대체 무슨 맛이야?" 딸아이가 먹어보고도 맛을 잘 모르겠나보다. "이거 늙은 호박전이야. 맛이 어떠니?""음… 괜찮은데… 엄마가 개발한 거야?""개발? 맞아 개발한 거야." 조금씩 떼어서 손자들에게도 먹여본다. 맵지 않아서인가 잘 받아먹는다.
▲ 호박자르고 ,믹서에갈고, 찹쌀도 갈고.. ⓒ 정현순
지난 주말 호박죽을 준비하다가 매번 호박죽만 끓여 먹을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한번 만들어 먹어 볼 생각이 들어 조금 남겨놨다. 늙은 호박전은 어떨까?하는생각이 들었다. 하여 일단은 잘게 썰어 놓은 늙은 호박을 믹서에 곱게 갈았다. 찹쌀도 물에 불려 믹서에 곱게 갈았다.
늙은 호박만 넣고 부치면 재미가 없을 듯해서 집에 있는 채소도 준비했다. 팽이버섯, 감자. 당근, 파를 잘게 썰어 호박, 찹쌀과 소금, 후추를 함께 넣고 섞어주었다. 그곳에 계란도 두개 풀어서 섞어주었다. 모두 넣고 섞어주면서도 끈기가 없어 부치기가 어려울 듯했다.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반죽해 놓은 재료를 한숟갈씩 덜어서 프라이팬에 올려놓았다. 반죽이 끈기가 없어 크게 부치면 더욱 어렵기 때문에 모양을 작게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한 대로 뒤집기가 만만치 않았다. 처음 몇번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렇다면 밀가루를 조금 더 섞어줄까? 찹쌀가루가 들어갔는데 밀가루를 넣어준다면 그 맛이 어떨까? 망설이다가 기름을 조금 넉넉히 두르고 성급하게 뒤집지 않고 노릿노릿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후 뒤집으니 망가지지 않고 그런대로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망가진 늙은 호박전을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호박의 고소함과 버섯의 쫄깃쫄깃함, 금세 나온 따끈함이 어우러져 몇개나 집어 먹었는지 결국 난 저녁을 먹지 못했다. 늙은 호박전을 부치다가 나름대로 별미라 생각이 들어 딸아이한테 한접시를 가져다 주기로 한 것이다. 한접시 담아서 딸아이 집에 가는 도중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남편을 만났다. "오늘(12일)늙은 호박전 부쳤는데 이거 우진이네 갖다 주려고.""맛있어?" "나는 맛있는데 모르지." 저녁상을 차리면서 늙은 호박전을 한접시 올려놓았다. 평소 기름에 부친 전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양념장에 찍어서 먹으면 먹을 만해"하고 일렀다. 남편은 호박전 하나를 집어 들더니 "늙은 호박이 건강에 좋다니깐 많이 먹어야 해"한다. 저녁을 먹지 않은 나는 다른 일을 한 뒤 남편이 저녁밥을 다 먹은 밥상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접시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특별히 맛이 있다기보다는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이라 다 먹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남편의 늙은 호박 사랑은 정말이지 말릴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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