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성공한 노예, 그것이 우리가 바라던 삶인가?

<부유한 노예>가 말하는 알짜배기 삶

등록|2007.12.14 10:09 수정|2007.12.14 10:48

<부유한 노예>겉그림 ⓒ 김영사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옥스퍼드를 거쳐 예일 법대를 나온 후 옥스퍼드 유학길에서 우연히 만난 빌 클린턴과 우정을 맺은 후 클린턴 행정부 구성 시기에 경제정책 인수팀을 이끌고 행정부 인사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 그리고 노동부 장관직에도 오르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 로버트 라이시.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간 로버트 라이시. 그가 오늘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에 바빴던 로버트 라이시는 인사를 하기 위해 막내 방을 찾아갑니다.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눈짓 한 번 주고 출근하려던 그는 귀여운 막내 아이에게서 들은 한 마디에 뜬금없이 혼자 충격을 받고 서둘러 사표를 쓰게 됩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그는 이후에도 또 다른 영광을 누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가 되어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힘들어서도 그렇다고 일에 흥미를 잃어서도 아니었는데 그는 왜 갑자기 모든 ‘화려한 영광’을 내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갔을까요? 그는 도대체 왜 그랬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은 이렇게 힘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탐욕과 야망의 끝은 어디일까? -애덤 스미스<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
(<부유한 노예> 328쪽에서 재인용)

풍요로운 삶 또는 잃어버린 삶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로버트 라이시는 아직 잠이 덜 깬 막내 아이가 잠결에 흘린 말 한 마디에 그만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저녁에 자신을 깨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저녁에 늦게 올 것 같아서 아이에게는 자기가 오기 전에 이미 잠들어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꼭 저녁에 자신을 깨워달라고 다시 부탁했습니다. 그는 이상하다 여기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단지 아빠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로서 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그 단순한 말을 들었을 뿐인데, 막내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 이후 그는 자신이 살아 온 삶 모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삐 살아 온 이유가 자신뿐 아니라 가정을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다니 또는 잘못되었다니, 무엇이 그리고 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리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본문 10쪽)

막내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는 로버트 라이시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고 <부유한 노예>를 통해 다시 다른 사람 삶도 바뀌기를 그는 바라고 있습니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나가는 것’ 사이에 뭔가 깊은 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아마도 성공 신화에 빠진 듯 보이는 자기 삶을 싫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부유한 노예’라는 별칭을 선물하려 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모든 일을 접을지언정 그 선물을 받으려 하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책 제목(<The Future of Success>)이 말해주듯, 그는 먼 훗날 자기 삶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전까지 이루었던 모든 ‘성공’ 곧 부러움을 받았을 영광스러운 삶을 한 순간에 내던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요구하던 성공 신화를 깨버리고 ‘진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말하고 싶었던 ‘진짜’ 삶, 그 삶은 어떤 삶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신경제가 주는 여러 혜택은 더 필사적인 삶, 불안감,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분화 현상의 심화라는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본문 16쪽)

끊임없이 ‘좀 더’를 속삭이는 세상에서 훌쩍 떠나버린 그는 무엇을 회복하고 싶었을까요?

“신경제가 대단한 것만큼이나 우리는 삶의 일부를 신경제에게 빼앗기고 있다. 가족과의 삶, 우정, 지역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의 일부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손실은 우리가 얻고 있는 혜택과 함께 발생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본문 17쪽)

선택,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러고 싶어할까?

로버트 라이시는 해마다 아니 어찌 보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과 기술 한 가운데서 살던 삶이 자연스러운 삶이 아니라 각본에 따라 미리 짜인 삶 같다고 느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좋은 세상에서 산다고 여기던 그가 어느 날 발견한 것은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는 지금껏 자기 자신을 둘러싼 ‘진짜 세상’ 곧 사람, 가정 그리고 자기 자신을 철저히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을 했던 막내 아이 말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리고 저는 ‘진짜’ 세상에서 ‘진짜’ 삶을 살고 있나요?

“성공적인 삶의 척도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나 가지고 있는 재산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은 분명하다. 성공적인 사회의 척도 역시 국민총생산의 범위를 넘어선다. 우리의 정신적인 발판, 관계의 풍성함, 무너지지 않는 가족, 지역 사회의 성격 등이 성공을 좌우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자·투자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넘어서게 되면 새로운 시대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이, 아니 어쩌면 맹목적으로 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본문 349쪽)

그는 사실상 의도적으로 이 책을 세 부분으로 구성했고 양쪽 모두를 생각해야 할 선택 아닌 선택 두 가지를 내어 놓습니다. 1부는 ‘새로운 일’, 2부는 ‘새로운 삶’, 그리고 3부는 ‘선택’이라는 점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신기술이 몰고 온 신경제에서 그는 더 나은 삶을 산 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 더 나은 것을 얻는 대신 ‘진짜’ 필요한 그 무엇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줄기차게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되묻고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로버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거보다 더 풍요로워졌고 앞으로도 더 풍요로워질 세상이 결코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무턱대고 믿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물론 경제적 활동을 무작정 죄악시하고 내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리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지 무작정 이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부러워하던 삶이었고 그가 맡은 막중한 임무가 지닌 중요성을 생각해서라도 굳게 지켜내야 했을 삶을 그는 정말 헌신짝처럼 한순간에 버렸습니다. 그가 한 결정을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고 더욱이 강하게 비난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의 결정을 두고 이기적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그런 비난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달라진 자기 삶을 세상 사람과 나눌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런 비난에 대해 적절한 해명을 아니 분명하고 적극적인 반박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기 자신조차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잘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그가 이 책을 쓰며 마음에 둔 유일한 걱정은 이 책을 읽는 이도 자신과 같은 결정을 할지 아니 적어도 그런 삶에 대해 고민해 볼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빠른 속도와 선뜻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 그리고 일들에 내몰려 앞으로만 가는 세상을 보며 그는 이제는 차라리 혼잣말을 하듯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러고 싶어 할까?- 이것이 문제다.
덧붙이는 글 <부유한 노예> 로버트 라이시 지음. 오성호 옮김. 서울: 김영사, 2001.
(원제) The Furture of Success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