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향 그윽한 이 곳이 폐교라고?
[폐교가 살아야 마을도 되살아난다 ②]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전교생 100명 미만 학교를 통폐합하는 정부 정책으로 폐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폐교 활용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활용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는 지역도 적지 않고, 교육부의 폐교 매각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폐교가 살아야 마을도 살아난다'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아울러 최근 개교한 오마이스쿨에서 12월 20일부터 1박 2일 동안 바람직한 폐교 활용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 차 만드는 실습 모습 ⓒ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제공
겨울 섬진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검은 바위들을 어루만지며 흐르고 있는 강물은 더욱 고요하다.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도 섬진강만큼이나 조용하다. 겨울이어서 교육생들도 하나 없는 교육원에 혜우 스님만이 은은한 차처럼 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혜우 스님은 차 만드는 법을 배우지 못해 20여 년 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전통 덖음차와 그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 만드는 이와 마시는 이의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제다 교육원을 만들었다.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에서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실비로 제다법을 배울 수 있다.
"차 만드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저도 이십 년 동안 혼자서 속을 앓아가며 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깨 너머로 차 만드는 것을 배우다보니 제대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차 품질도 많이 떨어집니다. 저처럼 어깨 너머로만 배우는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비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폐교를 얻어서 교육원을 열었습니다."
차 만드는 사람에게 차 만드는 기술은 생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들에게 잘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서 싸안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차 만드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차를 만들어 그 맛과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 만드는 교육도 제대로 하고 좋은 차를 만드는 비법을 공유해야만 경쟁력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에 제다 교육원을 설립했다.
▲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알림판 ⓒ 서종규
▲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모습 ⓒ 서종규
14일 오후 3시, 섬진강을 따라 압록에서 구례구역에 못 미친 비룡초등학교 폐교자리(순천시 황전면 비촌리)에 위치한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을 찾았다. 이곳은 해마다 제다의 절정기인 5월 중순 이후에 차 농가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통 덖음차 만드는 교육을 실비만 받고 하고 있다.
현재 제다원 자리는 원래는 비룡초등학교가 위치하던 곳이다. 폐교가 되자 순천시가 교육청에서 매입, 공무원 하계 휴양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혜우 스님은 2004년 12월에 5년 계약으로 폐교를 임대했고, 제다 실습장과 강의실, 다실 등의 설비를 갖추어 2005년 3월 19일 제다교육원을 개원했다.
덖음차 제조 체험 교육은 1일이면 가능하다. 이론 교육 2시간, 직접 차를 만들어 평가까지 하는 실습 6시간, 이렇게 8시간 수업으로 짜여져 있다. 경남 밀양·하동·화계, 전남 해남·강진·순천·구례 등에서 연간 500여명이 찾아와 제다 교육을 받았다.
또 작목반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제다 교육도 하고 있다. 이들은 4~5년 동안 지속적으로 차 만드는 법을 배우는데 제다원을 찾아와 배우는 것은 물론 혜우 스님이 직접 작목반을 방문해 1:1로 지도하기도 한다.
▲ 혜우 스님의 전통 덖음차 제다법 교육 모습 ⓒ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제공
경남 밀양에서 1만2000㎡의 땅에 차나무를 심고 7년째 차를 재배하고 있는 손돈(60·다암농원)씨는 이곳에서 차 만드는 법을 3년째 배우고 있다. 제다 교육은 특성상 봄 한철에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배움에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손씨는 앞으로 곧 밀양에서 난 차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자랑한다.
"차를 만드는 실습에서 차를 만들면 스님께서 맛을 보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해 주십니다. 물·온도 등 미세한 것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차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과정을 계속 배워 나가서 너무 좋습니다."
혜우 스님은 사람들이 차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역설적으로 "(차가) 특별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온 만큼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복잡하고 바쁜 현대인들이 자칫하면 잊어 버리고 소홀하게 생각하기 쉬운 대화법을 알게 하고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 덖음솥 ⓒ 서종규
▲ 덖음차 만드는 곳 ⓒ 서종규
▲ 널어 놓은 덖음차 ⓒ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제공
제다원은 특별한 정부 지원이 없어 연간 임대료 900만원, 운영비 2000여만원 등이 든다. 재정적인 부분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혜우 스님은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제대로 된 차를 알리기 위해 제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혜우 스님은 폐교를 폐교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폐교가 되기 이전에는 엄연한 교육기관인 학교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꿈과 희망을 키웠기 때문에 단순히 재산적인 가치만 따질 수는 없다는 것. 때문에 방치되는 폐교를 매각하기 보다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것은 기술일 수도 있고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인 무형 자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펼치려면 장소가 필요하고 그 장소를 운영할 자금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들 형편이 그렇지 못합니다.
유형의 자산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무형의 문화가 오히려 더 큰 자산이 될 수 있는데, 우리 정부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눈앞의 자산에만 급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부가 폐교를 활용할 수 있게 적극적이고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면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와 차나무들이 참새의 혀만큼 새싹을 내놓을 때에 다시 와 차 만드는 실습을 해보라고 혜우 스님은 권한다. 실습비가 없으면 그냥 몸만 와서 전통 덖음차 한 잔을 마셔도 된단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 덖음차 비법을 전수하니 섬진강물만큼이나 맑은 기쁨이 밀려온다고 미소 짓는다.
▲ 섬진강 건너에서 바라본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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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혜우 전통 덖음차 제다교육원: 061-782-1443, 전남 순천시 황전면 비촌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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