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그릇으로 행복한 오후의 낙서
[해운대 명물, 할매 국밥 집] 따뜻한 국밥도 먹고 낙서도 읽고
'음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성실한 사랑은 없다.'(G. B. 쇼, <인간과 초인> 중에서)
날씨가 추우면 괜히 출출해집니다. 어디 싸고 따뜻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을까 하고 떠올리다 보면, 콩나물 쇠고기 국밥집으로 자연 발길이 갑니다.
해운대 31번 종점 앞은 해운대 쇠고기 국밥집이 여러 집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국밥집이 진짜 원조 할매 국밥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이 거의 '원조 할매 국밥집' 이름을 달고 있네요.
해운대의 명물이 된 해운대 쇠고기 국밥집. 국밥집 앞은 31번 종점이고, 뒷편은 36 번 종점이 있어서, 외지 관광객은 뜨내기 손님이지만 단골손님은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많습니다. 사실 운전기사 아저씨들의 단골 음식점은 대부분 가격이 싸고 맛 있는 집이랍니다.
국밥이 나오길 기다리다보니 온통 벽이 낙서로 가득합니다. 무얼 쓴 것일까, 다가가서 읽어보니 정말 재미난 사연이 많습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왔다 간다… 등 많은 사연의 낙서가 벽화를 그리고 있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갖다 놓은 줄 모르고 낙서를 읽었습니다.
어린이만 낙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낙서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낙서를 하는 심리와 음식을 먹는 심리는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화가 나면 마구 먹어서 해소하는 것처럼, 낙서를 하면 마음에 가득한 이야기를 아무런 형식 없이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서는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좋다고 합니만, 낙서를 하는 심리는 과거의 추억이자 미래의 욕망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나도 살짝 여러 사람들이 쓴 많은 낙서 속에 간단한 낙서와 내 이름도 적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다녀간 손님들의 사인만 전시해 둔 벽면도 있었습니다. 더러 유명 배우와 탤런트, 운동선수 등의 이름도 보입니다. 그런데 낙서가 천정까지 넝쿨처럼 뻗어 있네요.
속담처럼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의 맛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따뜻해서 추위와 출출한 허기를 채우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한 그릇에 2500원이면 돼지국밥보다 싼 가격인데, 여기에 간단한 음료와 따뜻한 한방차까지 무료로 마실 수 있어서 모처럼 행복했습니다.
따뜻한 국밥 한그릇 먹고 나니,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잠시나마 부자가 된 기분이 드네요.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데, 부산 시내 한바퀴 돈 31번, 200번 버스들이 줄줄이 들어와 섰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기사 아저씨들을 환영하는 듯, '저희 집에서 먹고 가세요' ' 우리 집에서 자시고 가세요', 색깔 고운 행주치마를 입은 국밥집 아줌마들이 서로 우리 집이 맛있다고 호객합니다. 해운대 화려한 네온 불빛도 하나 둘 별처럼 환해 옵니다.
어둑해진 하늘을 쳐다보니 국밥처럼 항상 따뜻했던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고, 국밥 한그릇에 어머니의 사랑을 찡하게 느낄 수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나도 참 알 수가 없네요. 여태껏 살아오면서 '국밥 한그릇'에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 이렇게 많은 국밥집 어디가 원조 할매 국밥집이지 ?낙서가 너무 재미있어요. ⓒ 송유미
날씨가 추우면 괜히 출출해집니다. 어디 싸고 따뜻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을까 하고 떠올리다 보면, 콩나물 쇠고기 국밥집으로 자연 발길이 갑니다.
해운대 31번 종점 앞은 해운대 쇠고기 국밥집이 여러 집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국밥집이 진짜 원조 할매 국밥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이 거의 '원조 할매 국밥집' 이름을 달고 있네요.
해운대의 명물이 된 해운대 쇠고기 국밥집. 국밥집 앞은 31번 종점이고, 뒷편은 36 번 종점이 있어서, 외지 관광객은 뜨내기 손님이지만 단골손님은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많습니다. 사실 운전기사 아저씨들의 단골 음식점은 대부분 가격이 싸고 맛 있는 집이랍니다.
▲ 국밥도 먹고 낙서도 하고국밥 나올 동안 낙서 읽는다. ⓒ 송유미
국밥이 나오길 기다리다보니 온통 벽이 낙서로 가득합니다. 무얼 쓴 것일까, 다가가서 읽어보니 정말 재미난 사연이 많습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왔다 간다… 등 많은 사연의 낙서가 벽화를 그리고 있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갖다 놓은 줄 모르고 낙서를 읽었습니다.
어린이만 낙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낙서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낙서를 하는 심리와 음식을 먹는 심리는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화가 나면 마구 먹어서 해소하는 것처럼, 낙서를 하면 마음에 가득한 이야기를 아무런 형식 없이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서는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좋다고 합니만, 낙서를 하는 심리는 과거의 추억이자 미래의 욕망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나도 살짝 여러 사람들이 쓴 많은 낙서 속에 간단한 낙서와 내 이름도 적어 넣었습니다.
▲ 낙서는 과거의 추억이자미래의 욕망이다. ⓒ 송유미
그런데 다녀간 손님들의 사인만 전시해 둔 벽면도 있었습니다. 더러 유명 배우와 탤런트, 운동선수 등의 이름도 보입니다. 그런데 낙서가 천정까지 넝쿨처럼 뻗어 있네요.
속담처럼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의 맛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따뜻해서 추위와 출출한 허기를 채우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한 그릇에 2500원이면 돼지국밥보다 싼 가격인데, 여기에 간단한 음료와 따뜻한 한방차까지 무료로 마실 수 있어서 모처럼 행복했습니다.
▲ 온통 벽이 낙서가 가득합니다.배가 고픈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것은 아닐까요 ? ⓒ 송유미
▲ 운전 기사 아저씨들의 단골 국밥집들은싸고 맛 있어서, 해운대 명물이 되었습니다. ⓒ 송유미
따뜻한 국밥 한그릇 먹고 나니,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잠시나마 부자가 된 기분이 드네요.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데, 부산 시내 한바퀴 돈 31번, 200번 버스들이 줄줄이 들어와 섰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기사 아저씨들을 환영하는 듯, '저희 집에서 먹고 가세요' ' 우리 집에서 자시고 가세요', 색깔 고운 행주치마를 입은 국밥집 아줌마들이 서로 우리 집이 맛있다고 호객합니다. 해운대 화려한 네온 불빛도 하나 둘 별처럼 환해 옵니다.
어둑해진 하늘을 쳐다보니 국밥처럼 항상 따뜻했던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고, 국밥 한그릇에 어머니의 사랑을 찡하게 느낄 수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나도 참 알 수가 없네요. 여태껏 살아오면서 '국밥 한그릇'에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 쇠고기 국밥 한 그릇 2500원인데요음료와 한방차는 무료면, 너무 싸네요. ⓒ 송유미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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