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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 헛꽃만이 백제 병사처럼 산성을 지키고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8호 질현성을 가다

등록|2007.12.16 17:38 수정|2007.12.17 09:47

▲ 멀리서 바라본 질현성(우)과 보루(좌). 질현성이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축조된 보를 6개나 쌓았다. ⓒ 안병기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질현성

용삭 2년(662) 7월에 인원과 인궤 등은 웅진 동쪽에서 복신의 남은 군사들을 크게 깨뜨리고 지라성(支羅城) 및 윤성(尹城)과 대산책(大山柵)·사정책(沙井柵) 등의 목책을 함락시켜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곧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당 용삭 2년 7월조

<삼국사기>에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 중의 하나로 기록돼 있는 지라성. 지라성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대전광역시 동구 비래동 댕이에서 동구 주산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엔 '질티'라는 고개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8호 질현성이 있는 곳이다.

산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곳이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지라성으로 비정한다. 지라성이라는 이름이 '지라 - 지리 - 질'로 음운변천 과정을 거쳐 질현성이 됐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돌탑이 된 질현성의 보루. ⓒ 안병기


질현성을 찾아간다. 계족산 절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해발 300여 m를 조금 넘을까 말까 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즐거움과 산책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이다.  좌측으로 몸을 돌리면 푸른 대청호가 시원한 눈맛을 안겨주고,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질현성으로 가는 길목엔 6개의 보루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냥 보루가 아니라 성(城) 형식으로 쌓은 보루들이다. 질현성을 지키려고 쌓은 작은 성이 6개나 되는 것은 이 성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이 보루들은 철저하게 허물어졌다. 무너져내린 성돌들은 누군가의 소원을 비는 돌탑이 되어 있다. 성을 쌓으려고 낑낑거리며 이곳까지 성돌들을 옮겨야 했을 백제 병사들의 노고가 빚어낸 꽃송이인가.

무너진 성벽에서 느끼는 역사의 실핏줄

▲ 허물어진 북벽. 봄이 되면 산수국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 안병기


▲ 겨울을 나는 산수국 헛꽃의 모습. ⓒ 안병기


북문(北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점을 통과해서 성안으로 들어선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둥글게 푹 꺼진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던 곳인가 보다. 왼쪽엔 북벽이 있고, 오른쪽엔 남벽이 있다. 북벽은 등산로 가까이 위치해 있다. 허물어진 돌무더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북벽으로 내려간다.

1000년 세월, 그 풍찬노속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허물어지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성벽을 바라보는 건 경이롭다. 저 성벽은 어떻게 시간의 덧없음, 제행무상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을까. 벌써 무너졌어야 마땅한 것이 여태 무너지지 않은 채로 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무너진 성벽에서 시간의 따스한 실핏줄을 느낀다. 그 가느다란 실핏줄을 통해서 역사는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목숨을 담보로 성을 공격하고, 성을 사수해야 했던 온갖 행위들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부질없음, 그 허무함이 내 마음 안에서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간 밤에 조금 내렸던 눈이 돌을 덮고 있다. 봄에 이곳에 오면 산수국이 지천이다. 여기저기 산수국 헛꽃들이 남아 있다. 저대로 겨울을 나는 것이다. 고난의 역사가 점철된 성터에선 꽃도 덩달아 시련을 견뎌야 하는가.

전략적 중요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지리적 위치

▲ 북벽에서 바라본 사적 355호 계족산성. ⓒ 안병기


▲ 북벽에서 바라본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5호 견두산성. ⓒ 안병기


▲ 동벽에서 바라본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1호 고봉산성. ⓒ 안병기


이 성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형태이다. 둘레 약 800m.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급의 산성이다. 그러나 질현성은 근방의 성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고리를 잇고 있다.

북쪽 약 5km 거리에는 계족산성과 개머리(犬頭)산성이 있다. 동쪽 250여 m 거리에는 고봉산성이 있으며, 대청호 건너 맞바라기에는 이름도 섬찟한 백골산성 있다. 또 남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동남쪽으론 대전-옥천간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전략적 중요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보루를 6개씩이나 쌓으면서 이 성을 지키고자 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성이 무너지면 그야말로 계족산성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이 두 성만 함락시키면 신라군은 파죽지세로 공주나 부여로 진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동벽에서 북벽으로 전환되는 곳에 아직도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성벽. ⓒ 안병기


▲ 허물어지지 않고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벽 일부. ⓒ 안병기


등산로를 따라 쭉 아래로 내려오면 북벽과 동벽이 잇닿는 지점에서 석축이 잘 남아 있는 성벽을 만난다. 대전 지역 40여 개의 산성을 답사하면서 느낀 점은 석축이 남아 있는 곳은 거의 동벽이라는 점이다. 동쪽에서 진격해 오는 신라군을 막으려다가 보니, 어느 쪽 성벽보다 동벽을 견고하게 쌓았던 모양이다.

남아 있는 성벽을 보면 장방형이다. 가공한 돌들을 바깥면에 맞추어 가지런히 쌓아 올린 것이다.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안으로 들여 쌓았는데, 군데군데 조그만 돌로서 쐐기를 박은 흔적도 남아 있다.

성벽은 대부분 흙을 깎아내고 바깥쪽에만 돌을 쌓았으나, 안팎으로 모두 돌을 쌓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넣었다. 흙으로 채워 넣은 부분은 현재 등산로가 되어 있다. 봄이 되면 이 길옆에서 생강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노란 꽃을 볼 수 있다.

먼 옛날에서 온 내 자아의 근원인 산성

▲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는 동벽. ⓒ 안병기


이 등산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남벽에 있었던 자리에 닿는다. 현재 보현사라는 절집이 들어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수구(水口)로 생각되는 곳이 있다. 이곳은 습기가 많아 항상 촉촉이 젖어 있다. 허물어진 돌무더기 사이에 쥐똥나무 한 그루가 까만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서 있다.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나무의 의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아까 보았던 무너지지 않은 성벽들 역시 역사에게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하고 싶은 돌의 의지인지도 모른다. 내 존재를 규명해달라는 옛 돌들의 소리없는 아우성. 역사를 탐구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한다. 옛 돌들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은 내 존재를 규명하는 것이다.

왜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는가. 왜 오늘 내 삶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 역사의 필연을 규명하는 것은 결국 내 존재를 규명하는 일이다. 내 자아는 실상  내 부모로부터 생성된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훨씬 먼 옛날로부터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자아의 근원을 찾는 것- 그것이 내가 산성을 찾아다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먼 옛날에서 온 내 자아에게 인사를 고하며 천천히 성을 내려간다. 이곳에 올 때마다 성의 모양이 변형되고 돌들이 점점 유실돼가는 것을 느낀다. 흘러가는 시간은 부질없지만, 역사를 아는 건 결코 부질없는 일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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