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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양심을 가졌던가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와 제자훈련의 한계

등록|2007.12.18 14:56 수정|2007.12.18 17:31

▲ 사랑의교회 원로인 옥한흠 목사는 대형교회가 아닌 제자훈련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사랑의교회는 대형교회가 되었고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 대형화는 제자훈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인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것인가. ⓒ 뉴스앤조이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는 지난 12월 16일, 사랑의교회 주일예배에서 설교했다. 제목은 '적은 누룩과 하나님 나라'. 이 설교에서 그는 제자훈련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이전과 똑같이 펼쳤다.

자신은 원래 대교회주의자가 아니며 대형교회 목사를 꿈꾸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제자훈련을 한다는 것은 대형교회와 정반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진리 위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에게 집중하는 사역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은 것이고, 교회는 누룩과 같이 작은 자, 약한 자, 실패한 자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거기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팽창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다수는 허수이고 무리는 허상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열두 명에게 혼신의 힘을 다 쏟으신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옥한흠 목사는 예수님이 그렇게 한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목회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절제했다고 설명했다. 교회 건물도 키우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교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어 미안하다고 했다.

원래는 대형교회 목사 될 생각 없었는데

옥한흠 목사는 윌로우크릭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의 고백에 대한 기자의 기사 일부를 인용하면서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평생 사역에 비추어본 것 같으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을지 두렵다고 했다.

기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담긴 문장, "'제자훈련에 목숨을 걸었다'고 여전히 떠들고 다니지만 실상은 '이벤트에 목숨 건' 채 교회 덩치를 키우고, 문어발식 교세 확장을 하고 있는 목사들은 이 교회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해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옥 목사도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제자훈련에 목숨 걸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옥 목사 한 사람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이벤트에 목숨 건 채 교회 덩치를 키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목사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원래 짝퉁을 욕하면 짝퉁은 자기를 욕하는지 깨닫지도 못하지만 되레 진품이 고통스러워하는 법이다.

근데 궁금한 것이 있다. '누룩'에 대한 것이다. 이날 설교에서도 누룩에 집중하면 그것이 팽창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여기서 팽창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그것을 수적인 부흥이나 성장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양적인 변화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윌로우크릭교회의 고민도 그런 것이지만,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의 결실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누룩이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질적인 변화. 이 부분에 이르면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의 결실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질적 변화를 일으켜왔던 성공적인 누룩의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의교회의 제자훈련이 실패했다고 감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 제자훈련의 모델로 일컬어지던 박성수 장로가 운영하는 이랜드의 노동자들은 일용할 양식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울부짖는, 철저하게 모순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뉴스앤조이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제자훈련을 한 장로'라고?

하지만 이 교회 장로인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을 보면, '제자훈련 한 장로 맞아?'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박성수 회장이 자신의 회사를 '누룩처럼' 부풀려 갈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도 '깨끗한 부자'라고 칭찬을 했고,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켜올렸다. 대부분의 유력한 목사들은 박 회장의 종교생활을 칭찬하면서 세금 잘 내고 뇌물 안 주고 사회봉사 열심히 하는 것을 강조한다. 하긴 돈으로 그의 신세 안 진 목사도 별로 없다. 삼성이 돈으로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모양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의 한 사업가가 독일이 지배하고 있는 폴란드에서 회사를 차렸다. 그는 처음에 나치와 결탁해 임금을 줄 필요가 없는 유태인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맞아 양심을 되찾고서는(제자훈련도 안 받았는데) 나치에게 뇌물을 바쳐서 수많은 유태인들을 살려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이야기이다.

쉰들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뇌물을 바쳤다. 하지만 박성수 회장은 뇌물을 안 바치기 위해 인간을 싸구려 노동 도구로 전락시켰다. 뇌물에도 수준이 있다.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 바치는 뇌물과 죽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바치는 뇌물은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뇌물을 바쳤느냐 안 바쳤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나는 뇌물 예찬론자가 아니다. 어느 것이 제자가 걸어가야 할 길일까. 제자훈련을 할 때 뇌물 안 바치는 것을 강조해야 할까 생명을 살리는 것을 강조해야 할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사람을 도구로 인식하고 이용하면서 살아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맘몬의 우상에 사로잡히면 화려한 신앙을 갖고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포도원에 일찍 나온 일꾼이나 늦게 나온 일꾼 모두에게 임금을 똑같이 주었다. '똑같이'만 얘기하면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뻔한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 '똑같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 마음이다. 주인이 똑같이 주고 싶으면 똑같이 주고, 다르게 주고 싶으면 다르게 주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똑같이 주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칠 맘은 없다. 그리고 주인과 일꾼이 그걸 미리 합의했는데 누가 불평할 수 있겠나.

중요한 것은 주인이 왜 먼저 온 자나 늦게 온 자나 '똑같이' 주려고 했을까 하는 그 마음이다. 그건 명절 보너스나 차등 성과급이 아니고, 그걸 받아야만 그의 가족들이 인간답게 하루를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일용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 순서가 결코 뒤로 처지지 않는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고

'먹는 것 갖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가 아무리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고, 게으르고, 불친절하고, 회사보다는 집안을 먼저 챙기는 이기주의자라 할지라도, '먹을 것 가지고 장난쳐서는 안 된다.'

농촌교회 목사와 도시교회 목사의 최소 생활비를 똑같이 주자고 하니까, 그렇게 되면 농촌교회 목사들이 목회를 열심히 안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해서, 아직도 많은 교단에서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고 있다. 목사들이 이 지경이니 그 입에서 하나님 말씀이 온전히 나올 수 있겠는가.

더러운 뇌물 안 주려고, 세금 잘 내려고, 십일조 열심히 내려고, 사회봉사 잘 하려고, 회사 덩치 키워서 젊은 청년 일자리 늘려주려고, 그래서 깨끗한 부자 되려고, 꼬리 안 되고 머리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받은 축복을 널리 간증하려고,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

예수님이 '뭐 먹을까 뭐 입을까 어디서 잘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한 것을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 '너는 그냥 하나님 나라와 그 의만 구해라. 네가 먹을 것 네가 입을 것 네가 잘 곳은 나한테 제자훈련 받은 누룩들이 챙겨줄 것이다'고 해석해보자.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이 먹고 입고 잘 것을 뻥튀기 튀기듯이 만들어내겠는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느라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제자훈련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해결해준다고 하면, 너무 이단적인 해석인가.

유명한 목사들이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공허하고 이상적인 소리 하지 말라고. 뇌물 안 주고, 세금 잘 내고, 십일조 잘 내고, 일용직이나 비정규직도 일용할 양식이 될 만큼의 봉급을 주면서 안 망할 회사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느냐고 혀를 찬다.

그냥 유명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목사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다. 예언자나 선지자로 살기보다는 제사장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다. 좋게 말하면 제사장이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굿판의 무당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뇌물 안 주고, 세금 잘 내고, 십일조 잘 내고, 일용직이나 비정규직도 일용할 양식이 될 만큼의 봉급을 주다가 좀 망하면 안 되나. 그러면 예수님이 망신당하나. 하나님나라가 무너지나. 제자훈련이 실패한 것인가.

교회 회개하자는 열변, 그 시간 밖에선 이랜드 노동자들이...

▲ 올해 7월, 수만 명의 기독교인이 모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옥한흠 목사는 교회의 각성과 회개를 촉구했다. ⓒ 뉴스앤조이


옥한흠 목사는 지난 7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 교회의 각성과 회개를 촉구했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경기장 안에서 옥한흠 목사는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열변을 토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의 상징인 박성수 회장에 의해서 쫓겨난 이랜드 노동자들이 탄식을 토했다.

이 모순 앞에서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한 질적 변화에 대해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정말 예수의 뒤를 좇는 예수의 제자를 만들고 있는지, 교회 안에서도 통하는 목사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지. 그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어보면 ‘훈련’은 조금 알겠는데 ‘제자’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열매로 드러나는 몇몇 제자를 보면서 대충 판단은 된다.

설교를 더 들으면, 오정현 목사가 부임한 다음에도 교회 덩치가 계속 커지는 것을 걱정하면서, 제자훈련 원리의 한계가 온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서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평신도 사역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제자훈련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문어발처럼 확장하려고 하는 사역-가령 인근 학교를 인수해서 운영하려고 하는 계획이라든지-과 제자훈련을 어떻게 연결해서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윌로우크릭교회의 고백 다음 순서는 그것을 어떻게 해체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가이다. 우리는 앞으로 수년간 그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사랑의교회도 '우리가 지금까지 훈련은 죽어라 시켰는데 어떤 제자를 만들어냈는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공룡으로 둔갑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 이명박 후보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이용규 대표회장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옥한흠 목사는 지금 같이 누가 옳고 그른지 혼돈스러운 상황에서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골방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양심적인 이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하나마나한 얘기같지만, 그의 제자훈련 결실을 보면 특정인을 지지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왕이면 하나님 두려워하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대통령이 낫다?

옥한흠 목사는 설교 뒷부분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다종교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같은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대통령으로 찍어주는 것은 선진국 백성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했다.

종교는 일단 제쳐두고 지도자로서 자질이 있는지 정책은 믿을만한지, 리더십이 있는지, 유능한지, 정직한지를 잘 살펴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더 나은지 분별하기 어렵고, 말만 들으면 모두가 최고 지도자인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 진실 공방이 뜨겁고, 거짓 진실이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가질 만한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강조했다. 바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양심이 있는 사람, 골방에 들어가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여느 정치 지향적 목사들과 태도가 사뭇 다르다. 하지만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겉은 아주 멋있는 것 같지만 속은 아무 내용도 안 담고 있는 말이다.

12명의 대선 후보 중에 기독교인은 8명이다. 개신교인은 이명박 후보와 정근모 후보 두 사람이다. 천주교인은 권영길·문국현·심대평·정동영·이인제·이회창 후보 여섯 사람이다. 나머지 4명은 미안하지만 생략하겠다.

이중에 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양심을 갖고 있는지, 골방에 들어가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당사자들도 모를 것이다. 사찰에 가서 하는 얘기, 성당에 가서 하는 얘기, 교회에 가서 하는 얘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자기가 지금 무슨 종교를 갖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헷갈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이 무슨 도리로 그 기준을 갖고 표를 줄 수 있을까.

그럼 천하의 옥한흠 목사가 이처럼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해의 거의 마지막 주일 설교,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했을까. 들을 귀 있는 자는 알아서 듣고 찍으라는 말이다.

나는 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양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 골방에서 하나님과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갖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안다.

누가 하나님과 국민들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는지. 누가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기도하기보다 하나님을 속이고 국민을 기만하는 거짓말을 하는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하나님나라의 가치보다 맘몬의 가치를 더 중시하고, 그 달콤한 독약으로 대한민국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있는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을 농락하고 있는지.

만약에 누가 정말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 옥한흠 목사가 아직도 골라내지 못한다면 그의 제자훈련의 내용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총 쏘는 훈련은 죽어라 했는데, 정작 전쟁터에 가서 아군 복장으로 위장한 진짜 적을 구별하지 못하고서는 앞뒤 좌우에다가 총질을 해대는 엉터리 군인들을 길러낼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www.newsnjoy.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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