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산>을 통해 본 당신은 몇 점?

정치 지도자가 아닌 자신의 점수 매겨보기

등록|2007.12.19 13:43 수정|2007.12.23 20:43
얼마 전 한 취업사이트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최고의 대통령감을 뽑는다면 누가 될까?’라는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MBC 사극 <이산>의 영조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백성과 함께하는 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12월 19일 말 많고 탈 많았던 대통령 선거일이 되었다. ‘투표하고 싶은데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대학생들이 드라마 속 지도자를 더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대학생뿐만이 아니다. 언론, 1인 미디어 블로그 등에서도 최근 안방극장을 점령한 사극 속에 나오는 지도자의 자질에 대한 기사나 글들이 제법 많이 나왔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이 또 사극 속 왕, 지도자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지도자란 이래야 한다’고 또 얘기할 것이냐고? 그 무슨 섭섭한 소리를. 지금 이 혼잡한 현실 정치 상황을 보면 그런 사극 속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쓴 글을 볼 마음도 또 쓸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왜 또 <이산>을 들고 나와서 얘기를 시작 하냐?’고 묻는다면 이번 기회에 대선에 나선 정치인 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한 번 점검해보자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허허, 내가 왜 <이산>을 또 들고 나왔겠는가. 바로 이 <이산>을 이용해 스스로를 한 번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자, 우선 <이산>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 8명을 뽑자. 그리고 이들이 각기 갖고 있는 강점을 각각 12.5점 만점으로 한 후 총합을 내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예상하는 점수는 몇 점인가? 아, 채점 기준도 모르는데 어떻게 예상 하냐고? 그래도 한 번 해보라. 재미있지 않은가.

전진하는 인내-이산

첫 번째 채점 기준은 <이산>의 주인공 정조를 통해 해보자. 이미 많은 언론사 기자들, 블로거들이 그에 대해 수없이 다루었다. 그만큼 역사 속 정조가 아닌 드라마 속 정조에 대해 강점이 많이 부각되었다.

이산의 최대 강점은 '전진하는 인내'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극도의 인내심을 보여준다. 그것도 단순히 참는 인내가 아닌 미래를 향해 전지하는 인내를 보여준다. ⓒ iMBC


그렇게 많은 강점 중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인내’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불과 9살, 10살 때부터 정적들에 둘러싸여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생 때부터 ‘죽음’의 공포에 둘러싸여 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죽이려 한 세력에 대한 적대심이나 분노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아닌 어머니를 시해한 세력에 대해, 아이도 아닌 성인이 되어 안 연산군이 광증을 보인 것만 보더라도 정조가 자신을 시해하려고 했던 반대 세력에 대해 품었던  적대심이나 분노를 억누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조는 눌렀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참는 인내’가 아니라 ‘전진하는 인내’였다는 점에서 더욱더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했다. 즉, 기회가 올 때까지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또 눌러 기회가 왔다 싶었을 무렵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자, 당신에게 ‘참는 인내’가 아닌 ‘전진하는 인내’라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는가?

배짱 하나만큼은 최강-홍국영

두 번째 채점 기준은 이산의 오른팔 홍국영을 통해서 해보자. 참 두뇌 회전이 빠른 인물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로 그 배짱이다. 흔히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더운 여름 날 연꽃 잎 위에 앉아 있던 개구리 세 마리가 있다. 너무 덥다. 물에 뛰어들고 싶다. 그런데 그 물은 폭포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다. 쉽게 뛰어들기 힘든 물이다. 그 중 한 마리가 ’아 더워 나는 물로 뛰어들래‘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개구리 수는?’

그렇다. 여전히 세 마리다. 그 한 마리가 의지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아직 행동으로 옮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이산이 다음 왕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홍국영은 과감히 그의 편에 선다. 단순히 말로만 할 거야가 아닌 직접 그 중심부로 들어가 이산의 두뇌가 되었다.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 뿐인가.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산과 대립하는 노론 벽파의 중심 세력 정후겸 뿐만 아니라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 등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산의 오른팔 홍국영그의 최대 강점은 배짱, 그야말로 대담무쌍하다. ⓒ iMBC


다소 얌전한 정후겸은 자신과 두뇌 싸움에서 패한 후 잠시 동안 세손의 곁을 떠난 홍국영에게 조롱하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김귀주는 ‘중전마마 권세를 뒤에 업고 벼슬아치가 된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홍국영을 궐 안에서 두들겨 팬다.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는 이들에게 바른 말을 하기도 하고 은근히 약도 올리는 이런 행동은 어지간한 배짱이 없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눈앞이 불구덩이라는 것을 알고도 살 방도를 찾아 뛰어든 홍국영의 배짱, 당신은 이 배짱이 몇 점인가?

님을 향한 일편단심(충성심)-박대수

세 번째 채점 기준은 박대수의 충성심이다. 이산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이산으로 변장해 이산을 대신해 커다란 부상을 입고, 나례의 행사 때 이산을 피신시키려다 옥에 갇히는 고생도 하게 된다. 일편단심 민들레가 따로 없다.

적에게도 보이는 배려심-성송연

네 번째 채점 기준은 성송연으로 삼아보았다. 송연이가 가진 최대 강점은 다른 이에 대한 배려심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그것이 단지 그녀와 가까운 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역시 최대 강점이다.

나중에 정조의 후궁이 되고 세자까지 낳는 여인이지만 현재 드라마 <이산>에서는 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이산에게 ‘화원이 되어보라’는 격려를 받은 후 주위의 질시와 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화원이 되기 위해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 무조건 미워하고 강하게 대하지 않는다. 자신이 화원이 된 것에 불만을 품은 다른 화원이 그림을 가져와 ‘니가 그리라’며 성질을 낸다. 다른 다모들은 ‘하지 마라. 자기 할 일 안 해서 혼나봐야 한다’며 그 그림을 그리지 말라 하지만 송연이는 그 그림을 완성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린 그림으로 인해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화원이 상관으로부터 칭찬을 받기까지 한다. 자신과 대립하는 인물까지 생각하는 이런 배려심, 과연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다들 눈을 가려도 볼 수 있는 안목-영조

다섯 번째 채점 기준의 인물을 바로 영조다. 드라마 <이산>에서 영조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남다른 군주로 나왔다. 그렇다면 역시 그것을 영조의 최대 강점으로 보아야 할까? 난 그보다 ‘이산’을 끝까지 후계자로 본 안목이 그의 진정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록위마’라는 말이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이다. 사슴을 가리켜 한 명이
말이라 하면 웃고 넘기지만, 모두들 말이라 하면 오히려 웃는 이가 바보가 된다. 다시 말해 집권한 이의 눈과 귀를 신하들이 다 틀어막아 못 보고 못 듣게 하는 상황에서 지도자가 현명하게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세손 이산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는 이들이 바로 영조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야 드라마로 내용을 다 알고 보니 적이 명명백백하지만 영조 입장에서도 과연 그랬을까? 19일 방영된 <이산> 예고편에서 영조가 매우 놀라며 하는 말이 있다.

“중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단 말이냐!”

세손의 암살 음모에 관해 조사를 하다가 끌려온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에게 묻는 말이었다. 자신의 부인까지도 세손 암살 음모에 가담하고,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세손을 ‘못난 놈’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도 ‘세손 이산’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다음 후계자로 밀고 나간 그 안목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당신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높은 안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적 앞에서도 인자하게 웃는 가식의 대마왕-정순왕후

여섯 번째 채점 기준으로 삼을 인물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 둘 것이 있다. 여섯 번째 채점 기준으로 삼을 인물이 정순왕후이기 때문이다. 앞의 다섯 인물은 드라마 <이산>에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인물들이었다. 그렇기에 그 다섯 인물을 통해 자신을 점검해보는 것이 별 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이산의 가장 큰 적인 정순왕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점검해본다는 것은 다소 찜찜한 기분이 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정순왕후는 나쁜 캐릭터이기 때문에 ‘강점이 전혀 없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정순왕후자기의 목적에 따라 적 앞에서도 인자하게 웃을 수 있는 가식의 최고봉! ⓒ iMBC

이 평가를 시작하면서 나는 결코 인물의 ‘장점’을 통해 평가를 해보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 인물의 ‘강점’을 통해 자신을 평가해보자고 했다. ‘강점’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래도 꺼림직하다고?

심리 테스트에서 어떤 질문에는 긍정적 대답을 해야 높은 점수가 나오고 또 어떤 질문에는 부정적 대답을 해야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나쁠 게 생각할 것도 없다.

여섯 번째로 나선 정순왕후의 강점은 바로 ‘가식’이다. 정순왕후는 많은 미움을 받고는 있지만 악역의 재창조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다. 왜? 자신의 적 앞에서도 태연히 인자한 미소를 띄울 수 있고, 자기편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독기를 활활 내뿜을 수 있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넌 참 가식적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싫어하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웃기 싫은데도 웃어야 할 때가 있고, 싫어하는 이한테도 좋아하는 척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정순왕후의 강점 ‘가식’도 지금 우리 자신을 채점할 때 매겨야 할 기준에 사실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든.

눈물로 상대를 애태우는 동정심 유발의 최고봉-화완옹주

일곱 번째 채점 기준으로 삼을 인물은 바로 화완 옹주다. 정순왕후에 이어 또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는 캐릭터를 들고 나와 미안하지만 이 화완옹주 역시 무시 못 할 강점을 갖고 있다. 정순왕후는 ‘여우인 주제에 범으로 착각한다'며 화완옹주를 평가 절하한다.

정말 그렇기만 할까. 범이 아닌 여우이기 때문에 강점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화완옹주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후에도 눈물로 영조의 마음을 잡으려 했던 동정심 유발의 대가! ⓒ iMBC

난 이 화완옹주의 최대 강점이 ‘동정심 유발’이라고 생각한다. 꽁꽁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눈물이다. 장례식장에 가면 자기가 아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옆에서 너무나 서럽게 울어대면 자신도 모르게 슬퍼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람의 슬픔이 너무나 절절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눈물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화완옹주다. 자기가 정조 암살 배후 세력이라고 지목되었을 때도, 심지어 자기가 죽을 뻔한 상황을 겪고 나서도 자신의 아버지 최고 권력자인 영조를 향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영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결코 자신을 내칠 수 없도록 말이다.

비가 내려도 젖은 낙엽처럼 살아 남으리-이천 나으리

마지막 채점 기준은 이천 나으리다. ‘난 젖은 낙엽이네. 쓸어도 안 쓸려.’ 이런 대사로 시청자들에게 웃음만 던져주는 것 같은데 무슨 강점이 있냐고? 있다! 아무런 강점이 없을 것 같지만 있다.

바로 철판처럼 두꺼운 낯을 무기로 한 끈질긴 생명력이다. 젖은 낙엽이 쓸어도 안 쓸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젖은 낙엽이 된다는 거 또한 쉽지 않다. 사실 <이산>에서 근무 시간에 기방에 드나들고 그리라는 그림은 송연이에게 다 떠 넘기고 자신은 춘화를 그리는 그런 태도는 진작에 도화서에서 내쳐져도 내쳐졌어야 할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 자신 말처럼 젖은 낙엽처럼 딱 달라 붙어 쓸리지 않는다. 왜? 낯이 철판이니까 가능하다!

예전에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친구 아버지 회사가 구조 조정이 한창일 때 한 간부에게 책상을 사무실 복도에 내놓아 스스로 명예 퇴직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간부는 별 말없이 매일 그 곳으로 출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군 말없이 매일 출근하고 결국 다시 사무실 안으로 입성했다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간부도 대단하지만, 만약 이천 나으리가 그 회사에서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 이거 일도 안 하는데 봉급도 나오니까 얼마나 좋냐. 으히히”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존심도 때로는 인격모독까지 당하는 경우도 엄연히 있는 것이 사회 생활이라면 이천 나으리의 이 능력 역시 능력 아니겠는가.

이천 나으리, 그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바로 얼굴인지 철판인지 의심스러운 철판처럼 뜨거운 낯이다. ⓒ iMBC


어떤가? 당신은 과연 100점 만점 중 몇 점인가? 아 나부터 몇 점인지 말해달라고? 허허, 이 사람.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았는가. 결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다는 것만 말해두기로 하겠다. 그리고 내 이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부족한 인간이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지도자를 갈망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또 현실에서 그런 정치 지도자를 찾기 어려우니 자꾸 사극 속 지도자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겠고.

아, 그렇게 되면 결국 다시 안 하겠다던 사극 속 지도자 얘기를 하게 되는 셈인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