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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 5년 전과 뭐가 다르지?

[붓 한 자루4] 뫼비우스의 띠, 무료한 반복과 신선한 재발견

등록|2007.12.19 18:58 수정|2007.12.19 18:58
종이 한 쪽 끝과 다른 쪽을 연결할 때 한 쪽 끝을 뒤집어 연결하면 그 종이 위를 걷는 시선은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는 당황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두 눈을 씻고 다시 출발해도 결국 같은 자리에 돌아오고 만다. 한 곳에서 출발하여 계속 앞으로만 갔는데도 출발한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이상한 현상을 우리는 흔히 ‘뫼비우스의 띠’라고 부른다.

만약 우리가 현실에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길을 걸어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을 겪는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황당한 경험으로 인해 발생할 즉각적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출발한 곳을 뒤로 하고 앞으로만 갔는데도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온 데에 대한 당황스러운 반응이 첫 번째고, 그 다음으로는 출발선부터 도착선 사이에 놓인 길에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반응이다.

그런데,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뫼비우스의 띠’를 다시 걸으며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 그 어떤 함정도 없을 뿐 아니라 당황스럽다기보다는 신기하지만 당연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당황스럽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믿기 힘들지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의미 있는 반복’이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담긴 ‘황당한 진리’를 주기적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연결’이 있으며 숨겨진 논리라면 ‘변수’가 있다.

뫼비우스의 띠, 무료한 반복과 신선한 재발견

그 어느 대선 때보다 시끄러웠고 또 한편으론 무료하기도 했던 2007대선이 드디어 끝에 다다랐다. 한 자리에서 출발한 12명 주자 중에서 2명을 제외한 10명 주자가 우여곡절 끝에 끝 지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무리지어 아직 나오지 않은 결과를 놓고 옥신각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과 같으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는 5년 전, 10년 전, 15년 전 그리고 20년 전 대선 이야기를 주섬주섬 챙겨들고서 말이다.

대선 시기만 되면 현 정부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오로지 ‘옛 시대’로 명명되고 ‘새 시대’를 열겠다고 주장하는 인물들로 온 나라는 소음 공해에 빠져든다. ‘바꾸자’는 구호 역시 ‘옛 시대’를 떠나 ‘새 시대’로 나아가자는 유혹에 다름 아니다. 5년 전, 10년 전 그리고 그 훨씬 전에도 우리는 항상 같은 소리를 같은 자리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가 피부로 느낄 만큼 확실히 바뀌는 것은, 달력뿐이다!

2007년에서 5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어떤 대선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국민적 열망을 한 몸에 받은 어느 후보가 2002년 겨울을 알리는 12월을 흥분과 열정으로 달구어 놓았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우리는 정치란 현실에서 출발하고도 항상 현실과 유리된 ‘다른 현실’을 걸으며 일정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우리가 사는 현실로 되돌아 와 5년 전 소음을 반복하는 것임을 또 경험했다. 재밌는 사실은 10년 전 그리고 그 훨씬 전에도 우리는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윤리와 현실이 맞부딪힌 2007년 12월은 5년 전과 전혀 다른 대선이 되었다. 단일화도 없었고 치열한 경쟁도 없었고 논쟁은 대선 현장이 아닌 무대 아래에서만 벌어졌다. ‘새 시대’를 열만한 ‘새 인물’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결국 이번 대선에서 ‘새 시대’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온 몸으로 알게 될 분명한 사실은, 어쨌든 달력은 바뀐다는 점이다.

‘만물은 유전한다’며 한 번 발을 담근 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있을지 없을지를 놓고 고민했다던 헤라클레이토스는 긴 이름만큼이나 길고 긴 고민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그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와 우리 문제는 내용도 성격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은 돌고 돈다’를 툭 던지고 비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질 이름 모를 직장인에게서 2007년 한국판 헤라클레이토스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지 모른다.

물론 이 시대 헤라클레이토스와 나눈 대화는 동문서답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같은 문제를 놓고 다른 얘기를 하며, 다른 해석을 내놓지만 결국은 같은 고민을 하는 두 사람. 한 사람은 2007년 대선을 경험한 우리이고 다른 한 사람은 현대판 헤라클레이토스를 자처하는 그 누군가이다.

이름도 생소한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은 유전한다’며 유유히 2007년 12월 19일 밤길로 사라질 때 아쉬운 마음에 황희 선생께 같은 질문을 한다면 선생께서는 뭐라 하실까. 아마 선생께서도 헤라클레이스토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네 말도 옳고 또 그 사람 말도 옳다’라는 희미한 대답만 남기신 채 헤라클레이토스와 반대 길로 유유히 사라지지 않으실까.

마지막까지 우리 시선을 부여잡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황희 선생과 헤라클레토스가 다른 길을 걷고도 결국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많음을 알려주는 ‘뫼비우스의 띠’만이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무료한 반복이라 해야 할지 신선한 재발견이라 해야 할지 모를 판박이 대선은 아마도 또 찾아 오리라. 그런데, 무료한 반복을 확인해 준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발견은 정말 없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붓 한 자루'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작은 그릇에 담아 함께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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