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처참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곳, '태안'

[체험] 태안 기름 제거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등록|2007.12.19 19:20 수정|2007.12.20 18:06

전국 곳곳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기름 제거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 송선영


기름이 유출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뉴스로 접했을 때만 해도 그저 대수롭지 않은, 뉴스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 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사건 앞에는 '사상 최악의', '환경 대 재앙', '죽은 바다' 등의 수식어가 붙었고 이를 통해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심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커멓게 변해버린 바다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도통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았다. 그저 생각으로만 멈춰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아무런 주저함 없이 자원봉사 신청을 했고 토요일(15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태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태안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단체에 쓰윽~' 껴서 묻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전 환경운동연합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해가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오전 7시 즈음, 버스가 출발했고 3시간 남짓 달린 끝에 오전 10시, 태안에 도착했다. 바닷가 주변에는 이미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 틈에 껴서 방제복과 마스크, 장화를 배급 받았고 작업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으로 중무장을 한 뒤 드디어 바닷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 기름으로 뒤덮인 바닷가 ⓒ 송선영


▲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 송선영


일단 현장에 도착해서 가장 놀랐던 두 가지를 꼽자면 첫 째는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현장 상황이었고 둘째는 어마어마한 자원봉사자들의 수였다.

바다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제대로 된 소리 보다는 '헉', '어떡해', '어머나'와 같은 감탄사만 나왔고 기름으로 뒤덮인 돌들을 보면서 '언제 어느 세월에 이 많은 돌들을 다 닦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단순하게 기름 유출 사고로 단정 짓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했고 바닷가 곳곳이 기름으로 뒤덮인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해 마음이 찡했다.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했기에 현장에 가자마자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작은 자갈 틈 사이에도 기름이 묻어 있었고 흙을 조금만 파내도 그 안에 기름이 있었다. 또 바닷가 끝자락 벽은 기름이 묻은 채 굳어 버려서 새카맣게 변해버렸다. 작업을 하는 내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당장 이곳의 환경과 생태계 재앙도 너무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수십 년간 생계를 이어온 사람들은 도대체 앞으로 무얼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내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자원봉사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원망의 목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앉아서 군소리 없이 봉사활동을 할 뿐 누구를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 시간 남짓 일 했다고 힘들다고 혼자 속으로 씩씩대던 내 모습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 바닷가 외벽을 닦고 있는 모습 ⓒ 송선영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과 한숨. 처음 내가 태안을 찾았을 때 느낀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하루 동안 소박한 기적(?)은 일어났다. 수 천 명이 모여서 열심히 기름을 닦고 또 닦은 결과 기름으로 반질반질 빛나던 돌들이 어느 순간 제 모습을 찾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바닷가 벽을 닦으면서 '과연 이 기름때가 없어질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갖기도 했는데 작업을 마칠 무렵이 되어서 보니 아침보다 훨씬 좋은 상태, 즉 덜 새카만 상태로 변해있었다.

계속 돌들을 닦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처음에는 쭈그려 앉아 불편한 자세로 보이는 대로 이곳저곳 손길을 옮겨가면서 기름을 닦았는데,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숙해졌을 때는 폐현수막을 깔고 앉아 무척이나 능숙하게 기름을 제거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태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 시커먼 재앙 앞에서 무슨 감사함을 느낄 겨를이 있었겠느냐만 그곳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풍경이 있었고 이 사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의 움직임이 나를 참으로 따뜻하게 했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쉴 새 없이 따뜻한 밥을 만들고 건네는 손길과 많은 물품들을 후원한 기업체들, 자원봉사자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을 수시로 깨끗하게 청소하는 손길, 그리고 가장 따뜻했던 건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내 나라, 내가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 천, 수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었다.

▲ 현장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들 ⓒ 송선영


태안의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처참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심각한 사태를 함께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훈훈한 정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마을 주민들의 상심을 감히 논할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겠지만 어서 빨리 그 분들이 활짝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덧붙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직접 몸소 느꼈으면 좋겠다. TV, 신문, 인터넷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느끼는 참담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 이 자체만으로 태안 주민들의 고통을 반으로 만들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하려는 많은 손길과 발길이 모인 다면, 적어도 그들이 받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원봉사를 한 지 하루 뒤. 하루 일 했다고 온 몸이 뻐근하고 근육이 뭉쳐서 활동하기에 힘들다. 고작 하루 '깨작깨작'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다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내가 참으로 한심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아이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