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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수준이 보여준 선거 결과와 바람

[주장] 12.19 대선의 결과로 나타난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정치 수준

등록|2007.12.20 16:40 수정|2007.12.20 16:47
겨울 날씨도 아랑곳없이 막바지 유세전으로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대통령선거가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는 지나간 몇 번의 대선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수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와 투표당일 실시된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예측은 정치에 문외한인 나도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이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에 대한 가치관을 읽었기 때문이다.

도덕성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와 국민의식

“그만한 자리에 있었으면 그 정도 부정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 뭘”
“누군들 그만한 자리에 있었으면 그 정도 안 해 먹었겠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그래도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BBK 그까짓 게 뭔데,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좌파정권 10년이 남긴 것은 어려워진 살림살이뿐이야”

내가 만난 사람들의 50% 이상이 이런 말을 했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에 도덕이나 정의는 실종되고 없었다. 그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단순 논리에 빠져버린 사람들,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지상과제처럼 되어 버린 사회, 2007년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는 오직 “돈”과 “경제”가 절대가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확실한 정치공약을 알고 하는 지지가 아니라 그저 막연한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한 선거였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늙은이나 젊은이, 남자나 여자, 노동자나 자영업자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당선자의 도곡동 땅과 위장전입, 자녀들의 위장취업과 탈세, BBK와 관련된 너무나 짙은 의혹들까지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주장은 매우 단순했다. 선명한 기치를 내걸었던 현재의 집권층은 과연 얼마나 깨끗하냐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구호만 앞세웠을 뿐 사회개혁도 자기혁신도 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보다야 경제라도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강한 지도자와 강력한 정부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난 5년 동안 혼란만 있었지 눈에 보이고 느낄 수 있는 실적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말하는 사람들의 거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무것도 똑바로 해놓은 것 없이 그냥 너나없이 살기만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 정권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 국민들의 정서가  바로 이번 선거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식민지 근성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정서 속에는 어쩌면 사라진 줄 알았던 식민지 근성이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몰라.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말이야, 오직 돈과 경제,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이라는, 그리고 강한 자에게 굴종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것도 그렇고. 아마 지난 참여정부 때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 다음 정부에서는 숨을 죽일 거야. 이 당선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니까.”

선거 다음 날 만난 60대 초반의 친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국민들의 의식 속에 과연 아직도 식민지 근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까?

일제하의 그 암울했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해방 후의 혼란정국과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인 힘과 절대 권력에 줄을 서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더욱 많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들의 그런 의식이 바로 식민지 근성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절대권력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 아부와 굴종을 하다가 조금 약해보이거나 부드러운 정부나 권력이 등장하면 목소리를 높이는 조직이나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선거를 치른 민심의 바탕이 정말 그렇다면 이건 정말 서글픈 일이다.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점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국민들의 식민지 근성이 대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런 주장을 믿고 싶지 않다. 참여정부의 무능력과 정책실패를 심판한 결과가 표심으로 나타났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깊어진 양극화의 골, 그리고 무너진 중산층과 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와 이에 따라 어려워진 서민들의 생활이 이번 선거결과를 가져왔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작은 바람

그래서 앞으로 5년간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라는 것은 제발 선거기간 내내 자신 있게 외쳤던 것처럼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서민들의 삶이 넉넉해 질 수 있는 정책을 개발 실천하라는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불안정한 생활을 개선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흩어진 민심을 모아 성장 동력을 키워내고 남북문제도 지혜롭게 대처하여 민족공동체로서 평화통일을 이루어 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사안이다. 

그러나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대운하” 같은 억지스러운 사업은 제발 참아 주시고, 대학의 기여 입학제 같은 정책으로 그렇잖아도 서러운 가난한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 흘리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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