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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의도는 무인도가 되는 거여?"

삶의 터전 되찾기 위한 노인들의 처절한 복구현장

등록|2007.12.21 09:27 수정|2008.01.17 11:40

사발면 먹는 노인기름때 묻은 몸에 기름냄새를 맡으며 점심식사로 사발면을 먹고 있는 노인. ⓒ 정대희


"이젠 뭐를 먹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여, 아마도 앞으론 가의도에 사람이 사는 일은 없을 껴, 무인도가 되는 것이지."

최악의 기름 유출사고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가의도 김상순(78세·남) 이장은 떠 밀려온 기름으로 검게 변한 섬 주변을 바라보며 탄식하듯 말을 잇는다.

"바다가 베푼 은혜를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간 날이 한낱 꿈만 갔어, 새삼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 이제 어쩌면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태안 앞 바다 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것은 비단 육지 뿐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육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욱 뼈저리게 이번 사고로 인해 입은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근흥면에 속한 가의도는 약 40여개의 가구에 80여명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가의도는 가장 나이가 적은 주민이 61세일 정도로 연세가 지긋한 노령층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초고령화 된 마을이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주민들은 바다가 길러낸 수많은 혜택을 받으며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작은 선박을 이용하여 섬 인근 해역에 나가 낚시대를 바다에 던지면 금방 우럭, 놀래미 등 어류를 잡아 올렸고, 썰물 때를 이용해 미역과, 홍합 등을 채취할 수 있었다.

허나 하루아침에 섬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유조선 충돌로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면서 부족함이 없던 소박한 섬 생활을 깡그리 뒤바뀌어 놓았다.

싱싱한 생선을 잡아 올리기 위해 필요했던 선박은 해안가에 방치되었고 낚싯대는 창고 한켠에 처박혔다.

또, 미역과 홍합 등을 채취할 때 쓰던 도구들은 이젠 기름제거 작업을 위해 동원되고 있으며, 속옷과 겉옷에는 기름때가 물들어 있고 기름 냄새가 짙게 배었다.

유조선 충돌사고가 있던 당일 저녁때 무렵부터 밀려온 기름은 삽시간에 섬 주변을 집어 삼켰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가의도 주민들

검은 파도의 물결이 거대한 재앙을 예견하듯 섬에 몰아닥치는 순간부터 주민들의 고단하고 괴로운 삶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가담을 시간도 없었다. 주민들은 무작정 해안가로 달려가 떠밀려오는 기름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름범벅이 되어 멀리서 보면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기름이 발에 신은 장화목을 넘어 발밑바닥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에….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이 퍼내고 또 퍼내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기름의 양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누구하나 땀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허리를 펴고 쉬는 이도 없었다. 이런 황당하고 당황스런 상황에 맞서 싸운 사람은 모두 60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사고 발생일부터 3일 동안은 밀려온 기름을 퍼내기 위해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자리에 앉아서 모든 것들을 해결했다고 한다.

해안가 자갈 틈새로 스며든 기름은 자갈을 거둬내고 거둬내도 어김없이 묻어나오고 이미 몸은 기름범벅이 된지 오래고 엉덩이에는 물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단다.

약 2주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매일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이제 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며
밤이면 끙끙 앓는 소리가 섬에 가득 울려 퍼진다고 한다.

기름에 죽은 고기기름 유출로 인해 죽은 고기들이 떠밀려 와 피해보상 증거자료를 위해 냉동보관하고 있다는 우럭과 놀래미 ⓒ 정대희


▲ 해안가로 밀려온 기름을 제거하는 외팔이 노인의 모습. ⓒ 정대희


아흔 살 된 노인일손을 돕고자 아흔을 넘긴 노인이 부직포들을 마대에 꼬챙이를 이용해 담고 있는 모습 ⓒ 정대희


기름 떼어내기자갈에 스며든 기름이 뭉쳐 작업이 어려운 가운데 한 주민이 꼬챙이를 이용해 기름층을 떼어내는 모습. ⓒ 정대희


기름 닦아내기자갈에 스며든 기름이 두꺼운 기름층을 만든 가운데 주민들이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모습 ⓒ 정대희


유일한 교통수단가의도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이동되는 4륜 오토바이(일명 사발이)를 이용하여 방제장비를 나르는 주민 모습 ⓒ 정대희


기름때 묻은 옷기름제거 작업을 위해 입었던 옷들이 빨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은채 널려 있는 모습 ⓒ 정대희


점심식사김치하나에 사발면으로 차려진 조촐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가의도 주민 ⓒ 정대희


그럼에도 요령을 부릴 수 없단다. 아흔 살 먹은 노인도 꼬챙이를 부지런히 놀리고 있고, 한쪽 팔이 없는 노인도 연신 기름을 퍼내고 있고, 암 수술을 받은 후 지난 여름 간 투석까지 받은 노인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고, 췌장암 수술은 받고 밤이면 숨도 잘 못 쉰다는 노인도 부직포가 검도록 자갈을 문지르고 있고, 관절염 수술을 받고 지팡이를 짚고 와서 일하는 노인도 있고,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꾸부정하게 굽은 몸을 재촉하는 노인 등이 있으니….

갑자기 울부짖듯 탄식하며 한 노인이 말 한다. "뭐 하러 이렇게 죽어라 퍼내는 감. 어차피  남은 생 안에 본모습 볼 수 없을게 빤한데. 기력 없는 몸이나 제대로 챙기는 게 낫지.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맘속으로 한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말이라고 하니 가슴이 더욱 저며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기름을 퍼내는 곳은 상황이 양호한 편이라며 가파른 지역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해 아직도 짠물에 기름이 둥둥 떠 있다고 한다.

육지엔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기적과도 같은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데 여긴 아직 첫날과 다를 것이 없다.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도 피해를 입은 북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항 선착장에서 내려 30여분을 걸어가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북항에도 선착장이 있지만 파손되어 있어 여객선에서 내리려면 사다리를 이용해야하고 중장비를 실을 수 있는 선박은 이쪽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착장이 파손되어 복구 작업을 해준다고 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까지 손도 못되고 그냥 방치되어 있다고 김상순 이장이 한 마디 한다.

하루라도 빨리 선착장 보수 공사가 이뤄지고, 자원봉사자들의 기적과 같은 역량이 발휘되어 기름이 없어져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아름다운 가의도의 모습을 되찾는 시기가 왔으면 한다.

살려주세요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을 요하는 가의도 주민들이 '가의도 주민들 살려 주세요'란 현수막을 걸어 둔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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