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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라 말하지 말고 책을 읽자

[서평] 강명관이 지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등록|2007.12.21 13:41 수정|2007.12.21 13:41
공중파 방송에서 <이산>, 케이블 영화체널에서 <8일>을 통하여 우리는 정조를 만나고 있다. 일명 '개혁군주' 그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았다면 조선은 근대시대를 열고 100년 후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만약'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한다. 나 역시 그렇다.

▲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 푸른역사

하지만 강명관이 지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고서 충격을 받았다. 개혁군주라 명명된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킨 주역이었음을 알았다. 정조는 세종 이후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군주였다. 책을 읽었기에 그는 명석했고, 통치철학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근대 군주라 말하지만 문체반정을 일으킨 것을 볼 때 아니었다. 강명관은 말한다.

"정조는 근대와 상관 없는 사람이다. 아니, 정조와 근대를 연결하는 그 생각조차 끔찍하다. 정조는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이 가장 보수적인 정통주자학에 의해 완벽하게 작동하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그는 책은 좋아하기는 했으되, 지배 이데올로기 곧 주자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유를 담은 책들을 철저히 탄압했던 인물이다." (본문 263쪽)

세종 이래 가장 개혁 군주였지만 그는 왕권 강화를 통하여 전제군주체제를 신봉하였고 그 사상적 틀을 주자학에서 찾았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했던 양명학, 양명좌파, 서구문명을 담은 책들은 철저히 탄압했던 것이다. 주자학에 배치되는 사유들이 18세기 베이징을 지배했지만 조선은 특히 정조는 인정할 수 없었다.

정조는 이덕무, 이옥, 박지원 등이 주창하는 학문 세계를 인정할 수 없었다. 사상검열을 하였다. 문체를 올바르게 옮겨 놓겠다는 논리였지만 성리학에 어긋나는 이단적 사유를 색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문제 삼았지만 박지원은 끝까지 자신의 사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는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일격에 되돌려 놓는다. 활자란 무엇을 만들기 위함인가? 글을 쓰고 만들고, 책을 찍어내는데 쓰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토록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었지만 어디 금속활자를 통하여 책을 찍어낸 적이 있는가? 고려시대는 불교서적을 만드는 일에만 제한되었을 뿐 사람의 사상과 사유를 위하여 찍어낸 책이 없다. 비극이다.

퇴계 이황은 어떨까? 조선조 이이와 쌍벽을 이루는 거목이다. 하지만 이퇴계 역시 지적 사유는 주자학에 머물렀다. <주자대전>이 있다. 본문 100권, 속집 12권, 별집 10권으로 도합 95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주가의 편지를 모아놓은 것으로 편지가 논문에 가깝다. 성리학의 모든 사상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학문 세계는 이 <주자대전>을 해석하고 주해하는 것에 불과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강명관은 말한다.

"1543년 <주자대전>의 간행과 1561년 퇴계의 <주자서절요> 간행은 주자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했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주자대전>이라는 마르지 않는 거대한 호수를 벗어날 수 없었다. 호수에 갇힌 그들은 다른 사유와 학문을 볼 수 없었다. 나는 1543년 <주자대전>의 인쇄와 퇴계의 <주자서절요>가 학문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재앙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99쪽)

강명관이 이황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떤 국가와 사회라도 학문의 다양성과 사유를 획일화시키면 그 국가와 사회는 죽었다. 조선은 주자학에 매몰되었고, 정신은 피폐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은 그렇지 않았다. 홍대용이 베이징에 갔을 때 베이징은 이미 다양한 학문과 사유가 넘쳐났다.

책과 서점을 통하여 베이징은 주자학에 매몰되지 않고 사상과 사유를 확장시켰다. 조선은 책을 개인적으로 매매하는 서적 거간꾼인 서쾌가 있었을 뿐 서점이 없었다. 수만 권의 책을 판매하는 유리창을 보면서 받은 홍대용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홍대용은 좌절하지 않고 책을 구입했고, 사유를 다양하게 펼쳤다. 하지만 정조는 그 사유를 용납할 수 없었다.

"홍대용이 베이징 지식시장에서 경험한 충격으로 낙후한 조선을 개혁할 학문, 곧 실학을 궁리했다면, 정조는 뒷날 베이징에서 수입된 책이 조선 지식인을 오염시키고 주자학을 해체한다고 판단해, 베이징 서적 수입을 금지했다. 그리고 지식인들의 저작을 검열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다." (227쪽)

국가는 항상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위하여 획일화된 이념을 아이들에게 교육시킨다. 조선은 전제왕정이었고, 우리 시대는 국가주의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었다. 오로지 개인은 없다. 국가만 존재하고, 반공만 존재할 뿐이다.

사상 통제와 사유 통제는 권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직도 국가와 기득권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획일화된 사상과 사유를 고집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비극이다.

조선 책벌레들이 권력 체계와 주자학에 매몰되지 않고 사유의 다양성을 추구하다가 쓰러져 갔다. 이덕무, 이옥 등이다. 이들은 다양한 학문을 추구했다. 책을 통하여 지적 사유를 꿈꾸었다. 책은 우리에 지적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 시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 읽지 않기에 사상과 정신은 피폐해졌다. 오로지 자본만이 신이다. 그 자본이 우리를 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적 사유가 책을 통하여 잉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정신의 피폐를 경험할 것이고 비극적인 상황을 분명 선물 받으리라.

강명관은 정약용, 홍대용, 이덕무, 이옥, 서유구, 홍석주 가문, 유만주, 신채호를 소개한다. 그들은 진정 책읽기를 통하여 사유했으며 다른 세계를 보았다. 책을 통하여 모든 진리를 발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는 사유의 다양성과 지적 능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 시대 가장 큰 비극은 자본에 매몰되어 지적 빈곤과 사유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제 국가와 독재권력이 정신을 탄압했던 강제적인 시대보다 더 비극적인 시대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라 말하지 말고 책을 읽자.
덧붙이는 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ㅣ 푸른 역사 ㅣ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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