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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이 곳에선 한여름 관광 성수기

[사진] 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는 지금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등록|2007.12.24 14:57 수정|2007.12.24 14:57

▲ 가정집 마당에 꾸며진 성탄 조형물. 대형용설란으로 트리를 만들기도 한다. ⓒ 조임식

▲ 왼쪽 : 중고등학교인 콜레지오 앞의 성탄축하 문구. 오른쪽 : 시청앞길에 꾸며진 성탄 축하 조형물로 동방박사, 아기예수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음 ⓒ 조임식

이 곳 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한국 기준으로 추위가 시작되는 11월부터입니다. 남반구인 이 곳에선 여름이 시작됩니다. 12월이면 한여름입니다. 관광 성수기이기도 하구요.

저는 매일 새벽 5시 30분경에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찰스다윈 연구소 안에 있는 해변에서 수영을 합니다.

이 자그마한 해변에서는 바다사자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펠리컨 부부가 노닐고 빨간 게들이 기어 다닙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까만 바위와 조개가루로 된 하얀 모래, 키 큰 선인장과 가시덤불이 있고, 그 속에서 작은 핀치류가 노닐다가 사람 곁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이 때문에 바다수영은 참으로 낭만적이지요.

이런 상황이니 화이트크리스마스 기대는 무리입니다. 각 상점에는 크리스마스 물품 파는 곳을 따로 운영하는데 하얀 솜을 팔진 않습니다.

성탄절 장식 사려고 비행기 타고 1시간30분 여행하기도

비록 계절은 여름이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에 대한 이 곳 사람들의 열성은 대단합니다. 우리 집주인 존은 실내장식용 물건을 사려고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걸리는 콰야킬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원래 남미는 스페인이 지배한 가톨릭 국가가 대부분이며 지금도 이 나라들에서는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그런 만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의미도 남달라 한국의 추석처럼 국가 전체 행사처럼 치러집니다. 모든 집에서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런 아기자기한 장식들을 합니다. 여기선 나시미엔토(nacimiento)라고 아기예수의 출생을 뜻하며 출생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장식들을 합니다.  성당에서도 미사 전에 나미미엔토에 관련된 연극을 펼치고 에스쿠엘라 드 갈라파고스 학교 앞에도 이런 성탄축하 조형물이 있습니다.

▲ ① 미사집전에 앞선 축하 연극. 주민들은 매주 성당에 오지 않고 일년에 몇번 중요한 집안행사나 이런 크리스마스때등만 미사에 참석한다. ②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③ 중고등학교의 성탄축제 공연. 이날은 토요일로 공식 휴일이지만 정상수업을 하고 대신 월요일인 24일부터 쉰다. ⓒ 조임식


▲ ① 오후 6시에 열리는 성탄축하 잔치. ② 인디오 주민들의 안데스 뮤지카 연주. ⓒ 조임식



자선사업 기금모음 바자회도 열리는데 각자 집에서 만든 인형들을 만들어 판매를 합니다. 이 곳 사람들의 손재주는 비상합니다. 새 인형을 샀는데 발가락과 눈썹까지 섬세하게 꾸며 놀랐습니다.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코끼리거북, 펠리컨, 이구아나, 바다사자, 홍학, 펭귄 모양으로 만든 봉제제품들이 많습니다.

학교(우리나라로 말하면 중고등학교인 콜레지오)에서도 나시미엔토를 꾸며놓고 그 앞에서 기념행사를 엽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살사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모두가 즐기는 축제 분위기입니다.
저녁에는 항구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갈라파고스 관광1번지로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어서, 항구 뒤편 바다에 떠있는 요트들은 모두 관광객들이 타고 온 크루즈 배들입니다.

그 옆에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에서는 인디오 원주민들로 구성된 3인조 악단이 안데스 뮤지카를 연주합니다. 항구 전체를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채웁니다. 한국 가족이 생각나서 동생에게 휴대폰으로 직접 들려줬더니만, 한국에서도 이곳 민속연주단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부는 피리의 둔탁함은 나그네의 심금을 울립니다.

실내체육관에서는 라디오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성탄기념축제가 열립니다. 주말에는 실내축구인 풋살이 저녁 11시까지 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입장료는 1불(900원 정도). 외국인은 무료입니다.

이 곳 갈라파고스 주지사는 크리스마스 축제 행사 때에도 참석을 해서 축사를 합니다. 그는 한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는 '한국 통'입니다. 한국에서 샀다는 삼성 디지털카메라를 꼭 가지고 다닙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도 이 분이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과 유기농업을 이 곳에 보급하기 위해 나를 초청했기 때문입니다.  

▲ ① 성탄 일주일 전부터 오후 6시에 시작되는 성탄행사에 주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② 행사장 내부. ③ 성탄행사에 참석한 갈라파고스 주지사(마이크를 들고 있는 이). 그 옆으로 갈라파고스기가 걸려있다. ⓒ 조임식


초대를 받았을 때는 선물을 준비해서 교환하는 게 풍습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초대를 두 군데서 받았습니다.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생일 선물이라면 와인 한 병이면 족한데, 크리스마스는 처음 맞는지라 뭘 선물할까 생각 중입니다. 아마도 한국적인 것이면 더 좋아하겠지요. 초대를 받았을 때는 반드시 서로 자그마한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이 곳의 풍습입니다.

초대받은 집 마당에 내 키 5배는 됨직한 용설란으로 분위기를 띄웁니다. 하얀 솜 대신 갖가지 장식품을 매달아 놓고, 저녁에는 반짝이는 전등을 켭니다. 밤에 시내를 거닐면 가정에서 반짝이는 불빛과 은은한 캐럴 송이 나지막이 들립니다.


이 곳 적도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차분하고 가족적입니다. 선물을 손에 든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부부가 참 행복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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