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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산타! 자루 단속 있겠습니다"

[세계의 크리스마스- 에스토니아] 법무부 장관, '산타클로스 의무사항' 규정해

등록|2007.12.24 14:28 수정|2008.01.03 17:11

탈린 시청광장에 열린 크리스마스 시장매년 겨울에 열리는 이 시장은, 관광객들을 모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서진석

나는 현재 에스토니아에서 벌써 5년째 살고 있지만, 그전엔 폴란드에서 6년을 거주했다. 그러므로 올해까지 치면 유럽에서 벌써 크리스마스를 11번째 맞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은 에스토니아를 동유럽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밀히 수도 탈린은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거의 같은 북위에 속해 있고, 전체 영토가 덴마크보다도 훨씬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명백한 북유럽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춥다고 알고 있는 폴란드와 비교해봐도 겨울이 되면 밤이 훨씬 더 짧아지고, 1월이면 다가오는 그 맹추위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크리스마스 철이 시작된 요즘은 해가 오전 8시 반 정도에 뉘엿뉘엿 떠올라 오후 3시만 넘으면 다시 수평선 너머로 져버리곤 한다. 그래서 아침에 늦잠이라도 자버리면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크리스마스' 아니죠, '유울레' 맞습니다

폴란드와 같은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에스토니아의 크리스마스는 다른 중동부 유럽의 국가들의 풍습과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갖는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같은 경우에는, 크리스마스를 상당히 엄숙하고 종교적으로 보낸다는 느낌을 갖는 반면, 이곳 에스토니아는 종교적 성격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적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았다는 인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탄절이 되면 가족들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 데는 차이가 없다.

에스토니아 성탄절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독교적 풍습보다 일년 중 밤이 가장 짧은 동지를 기념하는 이교도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 북유럽에서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이어졌던 '율레'라는 이름의 명절과 전통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인데,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의 탄생과 접목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에스토니아는 크리스마스를 고대의 명절의 이름에서 나온 '율레'라 부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기독교가 북유럽에 전파되면서 이 율레 명절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현재에는 그 고대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율레 명절 때마다 울창한 나무에 장식을 해서 기념하는 데서 유래했던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풍습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크리스마스의 모습에 많은 족적을 남겨두었다.

현재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니고 있던 이교도적 요소에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백화점은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각 도시의 광장에는 성탄 분위기를 돋구는 야외시장이 들어선다.

대충 찍어도 예술사진, 캬~

탈린의 크리스마스노출을 조정하느라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싸구려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치곤 비교적 잘 나온 사진 같다. ⓒ 서진석

수도 탈린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특별시장은 특히 유명하다. 관광지로서의 명성이 과히 세계적인 탈린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들끓는다. 탈린은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상당히 화려한 크리스마스 특별 야외시장을 매년 열고있고, 밤이 길고 추운 겨울에는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비교적 애를 먹었던 탈린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광장 한 가운데 서있는 높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와 아름다운 조명으로 화려하게 밝혀진 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아무리 조악한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다 하더라도 전문가가 찍은 사진 이상의 아름다운 예술사진을 건질 수 있을만큼 훌륭하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시장 한가운데 특별한 것이 등장했다. 바로 산타클로스의 집이다. 북쪽 이웃나라 핀란드의 로바니에미가 산타클로스의 본거지라는 홍보를 워낙 강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화려하거나 두드러지지는 않더라도 아이들과 관광객들은 광장 한가운데 집을 마련한 산타 클로스와 사진을 찍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산타클로스와 이야기를 한 번 나누기 위해서 수백 미터나 줄이 늘어서는 현상도 발생한다. 추운 겨울에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더 재미있는 것은, 에스토니아 최대의 일간지 <포스티메에스>에 얼마 전에 실린 '산타클로스 행동특별규정'. 에스토니아 산타클로스의 의무와 권리를 정리해 놓은 관한 내용인데,실제 에스토니아 법무부 장관이 구성하고 국무총리가 12월 20일 의결한 규정이다. 그러므로 정말 산타클로스 행세를 하겠다는 사람은, 나랏님들이 만들어놓은 이 규정을 지켜야하는 것인지 안 지켜도 되는 것이 고민을 해야하는 판이다.

에스토니아 법무부 장관이 지정한 에스토니아 산타클로스들의 행동특별규정은 다음과 같다.

"선물자루 무게는 40㎏ 이하로, 방사능·독극물은 안 돼요"

① 산타클로스는 빨간 외투와 모자, 그리고 하얀 수염을 소지한 인물로서, 12월 24일부터 27일까지 에스토니아 공화국 영토 내에서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이동하며 특별한 선물자루에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을 운송하는 자를 일컫는다.

②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성별, 나이,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종교적 신념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③ 산타클로스는 주변인물들에게 자신이 사는 정확한 주소와 크리스마스 이외 기간에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발설해서는 아니 된다.

④ 1940년부터 91년까지 있었던 점령기에 권력을 추종한 바 있던 산타클로스들은 보안경찰에 즉시 신고하고, 당시 개인적인 범죄를 범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한다.

⑤ 산타클로스의 선물자루의 크기(가로, 세로, 깊이)와 무게는 200㎝와 40kg를 초과할 수 없다. 정형화된 크리스마스 선물 외에 산타클로스는 스키와 접이식 자전거, 썰매, 아이를 실어나르는 수레, 악기, 폭죽, 그리고 적합한 증명서가 있을 경우 우리나 상자 속에 작은 동물이나 새를 소지할 수 있으나, 농산물 가공이나 그 자리에서 잡아먹기 위한 것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⑥ 산타클로스의 선물자루에는 방사능 방출물질, 폭발물, 독극물, 인화성 물질이나 적절하게 포장되지 않은 물품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노래 불러야 선물 주지.에스토니아 관계법령상 저 아이가 산타클로스가 요구하는 노래나 춤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선물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 서진석

⑦ 산타클로스의 의무사항은 다음과 같다.

⒜ 크리스마스 선물을 완전하고 훼손되지 않은 형태로 운반해야한다. 선물 속에 들어있는 사탕, 과자 등을 먹어서는 안 되며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는 향수, 로션 등을 마실 수 없다.
⒝ 옷차림과 행실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절대로 면도를 해서는 아니 된다. 산타 할아버지의 복장 아래로는 긴 속옷과 정장을 입어야 하며, 발가벗어서는 아니 된다.

⑧ 산타클로스는 선물 하나에 대한 대가로 시 한 구절, 노래 한 가락, 춤 한 동작 이상의 것을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 산타클로스는 선물 수령자를 품에 안거나, 손으로 두들기거나 장난을 칠 수 없다.

⑨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받고도 노래, 시 낭송 등을 하지 않는다거나, 장난을 치거나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벗기려 하는 자들에게는 선물 증정을 거부할 수 있다.

⑩. 지정된 한도에서, 약간의 장난 섞인 행동은 용납될 수 있다.

⑪ 산타클로스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 회초리 다발, 지정된 경우에는 후추가스가 들어있는 풍선, 가스총, 방패, 고무방망이 등을 소지할 수 있다.

⑫ 질서 유지가 곤란한 크리스마스 파티 시에 산타 클로스는 시위진압대의 지원을 요청하여, 생강과자(크리스마스에 즐겨 먹는 갈색 과자)로 만든 총으로 난동자들을 체포하고 선물을 압수할 수 있다.

⑬ '브쇼 나샤(러시아어로 '전부 우리 것')!'라고 외치면서 산타 클로스의 선물 자루를 약탈해서는 안된다.

생활보호대상자에겐 선물 지원금을

한국인의 정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의 규정을 제외한 전문이다. 상당히 반러시아적 내용까지 담겨있어 양국간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개그는 개그일 뿐, 아무도 이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면 지나가는 산타클로스를 붙잡고 적법성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에스토니아에는 썰매를 끌게 할 만큼 사슴이 많지도 않다. 정작 그랬다간 동물보호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임엔 분명하다.

이젠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건 말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인정하건 말건, 성탄절은 누구라도 부담 없이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고 맘껏 즐거워할 수 있는 명절로 탈바꿈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크리스마스에는 행복하고 즐거워야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탈린 시정부는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수 있게 하는 지원금까지 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기간이 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빠질 수 없는 생강과자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생강과자.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이 많이 있는데, 근처 가게에서 구입한 물건이라서 그만한 교태가 나질 않는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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