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버마 친구에게 한류 실어다준 라디오
[피스라디오 보내기] 오마이이뉴스-함께하는시민행동 공동기획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있는 버마(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2007년 9월 약 10여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 민주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위는 소강상태입니다. 이에 '함께하는시민행동'은 버마 국내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국경지대로 나와 있는 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의 메시지가 담긴 라디오 채널들을 들을 수 있도록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글은 버마 난민 캠프 활동가 양초희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편집자주> |
▲ 지난 9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버마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시위를 강경진압하고 있는 군사정권에 항의하며 삭발을 단행하자 한 동료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 최윤석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날 간단하게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당장 머물 곳을 찾으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역시 방을 구하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가격이 좀 맞다 싶으면 거리가 너무 사무실과 멀었고 좀 걸어 다닐 만 하다 싶으면 가격이 너무 쎘다. 이래저래 마음을 못 잡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초희~! 그러면 방 구할 때까지 당분간 사무실에서 지내는 건 어때?"
"사무실에서요?"
"그래~! 사무실 이층에 빈 방이 하나 있거든, 당분간 방세도 아낄 수 있고 말이야."
"그래도 어떻게 사무실에서 지내요. 밤에 혼자 지내기 무섭기도 하고요."
"그럼 룸메이트를 만들면 되잖아."
"룸메이트요?"
"캐서린이라고, 연말까지 여기서 인턴십 교육을 받을 건데, 어때? 같이 한번 살아볼래?"
1986년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그녀.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이고 사는 곳은 난민캠프다. 버마 군정부의 만행을 피해 1985년도에 타이-버마 국경 근처의 난민캠프에 자리를 잡은 캐서린 부모님은 그 다음해 캐서린을 낳았다. 그렇게 난민캠프 밖으로 처음 나온 내 친구 캐서린과 나의 이 미묘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서로 통성명이 끝나고 나서 캐서린은 나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물어봤다.
"왜 한국 드라마에서는 배우들이 끝에 다 죽는 거야? 왜 다 오빠고 동생이야?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다 이뻐? 너 눈 너무 사랑스러워~!"
그렇게 한참 질문공세를 받다가 내 눈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말에 쑥스러워진 나는 질문을 끊고 웃으면서 "캐서린~ 한국드라마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본 거야?" 하고 물어봤다.
"초희~! 전기가 부족해서 난민캠프에서는 6시부터 10시까지 TV 볼 수 있어. 친구들이랑 만날 모여서 같이 봐! 태국인들이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하면 버마사람들은 '미쳤다'고 할 수 있어. 심지어 자막이 없을 때에도 친구들이랑 넋을 잃고 드라마를 본다니까. 말은 이해할 수 없지만 배우들의 눈빛이나 표정만 봐도 그 느낌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프거든."
그리고 나더니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I think I love you(드라마 '풀하우스' 주제가)'라는 한국어 노래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캐서린이 그렇게 한국 노래를 곧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 첫날밤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캐서린은 조그만 라디오를 켜기 시작했다. 잠 자는데 라디오 소리가 약간 거슬렸던 나는 그냥 우회적으로 돌려서 만날 그렇게 라디오를 켜놓고 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캐서린은 잠자는 데 방해가 됐냐고 물어보고 나서 이내 씩 웃더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초희~! 난민캠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그래서 친구들이랑 나는 함께 모여서 라디오를 많이 들어. 라디오는 세상사는 이야기를 들려 주거든 또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말이야. 내 친구들 중 몇 명은 라디오로 BBC 들으면서 영어공부 하는데 그 친구들 영어 정말 잘해."
"근데 그거, 피자 맛있어?"
그날 이후부터 간간히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매일 밤 자매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멋있는 한국 남자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는 엎치락덮치락 이불을 끌어당기며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흥분을 하고, 예쁜 옷을 보면 사지도 않을 거면서 꼭 한번 입어보고, 맛있는 태국음식을 보면 한참을 쳐다보다가 결국 들어가서 사먹고, 이쁜 풍경을 보면 요리조리 포즈를 취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난 늘 캐서린이 난민캠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잊어 버리고 그러다 종종 철 없는 질문들을 해버리곤 한다.
어느 날 너무 피자가 먹고 싶길래 캐서린 한테 저녁으로 피자를 먹자고 했다. 대답이 없길래 별로 먹고 싶지 않은가 하고 다시 물어봤다.
"캐서린 피자 싫어해?"
캐서린은 이내 머슥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초희~ 나는 한번도 피자 안 먹어 봤어. 난민캠프에서는 옐로우 빈(Yellow Bean)하고 밥만 주거든. 옐로우 빈 알어? 나 어렸을 때는 그것도 부족해서 얼마나 많이 배고팠는지 몰라. 엄마한테 맨날 배고프다고 징징대고 그랬었지. 근데 그거 피자 맛있어?"
그 날 캐서린과 함께 피자집에 가서 제일 큰 피자를 시켜 먹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대용으로 어제 먹었던 피자를 데우면서 서로 공통의 합의에 도달하고 나서는, 마주보고 서로 웃고야 말았다.
"그래도 밥이 최고야. 안 그래?"
자기나라에 대해 읽고 들어야 하는 내 친구
가끔 SPDC, 버마의 군정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는 온갖 되지도 않은 영어 욕을 해대가면 분통을 터트리고는 했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서 종종 캐서린은 나한테 한국이 그립지 않냐고 물어 보면서 SPDC가 무너지면 꼭 버마를 갈 거라고 했다.
"초희~! 난민캠프에서 살면서 꿈을 꾸는 건 정말 힘들어. 근데 나도 꿈이 있어 언젠간 사회복지사가 돼서, 난민캠프에서 고통 받고 있는 내 민족들을 도와 줄 거야. 그리고 그들과 꼭 내 나라 내 땅을 꼭 밟아 볼 거야."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법을 배우고 있는 캐서린이 매일 밤 나에게 하는 말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초희, 그거 알어? 인권은 '시민'을 위한 것이지, 난민캠프를 위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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