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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안희정 "친노는 벼슬할 수 없게된 가문"

블로그에 글 올려... "진보개혁세력, 이념에서 자기혁신해야"

등록|2007.12.26 12:12 수정|2007.12.26 18:51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혀온 안희정씨가 이번 대선결과와 관련해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가문, 족속)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라는 심경을 밝혔다.

안씨는 26일 새벽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는 폐족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자신의 가족을 폐족이라 표현했다"면서 이렇게 썼다.

정약용이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당하고 자신의 형들도 죽거나 유배당하는 상황에서, 아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가문을 폐족으로 표현했다. 안씨는 이 말을 빌려 '대선패배'에 대한 '비통'한 심경을 나타낸 것이다.

이번 대선의 성격이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친노세력의 핵심인사중 한 명인 안씨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민주개혁세력 사분오열·지리멸렬된 책임 면할 수 없다"

▲ 안희정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안 씨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거듭되는 산행처럼 우리의 이 성취는 또 다른 내리막길을 예고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라면서 "집권 10년의 역사를 계속해서 지키지 못한 것, 거대 집권 여당 세력을 단결된 세력으로 가꾸고 지키지 못한 것,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또 "싸움이 한창이던 지난 계절에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실패했느냐고 항변하며 싸움을 독려했지만, 민주개혁세력이라 칭해져 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안씨는 참여정부의 활동에 대해 "대한민국이 합의할 수 있고 동원 가능한 최선의 정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국민과 우리 세력 다수의 합의와 지지를 얻는 것에 실패했다"며 "결정한 정책을 바꿀 수 없었다면 우리 모두를 변화시켰어야 했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의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진 마음으로 이 슬픔과 패배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며 "아직 우리는 실컷 울 여유가 없다, 우리는 폐족이다"라고 글을 마쳤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앞서 올린 '민주개혁세력의 종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참여정부 5년에 대해 "재야와 야당이라는 이름으로 강물처럼 흘러온 우리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임무가 마감하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독재와 특권의 시대를 청산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적 임무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었던 재야와 야당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에너지는 독재와 특권 질서를 해체시킨 지난 10년의 성과로 고갈되어 버렸다"며 "우리는 지금 새로운 진보 개혁세력이라는 더 넓은 역사의 들판으로 근거지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반미 투쟁, 반기업 투쟁, 반시장주의 투쟁의 구호만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독재와 특권 질서를 해체한 그 순간,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재야와 호남의 단결된 지지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변화된 상황을 표현했다.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와 차별화된 새로운 비전 필요"

때문에 "한나라당이 아무리 부패정당이고 이명박 후보가 아무리 부도덕한 지도자라고 선전해도 우리에게 표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씨는 진보개혁세력이 전통적 지지기반과 이념으로부터 자기 혁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례로 영국의 토니블레어를 들었다.

그는 "도덕성 담론, 반부패 담론, 반특권 담론만으로 살아왔던 우리의 전통적 지지 기반 이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한 것이 아니다"면서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와 차별화된 새로운 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지했던 분들에게 우리가 이제까지 한 일은 다 잘못된 것이었고 실패했다고 말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혁신하는 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제 작은 힘이나마 새로운 진보개혁세력의 기치로 민주화 세력 30년의 역사에 객토 작업을 하려 한다"며 "뉴라이트인 저들과의 싸움에서 우리의 이념과 가치가 훨씬 더 세계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유익한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는 4월 총선에 민주당 이인제 의원의 충남 논산·계룡·금산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안씨는, 1월 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담금질'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

실낱같이 작고 좁게만 보였던 2002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습니다. 40여석의 숫자로 우리당을 만들어 2004년 헌정 사상 최초의 원내 제1당을 만들었습니다. 정권도 재창출했고 원내 제1당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점에 올랐던 우리의 행복했던 2004년을 기억해 봅시다. 그러나 사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거듭되는 산행처럼 우리의 이 성취는 또 다른 내리막길을 예고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어릴 적 매우 장난꾸러기였습니다. 하루라도 혼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죠. 특히 방학때가 되어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날들이면 언제 무슨 실수를 해서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까 아침에 눈뜨면 불안해지기까지 했었지요. 아침 일찍 혼나는 날이면 이제 하루가 편안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느긋해지기까지 했지요.

하루 웃으면 하루 우는 일이 세상 이치임을 저는 그때 깨달았지요. 볼륨있는 헬스클럽 선수들의 멋있는 몸매도 들어간 곳이 있으니 나온 곳이 있는 것이고 들어가고 나옴이 있어 전체적인 몸의 윤곽이 멋있게 보이듯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이렇다는 말로 책임져야 할 몫을 회피하거나 묻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집권 10년의 역사를 계속해서 지키지 못한 것, 거대 집권 여당 세력을 단결된 세력으로 가꾸고 지키지 못한 것….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친노(親盧)!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자신의 가족을 폐족(廢族)이라 표현하더군요. 예!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싸움이 한창이던 지난 계절에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실패했느냐고 항변하며 싸움을 독려했습니다만, 민주개혁세력이라 칭해져 왔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실상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결말을 보게 했으니 우리가 어찌 이 책임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불가능했던 정권 재창출도 했고, 최초의 여당도 만들었으니 이만하면 우리도 할 만큼 했다고 뒤로 자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새로운 시대로, 새로운 세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정립시켜야 할 책임을 우리는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성난 사자 우리에 떨어져서 그 울부짖음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사자 우리 안에 들어가겠습니다.

모든 권력자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한 몫 챙기는 부패세력이 되고, 모든 집권 여당이 부패한 정치자금으로 집권정당세력의 통치력을 확보하던 그 시절을 우리는 마감시켰습니다. 최선을 다해 밤을 낮 삼아 최선에 최선을 다해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정치, 한미관계, 대북정책, 복지정책, 지역균형발전, 노동정책, 경제정책, 부동산, 교육, 의료…. 모든 분야에서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2002년 대한민국이 합의할 수 있고 동원 가능한 최선의 정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노력이 국민과 우리 세력 다수의 합의와 지지를 얻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결정한 정책을 바꿀 수 없었다면 우리 모두를 변화시켰어야 했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의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습니다.

지금은 '무엇이 실패이고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씀입니까'라고 항변하기 전에 동의와 합의를 통해 힘을 모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입니다.

상을 치루는 3일 내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다가 삼우제를 끝내고 부모님 계셨던 빈방에 들어와 비로소 펑펑 울어버리는 어느 효자의 눈물처럼…. 그렇게 모진 마음으로 이 슬픔과 패배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실컷 울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폐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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