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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과도한 전도는 삼가주세요

신학생과의 대화

등록|2007.12.26 14:32 수정|2008.01.02 14:33
십자군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전투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돌아온 성전 기사단이 비참하게 해산당한 중세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데, 누군가 현관을 노크했다. 모두 퇴근하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신학생입니다. 학점을 위해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응해 주시겠습니까.”

유행이 훨씬 지난 낡은 가죽점퍼를 입고 있는 30대 중반 남자였다. 학생이라고 주장한 사람답게 그는 조금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날이 추웠다. 더구나 뭔가 배우겠다는 사람이라면 괜히 정이 가는 처지다. 들어오라고 했다.

"그럴 필요는 없고 여기서 잠깐...." 하다가 그는 내 성의를 뿌리치기 뭣했는지 마지못해 들어왔다.

“차와 커피가 있는데 고르세요, 날도 추운데.”

“아니 됐다”고 했다가 내 눈초리를 보더니 그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차” 라고 말했다.
그가 내 민 설문지를 단 5초 만에 작성해서 돌려주자 그는 10분을 들여다보았다.

“술 좋아하십니까?”

마오타이를 따라다가 마치 브랜디 온더록인 양 혼자 홀짝이던 내가 슬쩍 말을 건네자 그는 웃었다. 진작 따라준 차가 아직 김이 나는 채로 그 앞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당신이 지금 앞에 놓고 염불 외우고 있는 것은 예사 차가 아니라는 의미로 [中國名茶] 라고 크게 씌어져있는 붉은 차 통을 그 앞에 놔두었다. 내가 들고 있는 컵에서 진한 마오타이 향이 뿜어져 나와 사무실에 금방 가득 찼다.

“향이 독특하네요.”
그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 앞에 쓰여 있잖아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턱으로 한껏 오만하게 차 통을 가리켰다.

“아니, 그....지금 마시고 계시는 그 거 말입니다. 그것도 차인가요?”

“한번 마셔볼 테요?”

내 민 잔을 조금 마셔보더니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 술이네요? 그것도 독한.....”

내가 잔을 도로 받으며 웃었다.

“그건 겨우 중국명차지만, 이건 세계적인 명주올시다. 그 유명한 마오타이 술(茅臺酒)이라는 거죠.”

“독한데도 향은 정말 좋네요.”

“그러니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거지요. 마오타이라는 동네 사람들 이외에는.”

“중국 것을 좋아하시나 봐요?”

“좋은 중국 친구를 둔 덕분입니다.”

우리네 옛날 조상님들도 하느님을 믿었지요

내가 방금 작성한 설문지를 그가 내 앞으로 내 밀었다.

“교회는 가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존재는 믿는다고 하셨네요? 그리고 다른 종교는 없다고 하셨고...”

그가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느님은 까마득한 우리 조상 할아버지들도 믿으셨어요.”

“네에?”
그의 눈빛에서 의미를 모르겠다는 말을 뿜어냈다.

“옛날 분들도 하늘에 제사를 지냈지요. 그 게 어디 여호와한테 제사한 것이라고 봅니까?”

“아, 네에.”
그가 겨우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왜 교회는 가고 싶지 않다고 적으셨어요?”

“몇 번 가봤는데, 역시 내 체질엔 안 맞는 거 같아서요.”

그가 정색을 하고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도 내친김에 더 솔직하고 싶었다.

“교회도 부패했다는 말이 많더군요.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혹시 있던가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솔직하고 싶어 조바심은 나지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듯 했다. 그러나 어쩌랴. 순수한 대화를 거부하려는 그에게서, 그렇다고 뻔한 종파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잠깐만요. 신학생이라고 하셨죠?”

“네.”

“그럼 곧 목회를 하시겠네?”

“그렇죠.”

“그러니 선생은 부패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인구대비 제일 많은 교회를 가진 자랑스러운 이 나라에서 선생만큼은 진짜 하느님을 모시고 예배할 수 있는 길을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내 태도의 의미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내 책상으로 옮겨가 있었던 것이다.

“템플 기사단을 읽고 계시네요?”

그에게서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재미없는 책입니다. 자크 드 몰레를 아시나요?”
성전 기사단의 마지막 수장 이름이 나오자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잘 알죠.”

“나쁜 놈이죠? 하긴 그 때 교황도 나쁘긴 했죠. 프랑스 왕 필리프도 나쁜 놈이었고. 따지고 보면 나도 그 중 하납니다. 나쁜 놈이죠. 뭔가 해 보겠다는 사람을 이리도 구박하니.”
내가 웃었다.

“아닙니다. 선생님은 친절한 분인 거 같은데요.”
그도 웃었다.

“왜요?”
내가 거의 항의하듯 묻자 그가 차를 마시고나서 말했다.

“처음 보는 저를 이토록 대접해 주시지 않습니까.”

“난 아무한테나 친절을 베풀지 않아요. 곧 선생은 그 '아무나' 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내겐. 게다가 내 친절로 말 할 것 같으면 이 건 약과요. 난 선생한테 더한 대접을 할 참입니다.”

“무슨....”

“그 차 통을 가져가세요. 차를 좋아하시죠?”

“그렇기는 하지만....제 집사람이 사실은 더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그 차는 임자를 만났네요. 그 거 상당히 맛 괜찮은 차에요. 자신 있게 드릴 수 있습니다.”

“저한테 이걸 주시면 차를 못 드시잖아요? 선생님도 좋아하실 텐데.”

“말했잖아요. 내겐 좋은 중국친구가 있다고. 난 빽이 든든해요.”

거의 격투 끝에 내가 그의 가방에 차 통을 쑤셔 넣고 나자 그가 말했다.

“그래도 교회를 나가 보시면.....”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전도하지 마세요. 특히 내겐. 아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과도한 전도는 좀 자제 하세요. 난 그 게 교회인들이 시급히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중국명차사실은 제 아내가 더 좋아합니다. ⓒ 우광환



누가 누구를 핍박했던가

그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달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내 말은 그 뜻이었어요. 다시 말해 선생의 하느님이 창조하신 다양성의 조화를 즐기자는 말입니다. 그 게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길 일겁니다. 저 치들은 그렇지 못해서 벌을 받은 거라고 난 굳게 믿는 사람이죠.”

내가 책상 위의 책을 가리켰다. 거기 나오는 대표적인 세 사람은 다 혹독한 인생을 마친 사람들이다. 성전 기사단 마지막 수장이었던 몰레는 화형을, 당시 프랑스 왕은 급살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아비뇽으로 도망갔고 죽어서까지 악의 화신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개신교도들 역시 그 사람들한테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도 아실 텐데요?”

“선생의 개신교도들이 다른 종파들을 핍박한 것도 잘 알죠. 예를 들어 나사렛 목수간의 털보 청년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다르다 해서 여호와의 증인 같은 사람들을 인간으로 대우도 하지 않잖습니까?”

“하긴 그렇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솔직함 때문인지 체념했다. 하지만 나도 우울했다. 그래서 말했다.

“나는 단지, 법정 스님이 성당 주교님과 평생 우정을 나눈 것처럼, 미국의 라마교신자들이 친절하게 가톨릭 사제들에게 참선의 방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그리하여 그 사제들이 더욱 내면을 밝혀 자신의 하느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한 것처럼, 그런 인간관계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선생 같은 교회인도 나 같은 이단자를 친구로 사귀어보라는 거지요. 만약 그런다면 중국명차를 함께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극히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마오타이주차나 술이 떨어지거든 언제고 찾아오세요 ⓒ 우광환


차나 술이 떨어지면 언제든 오세요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서 예의를 차리느라 참았다. 내가 그에게 베풀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은 정성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작은 그 정성을 그가 모르더라도 그의 힘 센 하느님은 알아주길 열망했다. 그리하여 머리 좋고 지혜로우며 생각이 깊을 것 같은 그의 하느님이 내 마음을 그에게 전달해주었으면 한 것이다.

물론 나는 지혜롭지 못하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 주기를 바라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을 하찮게 여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사람이 유순하지만 배움에 열정적인 한 사람과의 교류를 종교로 인하여 종료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차가 떨어지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술 생각이 날 때도.”

그와 웃으면서 악수했다. 그를 보내고 나는 다시 성전 기사들하고 씨름했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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