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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책] <장정일의 공부>

공부해서 남주자~! 우훗훗~!

등록|2007.12.27 15:10 수정|2007.12.27 15:11

▲ <장정일의 공부> ⓒ 랜덤하우스코리아

나는 장정일을 잘 모른다. 시도 많이 썼고, 소설 또한 많이 썼다고 하는데, 미안하게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몇 해 전 방송인 김미화 함께 'TV, 책을 말한다'를 진행하는 걸 가끔 보았을 뿐이다. (흠, 그래도 그의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영화로는 보았군.)

아무튼, 내 뒷자리에 앉은 임채민 선배로부터 언젠가 "장정일은 읽고 싶은 책을 위해서라면 다른 지역 도서관도 수시로 찾아간다"라는 출처불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졸'이라는 것과 함께. 이것이 그에 대한 유일한 정보다.

지난해 연말이었나 보다. 즐겨 찾는 마산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훑어보았다. "참 많이도 읽었다. 이만큼 읽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한 사람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얼마나 될까?" 따위를 생각했었다.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 다짐했었다.

그런데 '다짐'이 조금 바뀌었다. 올 초 <미래공방>(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에서 발행) 3·4월호에 '시인은 왜 시를 접고, '공부'를 시작했나'라는 <장정일의 공부> 서평을 보았기 때문인데, 결정적으로 이 대목에서 '필'이 꽂혔다.

"장정일은 그저 한때 좋은 시를 쓴 적이 있으나 시인으로서의 역량이 고갈된 뒤에는 그냥 날품팔이처럼 글을 팔아 연명하는 그저 그런 글쟁이뿐이었다. 총명했던 한 시절의 성취, 열정적이던 한 시절의 헌신, 섬세했던 한 시절의 작품을 평생 우려먹는 사람들이 주위에는 오죽 많은가 말이다. 그런데 장정일 이 사람, 그렇지 않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겠단다. 과거 쌓아둔, 그래서 지금은 잘 눈에 보이지 않는 '내공'에 기대는 이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돋보인다."

보름 전 들른 마산도서관. 검색대에 <장정일의 공부>(이하 <공부>)를 쳐보니 '대출 가능'이라 나온다. 5월부터 여러 번 대출 시도를 했으나, 그럴 때마다 '대출 중'이었는데, 그야말로 "탱규베리감솨∼!" 앞으로 좋은 책은 돈을 주고 사봐야지.

책은 빌려다 놓았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거의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 지난 일요일(5일), 쉬는 날이라 작정하고 경남대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근 10시간만에 '독파'했다.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커피와 물, 약간의 휴식 외에는 책만 읽었다. 하므로 "정열적으로 쓴 책만이 정열적으로 읽힌다"라는 장정일의 말은 백 번 옳다고 하겠다!

<공부> 머리말의 한 대목이 내 눈길을 잡아챘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 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어느 자리에선가 들었던 '침묵은 곧 동의!'라는 말도 함께 떠올랐다.

장정일은 이 책을 2002년 대선 이후 한국 사회가 자신에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책읽기'를 통한 '세상읽기'랄 수 있겠다.

흔히 읽을 수 있는 여느 서평 집처럼 천박한 '훈계조' 따위는 없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관점을 녹여놨다.

<공부>는 23가지 주제를 다룬다. 특정 책(박노자의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등…)을 읽은 소감도 있고, 또 특정 주제('모차르트를 둘러싼 모험', 임지현 교수의 <대중독재론> 등등…)에 맞추어 읽었던 관련 책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이 책 속에서 호명된 책을 일일이 몇 권인지 확인하진 못했으나, 대략 백 수십 여권 정도가 되지 싶다. 읽다 보면 "이런 책도 있었나? 꼭 읽어봐야지"하는 욕심이 생긴다. 과거 잊었던 책들도 새록새록 떠오르고.(작년에 <공부>와 성격이 비슷한 책 2권을 읽었다. 고명섭 <한겨레신문> 기자가 쓴 <지식의 발견>(그린비 / 2005. 5), 최성일씨가 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책동무 논장 / 2002. 6).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진다.)

'지적 충만감' 때문일까. 책을 다 읽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뿌듯한 웃음 말이다. 더 알고 싶은 호기심도 생겼고. 장정일은 머리말에서 "이 책을 읽어 줄 젊은 독자들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 봐야지'하고 발심(發心)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는데, 내가 딱 맞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다시 장정일이 머리말에서 "링컨·네오콘·개혁과 혁명 등의 30여 가지 주제가 더 계획되어 있었으나, 글을 써 모으는 도중에 이 책의 원고가 든 컴퓨터 파일을 모두 잃어" 버렸다는 이 언급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졸업을 하기 전에 취직이 돼 버렸다. 이에 대한 배려로 알고 지내는 교수는 수업 대신 <사회복지의 역사>를 읽고 종강 때까지 요약하라고 했다. 그런데 차곡차곡 정리한 파일이 제출 몇 시간 전, 마지막 다듬기에서 그만 몽땅 날아가 버렸지. 교수한테 겨우 사정사정해 며칠 '딜레이' 시킬 수 있었지만, 나는 게으른 학생으로 찍혀 버렸다. 아무튼, 그때의 악몽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부디 몇 년 뒤에는 <장정일의 공부 2>를 볼 수 있기를, 아니 <장정일의 독서일기 1∼6>처럼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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