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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형보다 비싼 사형제...폐지로 세금 절감

[해외리포트] 텍사스 빼고는 사형폐지 가속화... 최근 뉴저지도 폐지에 동참

등록|2007.12.28 14:58 수정|2008.01.03 17:06
구역예배 시간이었다. 성경공부 인도자는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풍조'를 탄식하는 것으로 순서를 시작했다.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신문기사를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기사 내용은 이러했다. 한 미국 남성이 낙태시술로 아기의 목숨을 빼앗은 의사를 살해했다는 이야기였다. 그에게는 유죄가 선고되었고, 결국 사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인도자는 이 사건을 통해 안타까운 "두 명의 살인"을 이야기했다. 아기의 죽음과 의사의 죽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 명의 죽음이 아닌가요?" 그러나 그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기 전까지 왜 '세 명의 죽음'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형폐지로 가는 미국

▲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 여부는 주정부가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이미 13개주가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했고, 3개주가 지난 35년간 단 한 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밖의 다른 주들도 이와 같은 사형폐지 움직임에 가담하면서 사형집행비율이 매년 급속 하락하고 있다. 지도에서 파란 색으로 표시된 곳이 완전폐지 지역이고, 녹색이 사실상 폐지한 주며, 붉은 곳이 사형제도를 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 Wikimedia Commons


미국에서 사형제도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이미 12개 주가 오래 전 사형제도를 폐지한 상태며, 최근 뉴저지주가 사형제도 폐지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이 대열에 동참했다.

올해 말에 뉴저지주가 사형제도를 폐기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상 이 선언은 상징적 의미가 컸다. 뉴저지주는 1963년 이래 한 번도 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사형폐지 주'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실상 사형폐지 주'가 3개나 된다. 사형을 집행해 온 주라도 그 수는 지극히 미미하다. 17개 주에서 지난 35년간 집행한 사형 횟수는 한 자리 수에 머무르고, 9개 주도 일년 평균 1회 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군당국조차 지난 35년간 한 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사형을 집행해 온 주 가운데에서도 사형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뉴멕시코주의 하원과 몬태나주의 상원이 사형제도 폐지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 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미국 전역의 사형집행 비율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2005년에 32% 감소했던 미국평균 집행률은 2006년에 45% 감소했고, 올 해에 62%가 줄었다.

이런 움직임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 있다면 텍사스주 정도일 것이다. 텍사스주는 지난 35년간 매년 평균 10명 이상을 사형한 유일한 주다. 텍사스의 '꾸준한' 집행은 미국 전역의 사형폐지 움직임과 맞물려 전 국민의 주목거리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12월 26일자 기사에서 '텍사스가 미국전체 형 집행의 60%를 차지'해 사형을 '독점'하는 모양새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텍사스의 한 법대 교수 말을 인용해 "다른 주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텍사스가 사형을 집행하는 유일한 주가 될 것"이라고 썼다.

기로에 선 한국

한국은 사형제도를 가진 나라지만, 지난 10년 간 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대다수 나라들이 '사실상 사형 폐지'라는 단계를 거쳐, 법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완전한 '사형 폐지국'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한국도 이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10년간의 사형 미집행은 그 동안 집권했던 여당의 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를 이끌어갈 이명박 당선자는 사형제도 찬성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도 공화당 지지기반이 두터운 보수정치 성향의 주에서 사형 찬성론이 힘을 얻는 경향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런 경향은 복음주의 기독교 전통이 강해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불리는 남부 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수정치성향과 강한 복음주의 사이에는 '생명 존중'에 대한 모순적인 담론이 발견된다. '태아도 생명'이라며 낙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사형제도는 굳건히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사형제도 폐지 움직임으로 인해 보수성향의 주에서도 사형제도 찬성론이 힘을 잃고 있다. 비록 다른 주들의 급속한 폐지로 인해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텍사스의 사형집행률은 지난 10년간 서서히 줄어 13% 하락했다. 

▲ 사형제 문제를 다룬 영화 할리우드 영화 <데드맨 워킹>의 한 장면. ⓒ


종신형보다 돈이 더 드는 사형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논리는 고전적 도덕론에서 경제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죽음에는 죽음으로'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논리의 확장을 비롯해, '사형제도는 강력범죄를 막는 효과가 있다'는 억제 또는 예방의 논리, 그리고 '왜 국민 세금으로 흉악범에게 평생 동안 집과 음식을 주느냐'는 경제 논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논리 가운데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억제가설(deterrence hypothesis), 즉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목숨을 빼앗는 것을 막는다'는 논리는 '한 일에 대해서만 처벌한다'는 법정신과 동떨어진 '본보기 처벌'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은 '사람을 도구로 써서는 안 된다'는 기본 윤리에도 위배된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가 '합당한 처벌'과 거리가 있다는 말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형이 종신형보다 싸게 먹힌다'는 주장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에이피(AP) 뉴스의 12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사형수 한 명을 집행하기까지 드는 비용은 1백 만불에서 3백 만불이다. 종신형에 드는 비용을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사형수들은 사형선고와 집행을 막기 위해 소송을 최대한 장기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소송관련 비용도 늘어난다. 집행 전까지 사형수를 가두어 두는 특수시설 자체도 별도의 비용을 요구한다. 뉴저지주의 사형제도 폐지에는 윤리적 고려뿐 아니라 산술적 판단도 크게 작용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만으로도 연간 146만불의 소송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얻었다. 사형을 종신형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상당 액수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듀크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으로 대신할 경우 한 사람당 216만불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에 따르는 가장 큰 논란은 윤리적인 문제다. 국가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국민들에게 '다른 이의 생명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캐피털타임즈>는 사설에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정부가 스스로 '살인범'이 되는 모순을 이렇게 지적한다.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정부가 있다면, 자신들이 살인범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살인제도는 교도공무원들을 국가가 고용한 살인청부업자로 격하시키며,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세금은 목숨을 빼앗은 대가로 지불되는 수고비 운명이 된다." (<캐피털타임즈> 2007. 12. 24. 사설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사형제도 찬성자들은 집행을 지켜보라'

▲ 감옥박물관에 전시된 전기사형의자. ⓒ 홍은택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말한다. "사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형 집행 장면을 지켜봐야 한다"고. 자신이 지지하는 제도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있는데, 마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듯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사형수가 버둥거리고 껄떡거리고 지지직 타들어가고 소스라치고 움찔거리고 콜록거리다가 저의 더러운 영혼을 하느님께 되돌리며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더 솔직했다. 그들은 처형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표를 샀고, 죽어가는 사형수를 보면서 미친 듯이 좋아라 했다. 당신 역시 사형이라는 최고의 정의를 지지한다면, 먹고 마시면서, 아니면 무엇이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좋아해야' 마땅하다. 사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마치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163~164쪽)  

한국의 일부 보수언론은 사형집행을 미루는 것을 '무능한 정부'의 지표라며 비판했다. 나는 다음 정부가 무능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유능함'을 서둘러 과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당선자의 정체성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사랑의 종교'를 믿는 그의 신앙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눈 내린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한 일간지는 다음과 같은 사설로 성탄을 기념했다. 40년 전에 사형제도를 폐지한 주에서 발행된 신문이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우리는 예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예수는 역사가 기억하는 사형제도의 가장 억울한 희생자였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법과 도덕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재판관은 그리스도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결국 그는 사형국가가 고용한 병사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혔다. 2000년이 지난 현재,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칭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나서는 사람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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