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에 동그라미 치던 아버지의 추억
집안 대소사 적어 놓는 일은 새 달력에 대한 '의식'
▲ 숫자만이 크게 있는 달력이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적기에는 더 없이 좋은 달력이다. ⓒ 성하훈
우당탕탕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던 어린 시절, 집에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기다려졌던 것은 혹시 오늘은 뭔가를 사오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빈손으로 들어오지 않으시고 한 손에 항상 무엇이라도 들고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그래서 늘 기다려지던 존재였다. 아버지 손에 무언가 들려있는 것을 볼 때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가웠고, 그것을 먼저 받기 위해 형제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연말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것은 어디선가 받아 온 둘둘 말린 달력이었다. 비록 먹을 것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작은 무엇이라도 아버지 손에 들려 있으면 그 자체로도 반가움이었고 호기심이었다.
마루로 뛰어나가 아버지께 인사를 했던 것은 그것이라도 형제들보다 먼저 선점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응 달력이야.”
알면서도 묻는 질문에 아버지는 친절하게 답해 주셨고 나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넘겨받은 달력을 먼저 펼쳐보기에 정신이 없었다. 월별로 화사한 사진이 곁들인 달력 속 열두 장의 작품들은 새롭게 시작될 일년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했다.
그 시절 새 달력을 보며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새해에는 빨간 날이 무슨 요일인가였다. 연휴라도 끼어 있으면 입이 찢어졌고, 일요일과 겹친 휴일을 볼 때면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새 달력을 넘기며 생각하는 나의 일년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1월은 신나는 겨울방학 기간이었고 2월을 넘기며 개학에 아쉬워했지만 곧 이어지는 봄방학에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지금은 설날이 위치해 노는 날이 많은 달이지만 어린 시절 공휴일이 아니었던 설날은 그저 평일에 불과했다. 3월은 새 학기의 시작이었고, 본격적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달이라서인지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4월은 빨간색으로 표시된 식목일이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었고, 또 한편으로 소풍이 끼어 있는 달이었기에 그나마 기대감을 갖게 하는 달이었다.
▲ 탁상달력 ⓒ 성하훈
9월에 희망을 가지는 것은 추석 때문이었다. 특별히 쉬는 날이 없는 달, 빨갛게 표시된 추석이 주는 위안은 컸다. 10월도 개천절이나 당시 공휴일이었던 국군의 날과 한글날 덕택에 괜히 뿌듯함이 생겨나는 달이었고, 그 때문인지 주일 빼고는 노는 날 하루 없는 11월은 삭막하게 생각되는 계절이었다. 12월로 들어서며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 시작도 안 된 1년을 그렇게 섭렵하고는 했다. 1월~12월까지 열두 달을 차례로 넘기며 희로애락으로 변하던 표정과 함께.
열두 달을 넘겨보며 희로애락으로 변하던 표정
새해가 가까워져오며 여러 개의 달력들이 생겨나지만 그 중에서도 아무 그림 없이 숫자만이 크게 표시된 달력이 언제나 우리 집의 대표달력이었다. 왜냐하면 그 달력에 우리 집의 대소사가 표시됐기 때문이다.
새 달력이 들어온 날이면 아버지는 언제나 저녁밥상을 물리신 후, 굵은 싸인펜을 들고 나타나 달력을 펼쳐 들었고, 가족들은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것은 새 달력이 생긴 것에 따른 ‘의식’이기도 했는데, 그 의식은 가족들의 생일을 포함한 집안의 대소사를 달력에 적는 것이었다.
“아버지, 이날이 제 생일이에요.”
한 장 한 장 차례로 달력이 넘어가며 자기의 생일이 있는 달을 지날 즈음, 형제들은 혹시라도 그냥 넘어갈까봐 각기 자기의 생일을 가리켰고, 짐짓 모른척 시치미를 떼시던 아버지의 펜이 ‘OO이 생일’을 써 넣을 때면 서로들 괜히 기분 좋아 웃고는 했다.
열두 달 중 2월에 있는 내 생일이 가장 먼저 표시됐고, 3월에는 동생의 생일과 할아버지의 기일에 동그라미가 쳐 졌다. 할아버지 기일을 표시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기일’이라고 적어 놓은 후 잠시 생각에 잠기시곤 했다.
그럴 때는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기일인데 왜 아버지 기일이라고 써요?”
“너희한테는 할아버지지만 아버지한테는 아버지잖아. 그러니까 ‘아버지 기일’이 되는 거지.”
“아 그렇구나.”
그렇게 대답은 하면서도 할아버지 기일에 큰 관심이 가지지는 않았다. 물끄러미 그날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빼고는.
▲ 탁상달력고급스런 분위기를 풍기는외식업체의 탁상달력 ⓒ 성하훈
달라진 달력, 바뀌어진 일년 생각
얼마 전 구한 외식업체에서 나온 탁상달력은 그림이 들어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빨간 색상의 표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특이하게 보인 것은 2월 14일에 발렌타인데이가, 3월 14일에는 화이트데이가 표시돼 있는 등 요즘 젊은 세대가 많이 챙기는 날들이 표기돼 있다는 것이었다. 5월 14일은 로즈데이가 적혀 있었고, 10월 14일은 와인데이가, 10월 31일은 할로윈데이에, 11월 11일에는 빼빼로데이까지 다양한 기념일들이 빠짐없이 표시돼 있었다.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오는 요즘 달력처럼, 나 역시도 새 달력을 넘겨보며 생각해 보는 일년은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1월에는 추위에 따른 난방비 걱정을 해야 하고, 2월에는 설 전후로 선물 돌릴 곳과 인사 다닐 곳에 대한 고민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3월에는 ‘경기가 제대로 풀려야 될 텐데’ 하는 한다는 바람만이 가득했다. 4월에 확인하는 4.19 기념일과, 5.18을 전후해 광주에 다녀와야지 생각하는 5월. 그리고 6월로 달력을 넘기며 챙겨보는 6.10 항쟁은 올해 더 치열하게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7월을 보며 휴가 때문에 며칠씩 놀아야 한다는 걱정을 한다면, 8월로 달력을 넘기며 드는 생각은 무더위를 건강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고, 9월은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 산소에 대한 벌초 생각만이 떠올려지는 시간이었다. 10월 부산으로의 영화 여행이 그나마 고대되는 시기라면, 11월은 쌀쌀해져 갈 날씨에 월동준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고,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바라보며 '올해도 이 달력 넘기는 속도처럼 정신없이 지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심난해지며 또 다른 희로애락이 얼굴에 가득할 뿐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
새 달력을 구한 날, 나 역시 새 달력에 가족들의 대소사를 먼저 적어 넣은 것은 어릴 적부터 보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1월부터 차근차근 넘기며 집안 대소사를 표시해야 하지만 바로 9월로 넘겨 음력 8월의 어느 날을 찾은 것은 올해부터 내 달력에 표시되기 시작한 ‘아버지의 기일’을 먼저 적기 위함이었다. 이전에는 아버지 생신을 적어 넣었다면, 이제는 아버지 기일을 적어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어릴 적 할아버지의 기일을 표시하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할아버지 기일에 동그라미를 치며 ‘아버지 기일’이라고 써 넣으시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 ‘아! 그 때 당신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 생각이 들며 괜히 마음이 뭉클해 졌다.
새 달력은 그렇게 세월이 지나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머지 가족들의 기념일은 예전처럼 변동 없이 표시되었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라는 글자 다음에 ‘생신’ 대신 ‘기일’을 써 넣어야 하는 현실.
물끄러미 쳐다보는 새 달력 저편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던 시절이 겹쳐지듯 떠오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2008 달력이야기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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