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방 앞서울 창천동(동교동) 큰길가에 자리한 큼직한 헌책방 <글벗서점>. ⓒ 최종규
〈1〉 서울 나들이
일터인 도서관에 내걸 사진을 찾으러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전철을 타고 터덜터덜 종로3가까지 갑니다. 먼 나들이를 하는 동안은 책을 읽으며 쉬는 때. 도원역부터 한 시간 남짓 조용히 앉아서 느긋하게 책 하나 읽습니다.
단골 사진관에 맡겨 놓고 있던 사진을 찾습니다. 한 짐이 됩니다. 사진값으로 나가는 돈이 적잖습니다. 값을 치르고, 찾은 사진은 가방에 넣고 나오며 속으로 셈을 합니다. 이달에도 나가는 돈만 잔뜩이니 살림은 참 힘들기만 하구나.
그렇지만 이 사진들 몇 가지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또 이 사진들 가운데 한 장이라도 누군가한테 마음 깊이 다가갈 수 있다면, 사진을 팔 생각은 없지만 이 사진들 가운데 한 장이라도 누군가 사고 싶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발걸음을 돌려 신촌으로. 부랴부랴 헐레벌떡 버스를 탑니다. 전철에서 내린 지 삼십 분을 넘지 않으면 갈아타기가 되어 차삯을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으니.
큰 가방 등에 메고 사진기가방 따로 하나 들고 작은 가방 하나 앞에 멘 차림으로 버스에 타기란 쉽지 않습니다. 앞뒤로 자리를 많이 잡아먹으니까요. 전철이라고 수월하지 않습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온몸이 땀범벅이고 겨울에도 소매 걷어붙이면서 땀을 흘립니다. 한참 걷고 다니고 하다가 가방 한 번 내려놓을라치면 등짝이 없어진 듯 시원합니다. 다친 왼어깨 때문에 왼팔을 머리 위로 들 수 없지만 억지로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풀어 주고 다시 가방을 이리저리 메면 새힘이 솟습니다.
▲ 책꽂이<글벗서점> 사장님은 예전에 서울 홍익대 앞에서 헌책 장사를 하셨습니다. 예전 자리는, 그곳에서 일하던 젊은 분들한테 넘겨주고, 당신은 이곳으로 옮겨 와서, 책꽂이도 모두 새로 맞추면서 열었습니다. ⓒ 최종규
〈2〉 떠나는 이만 많은 곳에서
버스는 동교동에서 내립니다. 아니 창천동. 큰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홍익대 옆 동교동이고, 버스 내린 이곳은 연세대 옆 창천동입니다. 여태껏 동교동이라고만 말해 왔고, 버스에서 내릴 때 나오는 안내방송에서도 ‘동교동’을 말하는데, 이 동이든 저 동이든 사람들 살아가는 자리는 다르지 않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행정구역 금으로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갠다 해도.
문을 당겨 안으로 들어갑니다. 헌책방을 지키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가방을 셈대 옆에 내려놓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책이고, 셈대 둘레에는 갓 들어온 헌책들이 책방 일꾼 손길을 기다리며 쌓여 있습니다. '글벗서점' 살림을 지키는 아주머니 두 분은 밥먹는 때를 빼고는 하루 내내 책 손질을 하랴, 알맞는 자리 찾아서 꽂아 두랴 바쁩니다.
요즈음 헌책은 ‘헌책방을 거의 안 가 보고 고정관념으로만 말하는 사람들 눈길’처럼 낡거나 지저분하지 않습니다. 고물상에서 모아 오든, 아파트에서 가져오든, 가정집에서 사들여서 마련하든, 헌책방 일꾼들이 바지런히 손질하고 닦고 매만진 다음 꽂아 놓기 때문에, 퍽 깨끗합니다. 다만, 이 ‘깨끗함’이란, 물류창고에서 바로 나와서 새책방에 꽂히는 그런 깨끗함하고는 다릅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책이라 하지만, 이런 손때를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정갈하다는 소리입니다. 요즈음은 책 파는 사람들이 지저분하게 보다가 내놓는 책은, 헌책방 일꾼들이 처음부터 잘 안 삽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헐거워도 손사래를 치고 있’으니, 헌책방 일꾼들이 책을 살 때에도 ‘깨끗하냐 아니냐’를 놓고도 많이 가려요.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찾는 만큼 책방에서 책을 갖추잖아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를 찾고 스테디셀러를 찾기 때문에, 큰 새책방이건 작은 새책방이건, 이렇게 ‘많이 팔리는 책’을 눈에 잘 뜨이는 자리에 널찍하게 마련해 놓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살필 때 다양성과 개성으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아예 안 헤아리지는 않습니다만, 다양성과 개성에 따라 책을 살피는 눈길은 매우 드뭅니다. 속에 담긴 알맹이나 줄거리를 자기 손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살피는 눈길도 무척 드뭅니다. 낯선 이름(지은이, 펴낸곳) 붙은 책을 선뜻 고르는 손길도 퍽 드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가 담겼다고 하더라도 제 전공분야가 아니라 하면 ‘그런 책까지 읽을 겨를이 없어’ 하고 도로 내려놓습니다.
▲ 찾는 사람 몫헌책방 헌책뿐 아니라, 새책방 새책도 찾는 사람 몫입니다. 알아보아야 살 수 있는 책이며, 알아보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찾아내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최종규
책을 찾는 손님들 매무새가 이러하다면,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어떤 책을 어떻게 마련하여 어떻게 갖추어 놓을까요. 책방에서 책 갖춤새가 이러하다면 출판사에서는 어떤 책을 어떻게 엮어내어 어떻게 펴내려고 할까요. 출판사에서 펴내려는 책 엮음새가 이러하다면, 책 원고를 써낼 글쓰는 이, 사진찍는 이, 그림그리는 이는 무엇을 어떻게 빚어내어 작품 하나로 내놓으려고 할까요.
<야구의 추억>(김은식, 뿌리와이파리, 2007)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언론사로 들어갔던 보도자료가 흘러나온 듯.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집어듭니다.
.. 한국야구의 발상지라는 자존심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진 채, 오히려 전설적인 패배와 꼴찌의 기록들을 거듭 바꾸고 깨뜨리며 끝없이 곤두박질쳐 온 인천 야구 13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만년 꼴찌 인천팀 돌핀스가 최강팀 트윈스의 선발 이상훈을 밀어붙이며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남의 일로만 여기며 부러워하던 한국시리즈 우승컵이 현실의 영역으로 한 발짝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마운드에 오른 김용수는 돌핀스의 간판 김동기를 병살타로 처리했고, 원정 응원석의 분위기는 일순 얼어붙었다. 병상타만 아니면 무엇이 나와도 좋았을 순간에 거짓말처럼 튀어나온 병살타. 그리고 홈 흥원석의 득의만만한 환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물러나는 김용수의 뒷모습 .. 〈125쪽 / 김홍집-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눈물의 영웅〉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인천사람 스스로, 또 인천 바깥사람들까지도 인천이라는 곳을 ‘꼴찌’나 ‘패배자’나 ‘뒤떨어짐’으로 여기곤 합니다. ‘서울로 가려는 사람’이 잠깐 머물면서 힘을 모아서 서울로 가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마음먹는 사람치고 인천을 벗어나 서울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 때문일까요. 서울로 가려다가 서울을 못 가고 인천에 뿌리를 박게 되었다면, 그이 깜냥이 모자라서일 수 있지만, 잠깐 머물려고 하던 인천이라는 곳이 사람 살기에 좋았기 때문은 아닐는지.
.. 1999년은 인천의 야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다. 최초의 우승이라는 선물이 감격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만큼 깊은 애정을 보냈던 현대 유니콘스가, 그해 겨울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기 위해 인천을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인천 연고지를 물려받은 것은 신생팀 SK 와이번스였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고 선동열이나 최동원처럼 포효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이 빠진 표정으로 눈물을 그렁거리며 마운드를 걸어 내려오던, 98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의 정민태를 보면서 눈물 젖은 환호성을 질렀던 인천 팬들. 그들이 그렇게 정을 주었던 순수들은 고향을 버린 현대 유니콘스에 모여 있었고, 인천 연고권은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신생팀 SK 와이번스에게로 돌아갔다 .. 〈63쪽 / 김경기-그와 함께해 인천은 행복했네, 미스터 인천〉
누구나 자기가 깃든 삶터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동구 송월동, 송림동, 신흥동은 오래된 도심지이기도 하나, 이보다도 ‘야구장이 바로 코앞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번듯한 새 야구장을 지어 놓는 바람에 숭의동에 있는 오래된 야구장은 허무니 마니 하는데, 바로 이 숭의동 야구장 곁에서 살고 놀면서, 야구라는 공놀이를 온 동네 아이들이 언제나 즐겼습니다. 장비 마련에 돈 많이 드는 야구이지만, 동네 아이들 공놀이에는 테니스공이나 짬뿌공 하나면 넉넉합니다. 야구장갑 없으면 맨손으로 받으면 되고, 야구방망이 없으면 길가에 널린 나무막대기 가운데 쓸 만한 녀석을 주워서 조금 손보면 넉넉합니다.
고향 야구단은 후원회사가 늘 돈이 없어 허덕이기도 했으나, 앞날이 밝은 새싹이라는 선수는 죄 서울로 빠져나가는 통에, 지역에서 꿋꿋하게 힘쓰며 커 나가기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인천이 큰도시라고 하지만 대구나 부산이나 광주나 대전하고 다른 대목은 이런 데에 있습니다.
▲ 책시렁책 하나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책이 꽂혀 있는 책시렁이라고 해도, 우리한테는 한낱 종이뭉치만 쌓여 있는 셈입니다. ⓒ 최종규
<생활의 지혜>(미끼 기요시/신기수 옮김, 경지사,1963)라는 묵은 책이 보입니다. 생활철학이라고 해야 할는지, 차분하게 읽으며 가만히 돌아보도록 하는 이야기가 좋은 책입니다. 이번이 기요시 님 책으로는 세 번째 만남인가.
.. 뜬소문에 떠도는 것과 같이 비평하는 비평가는 많다. 그러나 비평을 역사적 확률을 문제로서 취급하는 비판가는 드물다.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는 바레리가 그러하다. 이러한 비판가에는 수학자와 같은 지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비평가가 독단적인 것인가, 또한 얼마나 많은 비평가가 자기나 세상이 믿고 있는 것과 반대로 비평적이기보다 실천적인 것인가 .. 〈207쪽〉
〈3〉 사진과 만화
<Pictorial Korea 1970>(International publicity league of Korea)이라는 사진책을 봅니다. 나라밖으로 한국 문화와 사회를 보여주고자 엮어낸 화보로, 요사이는 ‘한국 화보’로 이름을 바꾸어 나오는 사진책입니다. 알파벳으로는 ‘KOREA’라고 쓰지요. 예전 판 묵은 화보를 드물게 헌책방에서 만나곤 하는데,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욱 살피면, 이 나라 독재정권이 ‘우리는 독재정권이 아니에요. 북녘이 독재정권이지, 남녘은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데요, 북녘이 꽉 막힌 나라이지, 남녘사람들은 얼마나 평화롭고 평등하고 넉넉하게 살고 있는데요, 북녘사람들이나 가난하고 굶어죽고 있지 ……’ 하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뒤로 나오는 ‘한국 화보’는 구경해 보지 못해서 모릅니다만, 요사이는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 구석구석 그늘진 자리까지 찾아가면서 담아내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 한쪽 모습만이 아니라 온갖 모습을 담아내고 있을까요. 우리 문화와 발자취를 권력자 중심이 아닌 여느 사람들 편에서 한 번쯤이라도 바라보거나 부대끼려는 눈길을 담아내고 있을까요.
만화책 두 권을 봅니다. <차달례 부인의 사랑>(배금택, 수경출판사,1994)과 <속 종로 고금소총>(배금택, 수경출판사,1990). ‘어른만화’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책. 그러나 아잉아잉 하는 그림은 하나도 없는 만화책. 열아홉 살 아래 아이들한테 읽히면 안 된다고 하지만, 열아홉 살 아래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서 나쁠 대목이 어디에 있을는지. 성교육과 성놀이가 제대로 나뉘어 있지 않고, 아니,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임을 생각한다면, 열아홉을 넘기고 ‘자기 스스로 사랑하는 짝을 만나 아이 낳고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어디에서 누구한테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남자와 여자가 나누는 사랑은 ‘누가 안 가르쳐 주어도 저절로 깨달아 얻을’ 수 있을는지요. 재미나게 사랑을 나누고, 서로를 좀더 깊이 헤아리고 받아들이면서 사랑을 나누며, 남녀가 저마다 다른 몸과 마음을 부둥켜안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이야기책은, 이야기판은, 이야기틀은 우리 둘레에 없어도 될는지요.
▲ 문가문가. 왼쪽이 셈대이고 오른쪽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 최종규
<속 종로 고금소총>을 보니, 두 번째 이야기 '아아∼ 대한민국'에서, “우리 나라는 좋은 나라인데 국민성이 이럴 리가 있나? 좌우간 이 나라에 언제부터인가 노조운동이라는 게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노조운동이 성과를 올려나가자, 여기저기서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투쟁만 하면 신통하게도 월급이 막 올라갔다. 근데, 진짜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착취만 당하던 근로자들만 자기 권리를 주장했으면 뭐랬겠나? 어느 날 전국의 깡패들이 한 자리에 모이더니… 다음엔 전국의 창녀들이 또 한 자리에 모였다고… 그 다음엔 전국의 거지, 날치기, 들치기, 소매치기, 야바위꾼, 도박꾼, 기둥서방, 여기까지도 뭐, 괜찮다면 괜찮았다. 얼마 있더니 이번엔 점잖으신 훈장님들께서 모이시더니… 뒤이어 회사 고급 간부들도… 그뿐인가? 전국의 박사, 석사…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국민학생, 유치원생… 마지막으로 대통령 노조까지 생겨서 서로 물고 뜯고 할퀴어댔다”하고 줄줄줄 이어집니다.
살며시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셈이라 할 텐데, 글쎄, 비판은 비판 같기는 한데 어쩐지, 좀 켕기는데. 그렇지만 뭐, 어른만화를 어른만화답게(?) 그릴 수 없는 우리 나라에서, 비판다운 비판을 마음껏 할 만한 터전이란 없을 테니까.
〈4〉 돈과 아파트
이럭저럭 고른 책을 가슴에 안고 셈대로 갑니다. 고른 책을 아주머니한테 건넵니다. 책값을 치릅니다. 더 보고 싶은 책이 있지만, 오늘 이곳에서 주루룩 넘겨서 본 것만으로 즐겁지 않느냐 생각하기로 합니다. 주머니가 받쳐 주는 만큼만 골라야지요. 주머니가 안 되면, 꼭 사야 할 책만 사야지요. 주머니가 된다 해도, 내가 즐겁게 받아들이며 읽을 수 있는 책만 사고요. 읽을 수도 없으면서 사놓지 말고, 받아들일 만한 마음그릇도 안 되는 주제에 책만 잔뜩 쟁여 놓지 말고.
사진으로 제법 찬 가방은 책 몇 가지로 꽉 찹니다. 어깨에 메니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땀 꽤나 빼겠군.
▲ 쌓여 가는 책우리한테 반가울 책도, 우리가 반가이 여기지 않는 책도, 하루하루 늘어나며 쌓여 갑니다. ⓒ 최종규
어깨에 눌리는 무게를 느끼며 창천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큰길가는 차소리로 시끄러운데, 골목길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사그라듭니다. 그러나, 골목길을 부아아앙 누비는 오토바이와 부르르릉 누비는 자동차들이 걸음을 막습니다. 배달 오토바이는 언제나 바쁠 테지요. 길을 가는 사람들한테 아랑곳할 틈이 없겠지요. 골목길 내달리는 자동차도 한결같이 바쁘겠지요. 길을 걷는 사람들한테 마음을 기울여서 빠르기를 늦추거나 빵빵질을 않거나 넓은 길로 돌아가려는 씀씀이를 바랄 수 없겠지요.
우리 말로 풀면 ‘새마을’인 ‘신촌’은 지난날 달동네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달동네 자취를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최호철 님이 그린 <괜찮아>(낮은산)라는 그림책을 보면 1960년대 신촌 달동네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달동네에는 계단이 많아 자동차는 들어올 수 없어요. 자전거도 쉬엄쉬엄 달리고(언덕길이니 더욱), 계단에서는 들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런 달동네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자동차에 치일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골목길은 온통 아이들 놀이터요, 어른들 일터가 됩니다.
요즈막은 골목집을 한 줄로 곧게 잘라내어 밀어붙이고 찻길을 넓힙니다. 이렇게 넓어진 골목 한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가 서 있습니다. 집을 밀어내고 차 쉼터를 마련한 셈입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놀이터를 빼앗기고 어른들 스스로도 동네 일터를 버립니다. 그러고 얼마쯤 뒤에는 집임자가 ‘낡아서 못 쓰겠다’고 하면서 옛집을 허물고 빌라를 세웁니다. 집임자는 낡아서 못 쓰는 집이라 허문다고 말하지만, 못 쓰는 집이 아니라 달삯을 많이 받기 어려운 집이었겠지요. 더 많은 사람이 살게 하여 더 많은 달삯을 받게 할 빌라가 한결 좋겠지요. 이렇게 올려세워진 빌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헐리고 아파트로 바뀝니다. 아파트가 되면 훨씬 많은 사람을 겹겹이 포개어 놓고 더 많은 달삯을 받아챙길 수 있으니까요.
창천동에도 새 아파트가 우뚝우뚝 솟았습니다. 골목길을 걷다가 길이 막혀 버립니다. 예전에는 틀림없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골목이 막혀서 오던 길을 거슬러 가야 합니다. 30층은 넘겠지? 쇠그물울타리로 막힌 건너편 아파트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저런 시멘트 겹겹이집을 볼 때면, 수용소나 감옥에 갇힌 듯해서 숨이 막혀 죽겠다는 생각뿐인데, 저런 수용소나 감옥이 뭐가 그리도 비쌀까. 저런 수용소나 감옥에 갇힌 채 리모콘 깔짝대며 텔레비전 보니 즐거운가? 겹겹이 시멘트집 골방에 틀어박혀 셈틀 화면만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면 세상이 살맛이 나나? 창천동을 빠져나와 연희동 큰길가에 자리한 조그마한 헌책방으로 들어갑니다.
▲ 책방 들어서는 문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한테만 트이게 되는 책길이요 책문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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