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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에 쏙, 밀국낙지' 이젠 어디에도 없어

[르포] 태안 맨손어업 종사자, 피해 증명 못해 보상도 막막

등록|2008.01.01 23:19 수정|2008.01.17 11:38

답답한 심정맨손어업을 하던 피해지역주민이 답답한 심정에 담배를 입에 물고 물끄러미 갯벌을 바라보고 있다. ⓒ 정대희


"구녕에 쑥하고 집어넣으면 쏙하고 나왔는데 말여…."

충남 태안군 이원면 일대 갯벌에서 지난 25년간 밀국낙지를 잡아왔다는 정학태(45·당산3리)씨. 낙지잡이로 올린 수익이 주 수익원이었던 그는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약 한 달이 넘도록 아직까지 이렇다 할 생계지원 정책이 없어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생계지원금으로 충남도에 300억원을 전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작은 희망을 가졌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실제 수령일은 1월말 정도가 될 것이라는 뉴스보도에 다시 한 번 절망했다고 한다. 

"50마지기 농사짓는 것보다 낙지 잡아 파는 게 훨씬 낫다니께. 근데 이젠 뭐 다 틀렸지 뭐. 표본 채취하려고 돌아다녀 봤는데도 하나도 안 보여."

기름 유출사고로 입은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물 확보를 위해 갯벌에 나갔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는 안대헌(38·당산3리)씨. 그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맨손어업을 하는 어민들은 피해상황과 규모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시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 때도 많은 맨손어업 종사자들이 소득증명을 하지 못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이 마을에서 낙지잡이로 수익을 얻고 있는 사람은 10여명 남짓. 갯벌에 스며든 기름의 양만큼 이들의 마음도 병을 얻었다.

맨손어업을 통해 이들이 한 해 동안 벌어 올리는 수익은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로 개인의 노력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고 한다. 특별한 벌이가 없는 작은 어촌마을 주민들로서는 이 정도 수입이 가계 수입의 80~90%를 차지할 정도로 큰 금액이다. 

그러나 이젠 단 한 푼의 수익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 유출사고는 이처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던 지역주민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집안의 흥망은 물론 존폐여부까지 위협을 받게 됐다.

"멀쩡한 하늘에 날벼락 맞아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초동 대처에 미흡했던 해경은 물론 정부가 책임지고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지사' 아녀?"

"멀쩡히 정박해 있던 유조선에 크레인이 왜 충돌 하냐 말이여"

기름냄새기름이 스며든 모래를 살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피해지역주민 ⓒ 정대희



갑작스런 재앙에 손을 쓸 틈도 없이 무기력하게 피해를 본 정씨는 관계기관의 대처에 대해 질타를 하며 "정부기관이 잘못을 한 만큼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피해지역주미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게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스런 일이여. 어떻게 멀쩡히 정박해 있던 유조선에 크레인이 떠내려가 충돌하냐구…. 의심을 안할 수가 없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고경위를 되짚어보며 곰곰이 생각하던 정씨는 이미 지역에서 무성하게 불거진 삼성음모론을 내뱉으며 "비자금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닌지"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땐 그랬지지난 6월 태안군 이원면 앞 바다 갯벌에서 잡은 밀국낙지 모습. ⓒ 태안신문


이미 피해지역에서는 삼성이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켜 비자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여론이 확산되어 있다. 또한, 대기업들이 공식적인 사과도 없다는 점에도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 피해지역주민들의 의견이다.

지역 주민 A씨는 "대한민국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을 황폐화 시킨 부분에 대한 책임을 가해자는 분명하게 책임져야 한다"며 "피해지역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전 국민에게는 삶의 휴식처를 빼앗아간 가해자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원면 일대 갯벌에서 잡은 밀국낙지는 초여름이 시작되면 미식가들로부터 큰 인기몰이를 하는 태안군의 대표적인 수산물로 청정갯벌인 이 일대 갯벌에서 잡히는 낙지는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의 15cm 안팎 크기로 육질도 연하다.

먹는 방법은 산 채로 젓가락에 돌돌 말아 기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이 지역만의 특별한 맛은 따로 있다. 박속과 함께 야채를 넣어 끓인 물에 낙지를 살짝 데쳐서 온갖 양념을 한 소스에 찍어 먹은 후 국물에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 '밀국낙지탕'은 시원하고 담백하여 한 번 맛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재차, 삼차 방문이 이어져 이곳 이원면은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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