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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곳은?

[온고을 사람들 15] 연극 <돼지와 오토바이> 배우 최경성·박찬례씨

등록|2008.01.01 11:19 수정|2008.01.01 13:27

▲ 연극 <돼지와 오토바이>의 한 장면 ⓒ 극단 명태


바야흐로 요즘 온고을은 연극과 진한 사랑에 빠졌다. 지난 11월부터 시작한 전북소극장 연극제가 막바지를 향해 보름여 앞두고 있고, 전통문화센터에서는 주말마다 초등학생과 가족들을 위한 아동극페스티벌이 한창이다.

소극장연극제에는 약 20편의 작품이 참가했다. 그중 2007년 12월 30일 공연을 마친 <돼지와 오토바이>(극단 명태)는 가치있는 삶의 의미를 되묻는 소중한 자리였다. 진정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이하는 지난 12월 29일, 이 작품의 남녀주연을 맡은 배우 최경성씨와 박찬례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소민(이하 안) : "크리스마스 때도 공연 때문에 쉬지 못했다고 들었다.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

박찬례(이하 박) : "지금까지 가장 많이 왔던 것 같다. 거의 모든 객석이 꽉 찰 정도였다."
최경성(이하 최) : "크리스마스같은 날엔 젊은이들이 극장가나 번화가로 많이 몰릴 것 같은데 소극장에도 찾아오는 관객이 꽤 많다. 자부심을 느낀다."

: "이번 작품은 소극장연극제 출품작이기도 했지만 극단 명태로서도 특별한 작품이라도 들었다."
: "올해로 극단 명태가 열살이 되었다. 창단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1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무대에 올렸던 작품중에서 다시 보고싶은 연극 세 작품을 뽑아 다시 재연했다. 그중 이번이 세 번째 시리즈다."


▲ <돼지와 오토바이> 포스터 ⓒ 극단 명태

: "세 작품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떻게 선정했나?"
: "<서툰사람들> <가스펠> <돼지와 오토바이>다. 단원들의 투표로 이뤄졌다."

: "<돼지와 오토바이>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포스터에 써있는 문구가 재밌다. '절대 아동극아님', '절대 돼지이야기' 아님." 
: "그리고 또 하나있다. 황금돼지해를 겨냥한 작품도 아님.(일동 웃음)"

: "제목만 듣고는 사람들이 무척 궁금해할 것 같다. '도대체 돼지와 오토바이가 무슨 관계지?'라고 말이다."
: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돼지와 오토바이는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삶, 낡은 인습에 얽매인 삶을 상징한다. 옛날에 돼지를 접붙이러 갈 때 오토바이에 쇠틀을 올리고 그안에 돼지를 넣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놈의 돼지가 오토바이만 탔다 하면 그짓하러 가는 줄 앍고 신나서 꽥꽥 거렸다고 한다. 결국 반복적인 일상, 틀에 박힌 삶을 의미하는 거다. 혹 누가아는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웃집을 갈지, 친척집엘 갈지, 가축병원에 갈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다. 그런데 돼지는 무조건 신나서 꽥꽥 거린다. 오토바이=그짓이라는 관습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 "작품 중 황재규는 어렸을 적 고아원에서 자랐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기형아를 낳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제 손으로 죽인다. 여기까지 보면 황재규라는 인물은 매우 불행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에서 '오토바이'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돼지'이야기 아닌 <돼지와 오토바이>


▲ <돼지와 오토바이>의 두 주인공. 박찬례(왼쪽)씨와 최경성씨 ⓒ 안소민


: "사랑받지 못한다는 열등의식이다.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나중에는 믿었던 아내마저 배신을 했다. 하늘마저 그를 배신했다. 기형아를 주었으니까. 결국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제자 박경숙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또 어느 때 버림받고 배신당할지 두려워서 다가서지 못하는 거다."

: "박경숙은 황재규에게 과감하게 그 틀에서 벗어나라고 외친다. 재규에게 돼지와 오토바이의 교훈을 이야기를 해준 것도 경숙이다. 자신의 습성대로 살지말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삶이 왜 아름답질 않겠느냐'고. 현실을 인정하고 당당하고 똑바로 제 인생을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극중에서는 경숙이 제자로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거의 (황재규) 인생의 선배다. (일동 웃음)"


<돼지와 오토바이>는 어떤 작품?

"...돼지가 오토바이 타는 얘기? 옛날에 돼지를 접붙이려면 할아버지가 회초리로 씨돼지 엉덩짝을 때리면서 요리조리 몰고 다녔거든? 헌데 요새는 오토바이에 태워 나른데. 오토바이 뒷자석에 쇠틀상자를 만들어 거기에 태우고 다니면서 접붙인다 이거야. 그러니까 이 씨돼지가 오토바이만 탔다하면 벌써 그건줄 알고 꿀꿀 꽥꽥 신난다는거지…."

단순히 고아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사회의 냉대와 차별을 받고 살아야했던 황재규. 그는 결혼을 하여 보기에도 끔찍한 기형아를 낳는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야 할 수모의 인생살이를 미리 그려보면서 그는 아내를 설득하여 이 아이를 살해한 뒤 자수한다.

그가 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와 금지된 관계에 빠지지만 어느날 중첩되는 죄책감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형기를 마친 재규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배신감이 엇갈리는 고통의 세월을 보낸 뒤 마침내 삶을 긍정하여 과거의 질곡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그를 사랑하는 옛 제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 <돼지와 오토바이> 리플릿 발췌

: "그래서 남자한테는 현명한 여자가 필요한 거다. 남자는 평생 어린애라니까."

: "황재규라는 인물을 연기해보니 느낌이 어떤가. 평범한 인물같지는 않은데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 "배우는 언제 어디서든 무슨 역할을 하든 당연히 몰입할 수 있어야한다. 그건 배우의 기본 아닌가."

: "알았다. 그럼 본인이 진짜 황재규였다면 어땠을 것 같나. 기형아를 낳았다면?"
: "(잠시 생각하다) 난 황재규보다 성질이 더 급하니까 아마 더 빨리 결정을 내리지않았을까."

: "어떤 방향으로?"
: "황재규와 같다."

: "의외다."
: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황재규의 심정, 십분 이해한다. 사실 7년 전 난 황재규라는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었다. 그땐 젊었던 때라 세상의 모든 일에 다 자신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좀 철이 없었을 때지. 그런데 이제 극중 황재규 나이 또래가 되니까 좀더 앞날을 더 깊이 내다보는 태도가 생겼다. 어떻게 보면 삶의 지혜나 연륜같은 것이 생긴것일 수도 있고 또 어찌보면 몸을 사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 "어느쪽이 황재규를 연기하는데 더 좋았나?"
: "당연히 지금이다. 지금 나는 황재규 그 자신이다. 하지만 또 7년이 흐른 뒤 황재규를 연기하게 되면 그땐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 "찬례씨는 어땠나. 극중에서 1인 8역을 했다. 굉장하다. 특히 재규의 전 부인과 경숙이 역할을 다 했는데 느낌이 어떤가. 둘중 어느쪽에 더 공감이 갔나."
: "전처와 경숙은 얼핏보면 상반된 인물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연기하면서 두 사람이 상반된 인물이라는 느낌을 한번도 갖지 못했다. 전처와 경숙이 모두 재규의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분기점같은 존재였으니까."

시간이 흐른 뒤 이해할 수 있었다


▲ 연극 <돼지와 오토바이>의 한 장면 ⓒ 극단 명태


: "경숙이 재규에게 가르쳐주려했던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당연하고 아름다운 섭리다."

: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 "아무래도 1인 8역을 하다보니 대사 분량이나 역할 분담같은 측면에서 어려운점이 많았다(이 작품은 본래 여자배우의 1인 8역을 의도하고 쓰여졌다. 따라서 이 작품에 배우는 남녀 배우 단둘만이 출연한다). 그만큼 여배우의 능력을 가늠한다는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는 책임감과 함께 자부심, 부담감도 컸다."

: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작품이 끝난뒤 본래의 '나'로 돌아갈 일이 멀게만 느껴진다. 몇 달간을 '황재규'로 살았는데 다시 최경성으로 돌아갈 일이 힘들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건가보다."

: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올한해 활동도 모두 끝났다. 황재규를 연기하면서 또는 박경숙으로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 "습성대로 살지 말자는 거다. 서양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습관의 쇠사슬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완강하다.' 지난 한해 습관적으로 관습적으로 살아왔다면 새해 2008년도에는 내 의지대로,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겠다."

: "내 삶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주위 환경의 조건에 따라 울고 웃는 돼지가 되지 말고."

: "끝으로 이 작품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 "'구겨질대로 구겨진 삶이 어찌 아름답질 않겠느냐' 경숙이 재규에게 한 말이다."
: "재규가 작품의 제일 처음 내뱉은 대사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3박4일의 여행과도 같다. 첫날밤은 설렘으로 다음날은 그 마지막 밤에 대한 기다림으로 마지막 밤은 아쉬움속에 작별을 고하게 된다. 우리네 인생도 설렘속에 태어나 뭔가가 있겠지, 이루어지겠지 기다리다가 아쉬움속에 죽음을 맞게 된다' 항상 이 대사를 되뇌며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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