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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소쿠리는 비었어도...

빈 소쿠리를 가져가도 웃기만 하시던 우리 엄마

등록|2008.01.03 18:09 수정|2008.01.03 18:09

▲ 고구마 밭이 있던 우리 집 뒷산 ⓒ 문인숙


뒷산 고구마 밭에 고구마가 여물어 다 캐내고나면
큰아부지가 소를 몰고 밭을 갈아엎는 옆을 따라다니며 고구마 이삭을 주웠습니다.

큰집 오빠 동생들, 작은집 오빠 동생들, 그리고 나.
그 때나 지금이나 숫기가 없었던 나는 고구마 이삭이 내 발 바로 앞에 굴러와도
가만히 처다만 봤지 주울 줄을 몰랐습니다.

발 앞에 고구마가 굴러가도 그거 하나 주울 줄 모르는 내 모습이 하도 답답했든지
큰 아부지는 고구마 이삭이 나올 때마다

"너그는 그만 줍고 숙이 줘라!"

이것도 숙이 꺼, 저것도 숙이 꺼….

다부지게 눈을 부라리며 이삭을 줍던 오빠동생들은 큰 아부지가 주라고 하면
두 말 하지 않고 모두 내 소쿠리에 고구마를 담아주었습니다.

이삭줍기가 다 끝나고 나면 왁자지끌 신나게 주웠던 오빠 동생들은 빈 소쿠리.
내 소쿠리는 꽉 차고도 넘첬습니다.

큰아부지가 워어이 하시며 소를 몰고 내려가시면 나는 내 소쿠리에 있는 고구마를
하나 둘 꺼내서 이 오빠 저 오빠 이 동생 저 동생 다 나누어 주고
나는 빈 소쿠리를 들고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환하게 웃은 얼굴로 나를 보듬어 안으시면서

"숙아… 고구마 이삭 줍는 거 재미있제?"

꿈을 꾸는 듯이 물어보셨습니다.

왜 우리 엄마는 고구마 많이 주웠나 하고 묻지 않고 재미있었는지만 물어 보셨을꼬.

"엄마, 고구마 이삭이 하나도 없어…."
"괜찮다! 고구마 그까짓거 하나도 못 주워도 괜찮다."

왜 우리 엄마는 고구마 이삭도 하나 못 줍고 니 앞으로 우째 살라노 야단 치질 않았을꼬.

부딛히고 깨지고 넘어지면서 이 한세상 살아오면서
나는 왜 남들처럼 좀 다부지질 못할꼬
나는 왜 남들처럼 좀 영악하질 못할꼬
한탄이 나올 때마다 빈소쿠리를 들고 가도 웃기만 하시든
우리 엄마가 괜스레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악바리처럼 영악한 여자 숙이보다는 어리버리 멍충이같이 살아가는 숙이가
나는 더 좋습니다. 엄마가 원망스럽다가 또 고맙기도 하고……

온 동네가 일가친척으로 맺어져 있던 우리 동네.
동네에서 단 한 사람. 혼자서 외롭게 서럽게 예수님 섬기시든 우리 엄마.
명절 때나 제사가 있을 때마다 아부지 눈치보시며 혼자 돌아서서 우시던 우리 엄마…
장년들보다도 더 힘이 장사시던 큰 엄마와 작은 엄마에 비해서
힘도 없고 병치례도 잦았던 우리 엄마.

그러나 그 얼굴이 그토록 밝고 훤했던 이유는
그 심중에 예수님만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등바등 무엇이든 움켜잡는 걸 가르쳐 주시진 않았어도,
이 내 가슴에 예수님 의지하며 살게 해 주셨으니,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사는 인생이
값진 것임을 몸소 보여 주셨으니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엄마가 나를 키웠듯이 내 딸 유빈이게도
예수님 사랑만 심어주어야지 다짐하다가
그러다가 또 내 딸만은 나처럼 어리버리 멍충이가 되지 말아야할텐데…
부질없는 걱정도 하다가…

먼 훗날 내 딸 유빈이가 나만큼 나이가 들었을 즈음
우리 엄마가 날 이렇게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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