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심판한다>마이크 해머가 등장하는 첫번째 장편 ⓒ 황금가지
이들이 가는 곳에는 몸싸움이 발생하고 때로는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은 뛰어난 두뇌뿐 아니라 강인한 육체적 능력 그리고 주먹과 총을 휘두를 수 있는 배짱도 함께 겸비해야만 한다.
마이크 해머가 이런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은 그의 경력 때문이다. 해머는 뉴욕에서 경찰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해 몇년 동안 해외에서 전장을 누빈 인물이다.
그리고 귀국해서 탐정면허증과 총기소지 허가증을 발급받고 탐정사무소를 개설한다. 전직경찰이자 군인이었던 사람이 탐정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니만큼 마이크 해머가 탐정에게 필요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탐정 마이크 해머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크 해머는 여자들, 특히 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해머는 결코 잘생긴 얼굴이 아니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잘생기지 못한 것이 정말 유감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해머가 다루는 사건마다, 그 주변에는 여자들이 있다. 그냥 여자들이 아니라 1급 배우 뺨칠만한 외모의 젊은 여자들이 있다.
그 여자들은 모두 해머에게 호감을 느낀다. 해머가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 언제 어디서든 두둑한 배짱,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이 여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미모의 젊은 정신과의사는 해머에 대해서 이런 평을 한다.
'인생을 알고 자기가 정한 규칙대로 사는 남자, 체구도 크고 마음도 넓다, 감정을 억누르는 일 따위도 없다.'
이 평가는 해머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해머는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거의 없다. 용의자를 찾아가서 다그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거나 빙 돌려서 말하는 사람을 보면 바로 주먹이 날아간다. 단지 위협을 위해서 주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먹에는 해머의 분노가 담겨있다.
해머는 젊은 시절에 전장에서 수도 없이 사람을 죽였다. 사람을 죽일 때 감정 따위는 없다. 그런 감정은 처음 사람을 죽일 때만 느낄 뿐이다. 그때의 경험은 전쟁 이후로 이어졌다. 사회로 돌아온 다음부터, 사회를 좀먹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이 되었다. 살인범들을 없애기 위해 자기 스스로 법이 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이렇게 주먹이 앞서는 탐정이기 때문에 해머에게는 골치아픈 일이 항상 따라다닌다. 아무리 탐정면허증을 가지고 있다지만 죄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는 법. 해머에게 폭행당한 사람 중에는 소위 '빽'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해머에게도 '빽'이 있다. 뉴욕 최고 경찰 강력반 반장인 패트릭 체임버스가 바로 그 빽이다. 해머는 패트릭을 줄여서 '팻'이라고 부른다.
팻은 해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다. 경찰과 사립탐정이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경쟁의식 같은 것이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서로의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해머가 어디선가 사고를 치면 팻이 와서 수습해주는 경우가 많다. 팻은 해머에게 씌워진 혐의를 풀어주는가 하면, 해머를 위해 검사 앞에서 거짓증언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팻은 해머의 두둑한 빽인 것이다.
팻이 단순히 우정 때문에 해머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팻과 해머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다. 해머는 경찰의 조직력이 닿지 못하는 곳을 누비면서 증거를 끌어 모은다. 팻은 해머가 갖고 있지 못한 조직력을 이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팻과 해머는 서로 이렇게 수사에 필요한 점들을 주고 받으면서 사건해결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해머 못지 않은 성격의 '파트너' 벨다
▲ <내 총이 빠르다>마이크 해머가 등장하는 두번째 장편 ⓒ 황금가지
벨다의 성격도 만만치 않다. 해머의 첫작품인 <내가 심판한다>에서 벨다는 3년째 해머 사무실에 근무중이었다. 이 3년 동안 해머는 한번도 벨다에게 수작 걸 생각 따위는 해보지 못했다. 해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이힐을 벗어서 남자의 머리통에 박아 넣을 수도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머와 벨다는 서로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다. 벨다가 다른 남자와 저녁 약속을 잡으면 해머는 질투를 느낀다. 해머가 어디선가 여자의 립스틱을 와이셔츠에 묻히고 오면 벨다는 일주일 동안 해머와 말도 하지 않는다. 이 둘은 소장과 부하이면서 서로를 깊이 아끼고 믿는 관계이기도 하다.
사건이 터지면 이렇게 해머와 팻, 벨다는 삼인조가 돼 함께 움직인다. 해머는 현장을 뛰어다니며 총과 주먹을 휘두르고, 팻은 수사진을 이끌면서 때때로 해머가 저지른 사고의 뒷수습을 해준다. 벨다는 해머의 지시대로 온갖 일들을 재량껏 처리한다.
해머는 사건을 의뢰받아서 처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보다는 자신의 주변에서 사건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다. 사고 또는 자살로 결론이 난 시체를 보고 해머는 살인사건이라고 우긴다. 법의관과 검사의 의견에 반박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
세번째 작품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검사에게 정면으로 '검사치고는 참 대책없는 분이군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해머 때문에 팻도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마지막에는 해머의 의견이 옳았던 것으로 판명나지만 그 과정에서 기나긴 싸움을 동반하게 된다.
해머는 경찰의 지원없이 혼자서 뉴욕의 뒷골목에 쳐들어 간다. 때로는 총을 맞고 때로는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 맞기도 한다. 해머는 그래도 굴하거나 겁먹지 않는다. 해머는 강철같은 의지만큼이나 회복이 빠른 육체를 지니고 있다. 언제 부상당했냐는 듯이 다음날이면 다시 일어나서 혼자 뒷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이런 해머에게 일급 깡패들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
하드보일드를 업그레이드시킨 작가 미키 스필레인
해머의 스타일을 보면 그의 사무실이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건이 해결된다고 해서 해머가 한몫 챙기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해머의 치료비가 더 나올 것 같은 상황이다. 벨다는 해머에게 "돈과는 거리가 먼 일만 하고 있는 거 알아요?"라고 말한다. 게다가 해머는 술, 그 중에서도 맥주를 좋아한다.
오전이건 밤이건 가리지 않고 식당에 앉아서 혼자 맥주를 마신다. 독신이기 때문에 혼자 집에서 밤을 보내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맥주를 박스째로 가져다 놓고 퍼마신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맡에 놓인 먹다남은 맥주를 마저 비워버리기도 한다. 여러가지 면에서 마이크 해머는 거칠면서도 자유분방한 그리고 그 점 때문에 매력적인 탐정이다.
마이크 해머를 창조한 작가는 미국의 미키 스필레인이다. 마이크 해머처럼 미키 스필레인도 2차대전에 참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생계를 위해서 쓴 소설 <내가 심판한다>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미키 스필레인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미키 스필레인이 작품에서 묘사하는 것은 미국사회의 어두운 면이다. 작가가 소재로 삼은 것은 마약, 성매매, 부정부패 등이다. 마이크 해머가 뛰어다녔던 뉴욕의 뒷골목도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이 하나 발생하고, 그 단서를 추적하다보면 어느새 사회 상류층의 비리에 다다른다.
밑바닥에서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뜯어내서 호화생활을 하는 계층이 있다. 마이크 해머는 그런 사회구조를 총과 주먹으로 부수려 했던 것이다. 마이크 해머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그것은 육체적인 폭력일수도 있고 사회구조의 폭력일수도 있다.
마치 2차대전의 현장을 도시 한복판으로 옮겨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상처받고 흐느껴 운다. 하드보일드를 만든 탐정이 새뮤얼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우라면, 하드보일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마이크 해머 아니었을까. 마이크 해머의 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다. 거침없이 터뜨리는 그 분노만으로도 마이크 해머는 명탐정의 위치에 오를만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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