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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대학에만 맡겨서 될 일인가

[주장] 대학교육의 자율과 대학입시의 자율은 분리해야

등록|2008.01.05 13:31 수정|2008.01.06 21:22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4일 있었던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총장들과의 모임에서 대학입시를 대학자율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날 발언한 내용을 보면 “어떤 안보다도 정부가 손을 떼버리는 게 가장 좋다”면서 “30년 전에 대입에서 손을 놓고 대학 자율에 맡겼다면 몇 년간 혼란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지금쯤 매우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고 입시 제도도 정착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다. 한마디로 대입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 만사형통으로 잘 될 것이라는 얘기인데 정말 그럴까?

이 당선인은 우리 교육의 특수성과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 교육은 복잡한 구조로 이해가 얽혀있다. 교육과 사회 전반의 관계는 물론 교육계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이 있다. 대학과 초중등, 사교육과 공교육, 교육수요자와 공급자들이 서로 다른 입장이다. 대학 내에서도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 국공립대학과 사립의 처한 현실이 다르다. 이런 복잡한 구조에서 대학에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다.

또한 교육의 문제가 그렇게 쾌도난마식으로 절단해서 될 문제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먼저 한국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아마도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과중한 사교육비일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사교육에 목을 매야 할까? 잘못 생각하면 공교육이 부족하니까 또는 공교육이 잘못되었으니까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사교육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공부해야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벌중시 사회인 이 땅에서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대학에 선발의 자율권을 준다 해서 사교육이 없어지겠는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질것이라는 우려가 더 많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학 입시는 단순한 선발고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중등 12년 공교육의 향방이 결정되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방향에 따라 고등학교의 교육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중학교 초등학교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따라가게 되어 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면 대입에서 논술이 중요해진다고 하니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논술교육에 매달리고 있고 내신이 무의미해지니 학교교육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만약 대학입시가 자율에 맡겨지고 서울의 주요대학에서 본고사를 보겠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과거 본고사를 치르고 대학을 간 세대들은 안다. 그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그 대학의 교수가 쓴 책을 보아야 하고 그 대학 출신들에게 배워야 안심이 된다. 본고사 부활에 대한 우려에 대해 그럴 리야 있겠느냐고 했다지만 막상 자율권이 주어졌을 때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나? 지금 현재도 일부 대학에서는 심층면접을 이용해 사실상의 본고사를 치르고 있다.

또한 대학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 자율권이 주어졌을 때 과연 입시관리가 공정하겠느냐 하는 문제다. 최근 불거진 편입학비리에서 알 수 있듯이 틈만 나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직접 실기고사를 치르는 예체능대학에서도 비리가 해마다 터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자칫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음으로는 교육의 질에 관한 문제이다. 평준화로 교육이 하향평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중등학생들의 학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다고 평가된 적은 없다. 오히려 각종 평가에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대학교육이다. 대학은 어느 평가에서도 국제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졸업하기는 쉽다고 한다. 대학이 학생 선발에만 관심이 있고 가르치는 것에는 소홀이 한다는 말이다. 서울대학이 세계 일류대학이 못되는 이유가 실력 있는 학생을 못 뽑아서인가? 한국의 수재들을 싹쓸이하는 몇몇 대학들이 잘 가르칠 궁리는 하지 않고 선발권 운운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현재의 우리 대학입시제도는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고등학교에서의 학업성취도인 내신과 국가수준의 성취도평가인 수능 그리고 여러 부가점수로 이루어지는 체계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다만 쟁점이 되고 있는 고등학교의 내신은 학교별 수준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평준화정책의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대학이 선발권을 갖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술적인 조정에 의해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학교육의 자율’과 ‘대학입시의 자율’은 분리하여 다루어야 한다. 대학의 학사운영이나 교육의 방향은 스스로 결정해도 좋다.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평가되고 설사 잘못되었더라도 스스로 책임지고 다른 쪽에는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입시는 대학만의 일이 아니라 공교육 전체에 영향을 주는 국가적인 일이다. 이런 중요한 일을 대학이 결정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대학은 학생선발권에 집착하지 말고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며 차기정부는 시작하는 첫 단추부터 어긋나게 꿰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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