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 주변 일대의 유적을 찾아
육지속의 섬이 되고픈 경북 예천군 회룡포 주변
육지속의 섬이 되고픈 회룡포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날아 오르는 것처럼 물을 휘돌아 삼아 돌아간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육지 속의 섬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예전까지 의성포라 하였으며 아직도 의성포라 설명하고 있는 곳도 있다.
2001년 KBS 드라마 원빈, 송혜교, 송승헌 등이 출연한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 경북지역의 물돌 이동으로 안동하회마을 영주 수도리 전통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장소이다. 안동의 하회마을보다 더욱 더 역동적이고 마을과 조화를 이루어 회룡포가 더욱 더 분위기는 멋진 듯하다.
천년고찰이라는 장안사를 지나서 올라간 회룡 전망대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바라보면 마치 두 겹의 띠를 두르고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명 뽕뽕다리를 건너 가거나 아니면 한참을 돌아돌아 차로 들어가면 되며 마을 안에는 향토민박집이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얼굴이 세련된 불상
용궁면 향석리 도로변에는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7호)이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보호각 속에 보존되고 있는데, 원래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1914년 보호각을 세우고 보광전이라 이름지어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말에 죽산 부원군이었던 김원발이 마을에서 분쟁이 자주 일어나자 지리적 영향이라 믿고 부처님의 자비로 막아 보려는 의도에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풍만한 둥근 얼굴에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코는 떨어져 나간 것을 보수하였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돌려졌는데 일부 보수하였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화려한 옷주름은 무릎까지 덮여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에 올려 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양을 하고 있다. 대좌 중앙에 새겨진 연꽃잎이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바로 앞에는 비지정으로 삼층석탑이 있는데 역시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의 나무
용궁면 금남리에는 천연기념물 제400호인 황목근(黃木根)이란 수령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다. ‘황목근’이란 이름은 1939년 마을 공동재산의 토지를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 팽나무가 5월에 황색꽃을 피운다하여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현재 황목근은 아주 넓은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감천면의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과 함께 부자나무이다. 가을철 주변은 황금 들녘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하니 가을에 이곳을 찾기를 추천한다.
알려지지 않은 유적
용궁면 읍부리에는 잘 열려지지 않은 건물로 만파루라는 건물이 있는데 1856년 구읍인 향석이 대홍수로 수침된 그 다음 해 관아와 함께 옮겨져 왔으며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유서 깊은 장소였으나 노후하고 수침한 것을 옮겨온 탓인지 1945년 8월 자연적으로 붕괴되었고 1988년 6월 복원하였다.
옆에는 11개의 조선시대 영세불망비와 부윤 선정비가 있고, 척화비가 있다. 이 중 역사적 가치가 있는 척화비는 아직 비지정으로 되어 있어 예천에 척화비가 있는지 모르는 이들도 많다.
척화비는 1871년 건립된 것으로 내용은 전국적으로 다 같이 비석 표면에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주문(主文)을 큰 글자로 새기고,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자로 새겼다.
흥선 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까닭은
척화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서양세력이 우리나라의 자원을 침탈하려는것을 막으려고 세운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이러한 쇄국 정책으로 서양과의 통상 수교가 늦어져 근대화가 지연되었고, 세계 정세와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눈과 귀를 막게 되어 더욱 더 고립되었다.
전국적으로 17건이 등록됐으며 경북지역에는 경주와 포항에 2기가 있으며 그 외 구미, 군위, 봉화, 청도 등지에도 남아 있다. 구미와 청도는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용궁 일대에는 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아 용궁장에 가서 단골식당의 순대국밥이나 오징어 불고기를 먹는 곳이 좋고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격이 저렴한 원조 용궁 막걸리 양조장이 도로변에 있으니 추천해 본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날아 오르는 것처럼 물을 휘돌아 삼아 돌아간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육지 속의 섬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예전까지 의성포라 하였으며 아직도 의성포라 설명하고 있는 곳도 있다.
▲ 마을 진입화룡포 마을을 차로 가려면 비포장 뚝방 길을 한참 들어가야 한다. ⓒ 김환대
2001년 KBS 드라마 원빈, 송혜교, 송승헌 등이 출연한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 경북지역의 물돌 이동으로 안동하회마을 영주 수도리 전통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장소이다. 안동의 하회마을보다 더욱 더 역동적이고 마을과 조화를 이루어 회룡포가 더욱 더 분위기는 멋진 듯하다.
천년고찰이라는 장안사를 지나서 올라간 회룡 전망대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바라보면 마치 두 겹의 띠를 두르고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명 뽕뽕다리를 건너 가거나 아니면 한참을 돌아돌아 차로 들어가면 되며 마을 안에는 향토민박집이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 마을 전경마을로 들어가면 차 소리는 전혀 없고 너무나도 조용하다. ⓒ 김환대
▲ 회룡포 전망대에서 본 마을전망대에 올라보면 마늘이 한 눈에 들어온다. ⓒ 김환대
얼굴이 세련된 불상
용궁면 향석리 도로변에는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7호)이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보호각 속에 보존되고 있는데, 원래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1914년 보호각을 세우고 보광전이라 이름지어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말에 죽산 부원군이었던 김원발이 마을에서 분쟁이 자주 일어나자 지리적 영향이라 믿고 부처님의 자비로 막아 보려는 의도에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풍만한 둥근 얼굴에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코는 떨어져 나간 것을 보수하였다.
▲ 향석리 석조여래좌상전체적으로 세장된 얼굴로 고려초기 불상으로 추정 ⓒ 김환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돌려졌는데 일부 보수하였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화려한 옷주름은 무릎까지 덮여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에 올려 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양을 하고 있다. 대좌 중앙에 새겨진 연꽃잎이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바로 앞에는 비지정으로 삼층석탑이 있는데 역시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 대좌불상을 받치는 대좌는 연꽃 잎이 눈에 들어온다. ⓒ 김환대
▲ 유적답사 모습둘러보고 있는 답사객과 함께 ⓒ 김환대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의 나무
용궁면 금남리에는 천연기념물 제400호인 황목근(黃木根)이란 수령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다. ‘황목근’이란 이름은 1939년 마을 공동재산의 토지를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 팽나무가 5월에 황색꽃을 피운다하여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현재 황목근은 아주 넓은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감천면의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과 함께 부자나무이다. 가을철 주변은 황금 들녘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하니 가을에 이곳을 찾기를 추천한다.
▲ 가을 황목근가을에 찾으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룬다. ⓒ 김환대
▲ 겨울 황목근겨울철에는 가을과 다른 분위기이다. ⓒ 김환대
알려지지 않은 유적
용궁면 읍부리에는 잘 열려지지 않은 건물로 만파루라는 건물이 있는데 1856년 구읍인 향석이 대홍수로 수침된 그 다음 해 관아와 함께 옮겨져 왔으며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유서 깊은 장소였으나 노후하고 수침한 것을 옮겨온 탓인지 1945년 8월 자연적으로 붕괴되었고 1988년 6월 복원하였다.
옆에는 11개의 조선시대 영세불망비와 부윤 선정비가 있고, 척화비가 있다. 이 중 역사적 가치가 있는 척화비는 아직 비지정으로 되어 있어 예천에 척화비가 있는지 모르는 이들도 많다.
▲ 전경만파루 옆에 있다. ⓒ 김환대
척화비는 1871년 건립된 것으로 내용은 전국적으로 다 같이 비석 표면에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주문(主文)을 큰 글자로 새기고,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자로 새겼다.
흥선 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운 까닭은
척화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서양세력이 우리나라의 자원을 침탈하려는것을 막으려고 세운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이러한 쇄국 정책으로 서양과의 통상 수교가 늦어져 근대화가 지연되었고, 세계 정세와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눈과 귀를 막게 되어 더욱 더 고립되었다.
전국적으로 17건이 등록됐으며 경북지역에는 경주와 포항에 2기가 있으며 그 외 구미, 군위, 봉화, 청도 등지에도 남아 있다. 구미와 청도는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용궁 일대에는 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아 용궁장에 가서 단골식당의 순대국밥이나 오징어 불고기를 먹는 곳이 좋고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격이 저렴한 원조 용궁 막걸리 양조장이 도로변에 있으니 추천해 본다.
▲ 순대국밥용궁 장에서 유명한 식당으로 바로 찾을 수 있다. ⓒ 김환대
덧붙이는 글
회룡포 마을은 민박집 가능하나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용궁에는 향교를 비롯해 유적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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