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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꿩 대신 닭' 격의 대표자는 이제 그만

등록|2008.01.06 11:01 수정|2008.01.06 11:01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지난 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국민은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중시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슬로건으로 클린턴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어 인기를 누린 아버지 부시대통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간단명료한 슬로건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 즉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간단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 주목할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불과 얼마 전 치러진 1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치열한 공방전의 양상은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고 결국 선거는 정책대결 구도가 아닌 이미지 선거로 치닫고 말았다. 대선의 결과는 무척 이례적이었다. 특히, 두 가지 사안은 특기할 만하다. 첫 째는 언제나 박빙으로 진행되던 전례와 달리 당선자와 2위 후보 간의 격차가 20%를 상회할 정도로 상당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저조한 투표율이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인 63%를 기록했다.  

대선 이후,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번 대선의 결과는 이른바 '큰 정부'를 지향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국가경제 악화가 주요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소위 '좌파 정부'라고 불리던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CEO출신인 이명박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상승효과를 만들었고 이는 무능한 좌파인 여당후보에 압승할 수 있었다는 것이 보수언론의 주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눈 여겨 봐야할 것은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 뿐 만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 투표율이 역대 최저였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다. 전체 투표율이 저조했다는 것은 다수의 민의를 속 시원하게 대변하는 후보가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명박 당선자는 '도대체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우려 탓인지 다행히도 최근 고려대 최장집 교수팀이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석해 발표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새삼스럽게도 다름 아닌 '민주주의'이다. 지난 7,80년대 민주화를 거쳐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다는 판단은 오판이었다는 주장이다. 참여정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책 결정에 있어 결코 민주적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이전을 감행했고, '국익 때문에…'라는 구차한 이유를 대면서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이라크 파병을 진행시켰다. 무엇보다 한-미 FTA는 권위주의식 정책집행의 결정판이었다. 모든 것을 정부가 결정한 후 정부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국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민주화는 이뤄냈을지 모르나 정책 집행 과정에 있어 민주주의는 전혀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여정부의 이런 비민주적인 정책집행은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키우게 만들었다. 특히, '참여정부'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나온 정부였기에 그 배신감의 골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선 후보 가운데 이런 민심을 읽고 나온 후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선 과정 내내 '경제'를 화두로 제시했고,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한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후보가 없으니 투표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미운 놈 가운데 그나마 덜 미운 놈'을 찍어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명박 당선자의 인수위원회는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다시금 복습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약의 시행여부를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채 서두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마치 행정수도 이전 당시 충남 연기군 일대의 땅 값이 치솟았던 것처럼 대운하가 건설될 길목의 땅 값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민심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말이다.

앞으로 넉 달 뒤, 18대 총선이 있다. 국민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대표자를 원한다. '꿩 대신 닭' 격으로 선출하는 대표자는 이제 충분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덧붙이는 글 최장집 교수의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읽고 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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