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돌멩이에게 미안해 본 적 있으세요?"

태안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등록|2008.01.07 10:28 수정|2008.01.07 12:05
침 맞고 피 빼고 태안을 가다

5일은 <오마이뉴스>에서 기획한 태안 자원봉사를 가기로 한 날입니다. 그런데 해넘이를 옹골차게 하느라 작년 12월 26일에 넘어진 다리의 멍이 발로 내려왔는지 4일에는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습니다. 오죽했으면 택시를 타고 무조건 간 곳이 눈에 띄는 한의원이었답니다. 다행히 그 한의원은 오후 7시까지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이실직고를 한 뒤 “5일에 꼭 태안을 가야만 한다”고 말했더니 의사가 기가 막힌 듯 나를 쳐다보다가 “그럼 우선 침을 놓은 후 피를 좀 빼 줄 테니 붕대를 감고 가라”고 했지요. 물리치료를 겸한 침을 맞은 뒤 난생 처음, 부황으로 피도 다 빼 봤습니다. 침을 맞고 죽은 피를 빼낸 탓인지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그런 대로 걸을 수는 있더군요.

부황으로 피를 뺀 발침을 맞고 부황으로 피를 뺀 뒤 통증완화를 위해 파스까지 붙였다. ⓒ 이명옥



다음날 새벽 4시 25분에 일어나 준비를 한 후, 5시 30분 첫 전철을 타고 대형 관광버스가 대기한다는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갔지요.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오마이뉴스>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3대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가기로 한 속초 광산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교사 이상희씨는 4일 오후에 올라왔는데, 5일 아침 5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더군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데 본인은 오히려 이런 좋은 일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130여명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라 시간이 좀 지체되어 30분 정도 늦게 출발을 했습니다. 모두들 새벽에 분주히 나오느라 피곤했는지 가는 길 내내 곤한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 힘내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 이명옥


태안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넘어서였습니다. 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조별 인원 점검 후, <오마이뉴스>에서 투입한 조별 반장과 현지에서 투입된 작업반장을 따라 조별로 방제복·장화·마스크에 면장갑·고무장갑을 받아 복장 준비를 끝마치고 주의 사항을 들었습니다.

휘발성 물질은 이미 다 날아가 작업 환경이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혹시 머리가 아프거나 구토가 나면 일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할 것, 그래도 두통이 지속되면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올 것, 작업반장의 지시를 잘 따라 안전사고에 유의해 줄 것 등의 주의사항을 듣고 난 뒤 일차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돌멩이들에게 미안해 본 적 있으세요?"

모래사장을 벗어나자마자 온통 시꺼멓게 죽은 타르를 뒤집어쓴 돌멩이들을 본 순간 제가 바로 그런 재난을 불러온 인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요. 저 돌멩이가 숨을 쉰다면 바다에 시꺼먼 기름을 뒤집어쓴 채, 둥둥 떠올랐을 것이라 상상하니 가슴이 마냥 답답해져 왔습니다.

“돌멩아, 네가  만일 무생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생명이었다면 이미 생명이 끊어져 바다 위에 둥둥 떠올랐겠지. 인간의 이기심이 너희를 이렇게 흉한 몰골로 만들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 1차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오는 <오마이뉴스> 자원봉사팀 ⓒ 이명옥


저는 속으로 수없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사죄하는 심정으로 바위와 돌멩이들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작업을 하러 간 모든 이들이 돌멩이와 암석을 닦으며 같은 생각으로 마음 속으로 사과의 말을 되풀이 했을 것 같습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을 나이의 젊은이들조차 한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돌멩이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요.

점심시간봉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 이명옥


순식간에 서너 시간의 일차 작업 시간이 끝나고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 열심히 작업을 한데다 실제로 현장을 본 충격이 너무 큰 탓에 허기가 몰려들었습니다. 기름때가 잔뜩 묻은 고무장갑만 벗은 뒤 땅바닥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지요.

헌옷을 정리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전국에서 보내 온 저 헌옷과 수건같은 면제품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 이명옥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사람들은 별말이 없더군요. 점심을 먹은 뒤 커피 봉사를 하는 곳에서 커피를 한 잔씩 받아 마시며 비로소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눈길을 돌려 볼 여유를 가졌지요. 재활용품이 놓여 있는 한쪽 마당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잰 손놀림으로 보내주신 면 옷이며 수건들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앞으로도 무한정 필요한 물품들이 저런 면제품인 셈이지요.

여수 앞바다에 기름 유출사고가 났을 때 기름을 제거하는 데 약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생태계가 원래대로 회복되기까지는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인 10여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하네요. 생각보다 피해지역이 훨씬 넓은 것으로 드러난 태안 앞바다의 기름때를 모두 제거하려면 앞으로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새로운 지역이 나타나고 있고 겉만 치운 곳도 속에는 여전히 기름이 고여 있으니 말입니다.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을 먹은 후 2차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 기름 덩어리를 제거하는 곳에는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나머지 사람들은 면수건과 면옷을 가지고 바위와 돌 닦아내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기름때를 닦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진척되지 않아 바위 하나 닦아 내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닦아도 닦아도 본래의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돌들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 2차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자원봉사자들 ⓒ 이명옥


바닷가는 해가 빨리진다고해서 4시 30분 정도에 작업을 마쳤습니다. 몇 개 닦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들입니다.

5시 40분쯤  참가팀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학교 3학년생인 최연소 참가자는 그냥 들었다고 했고 16명이 참가해 최다 참가팀이 된 강남의 한 축구동호회는 30명이 오려고 했는데 다 못 왔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 트리파란 불빛이 아름답다. 하지만 저 전기를 위해 우리는 또 석유를 사용해야만 한다. ⓒ 이명옥


광화문에 도착하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파란 등이 아름다운 트리,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벤치, 따뜻한 볏짚 모자를 둘러쓰고 겨울을 나고 있는 꽃들…. 찬란한 불빛은 아름다웠지만 저 전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할 석유를 떠올리니 아찔해지더군요. 석유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대한민국의 서울이 조금은 더 어두워도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해 보았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일 사람의 ‘손’ 에 달렸다

우리가 간 곳은 바로 ‘백리포’ 해변인데 언론 보도와는 다르게 이직도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습니다. 그간 자원 봉사자들이 약 50만 명 정도가 다녀갔다는데 그 숫자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방제복을 입는 자원봉사자들다른 팀 자원봉사자들이 방제복으로 갈아입고 있다. ⓒ 이명옥


언론이나 소문을 통해 얼마나 그릇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는지를 장에 가 보고서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해변에 가까운 곳은 이미 기름때가 깨끗하게 제거되어 할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바로 눈앞에 보이는 바다와 모래사장은 깨끗하게 기름이 제거되어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모래사장을 조금 벗어나 바위와 자갈들이 있는 곳에 이르면 상황은 아주 달라집니다. 아직도 수많은 바위와 암석, 자갈들은 시커멓고 끈적거리는 기름을 뒤집어쓴 채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 빠르게 바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일일이 면으로 된 헝겊을 가지고 기름때를 닦아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자들이 보도해 준다고 카메라를 들고 와서는 깨끗한 바닷가를 보고 다 정리되었다고 보도를 한다든가 환경단체들이 왔다 가서 구토와 두통 때문에 초등학생은 접근조차 못 한다는 식의 엉뚱한 보도를 만들어 내는 일에 현지인들은 섭섭함을 표시했습니다. 바른 보도가 아니면 차라리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이상희(왼쪽)와 이명옥자원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속초에서 올라 온 교사 이상희씨와 함께 사진 촬영. ⓒ 이명옥


멀리 속초에서 참가한 이상희 선생은 얼마나 열심히 바위를 닦았는지 손톱 밑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오마이뉴스>가 이렇게 좋은 일에 함께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 잊지 않았습니다. <오마이뉴스>가 기획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가능하면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는 저도 이번 기획은 참으로 유익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짧은 시간 동안 봐도 아직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고요. 겨울 방학을 이용해 시간을 만드셔서 온 가족이 돌멩이 하나라도 닦고 돌아오는 것은 어떠실지요?

보잘 것 없지만 내 돈과 나의 시간을 들이고도 정말 고마웠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돌 하나라도 더  닦아놓고 와야겠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인데다  바위와 돌멩이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최상의 방법은 사람이 직접 닦아내는 것이라 '사람의 손'에 복구 날짜의 길고 짧음이 달렸다고 하니 우리 손의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는 것은 어떨는지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