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굴 사랑하고 있는지요?
네 명 노인들의 사랑 다룬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 그대를 사랑합니다 1,2,3책 표지 ⓒ 문학세계사
2007년 11월 26일 <그대를 사랑합니다> 만화책 3권이 세상에 나왔어요. 그것도 순정만화 시즌3이라는 이름으로. 저는 바로 그 순간 인터넷으로 두 세트나 신청을 했어요. 한 세트는 우리 집 소장용이고, 한 세트는 지인에게 선물했어요. 만화책을 읽지 않으실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은 책임을 알아보실 것 같아서요.
지금 당신은 사랑하는 그대가 있나요? 아니면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 책을 같이 한 번 읽어봐요. 그림체가 곱지는 않아요. 좀 웃긴 것은 1권보다 2권이, 2권보다 3권의 그림이 점 점 더 잘 그렸다는 것이에요.
주인공은 네 사람이에요. 김만석, 송이뿐, 장군봉, 조순이. 모두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죠. 네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아요. 그리고 그 동네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죠. 강풀은 아주 작은 것들도 나중에 나올 이야기들의 단서로 만들어요. 언제나 미리 줄거리를 완벽하게 완성한 다음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니, 복선이 아주 완벽하죠. 그래서 우리들은 강풀의 의도를 알아채고 내용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림 구석구석 아주 꼼꼼하게 읽어야 해요.
김만석 할아버지는 말랐고 성격이 아주 괴팍하게 생겼어요. 아내에게도 아주 독하고 모질게 대했어요. 어느 날 아내가 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났지요. 그때서야 아내에게 얼마나 무뚝뚝하게 대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일 때 아내는 만석할아버지에게 우유가 먹고 싶다고 말해요. 우유를 사다주자 아내는 생전처음 우유까지 사다 주고 옆에서 간호해 준다고 좋다고 하고 만석 할아버지는 낫기만 하면 매일 사다준다고 했지요.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킬 시간도 없이 할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요. 그래서일까요? 만석할아버지는 가는 귀가 먹어 사람 말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 골골거리는 오토바이로 높은 고갯길을 올라 다니며 우유배달을 해요. 그 새벽 길에 리어카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는 송이뿐 할머니를 만나죠.
이 작품의 제목은 김만석 할아버지가 송이뿐 할머니에게 보내는 사랑고백이에요. '당신‘이라는 말은 먼저 간 아내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라 뒤늦게 찾아 온 사랑에게는 ’그대‘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죠. 입에다 욕을 달고 사는 욕쟁이 할아버지지만 낭만적이고 실천이 확실한 멋진 분이지요.
송이뿐 할머니는 단칸방에 홀로 사는 이름도 없는 분이죠. 이름이 없다는 것은 바로 주민등록번호도 없다는 것이지요. 세상에 나와 살아가곤 있지만, 주민등록상에 존재하질 않으니 이름이 없어 존재하지 않는 분이라고도 할 수 있죠.
고향이 강원도에요. 아버지가 이름도 지어주질 않아서 ‘송씨’라고만 불리웠지요. 어느 날 옆동네 총각이랑 눈이 맞아서 야반도주를 하려고 하던 날, 이름도 없다고 투덜거리는 딸에게 어머니는 ‘이뿐아’ 하고 불러주셨지요.
그런데 그 총각은 서울에 와서 사람이 변해 이뿐이 할머니를 폭행하고 돌보지를 않더니 어린 딸과 할머니를 두고 떠나버렸어요. 아이 이름도 지어 주지 않고. 아이는 이름도 없이 살다가 병에 걸려 죽었어요. 잠시 동안 실성하기도 했던 이뿐이 할머니는 주민등록이 없으니 어떤 혜택도 국가로부터 받지 못하고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지만 남의 도움 없이 홀로 당당하게 살아가시지요. 문맹인 상태로.
장군봉 할아버지는 택시운전을 하다가 심한 약시로 운전이 힘들어지자 주차장경비원으로 일해요. 조순이 할머니와 부분데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사는 분이죠. 결혼해서 부부로 살다가 삼 남매를 두죠. 결혼하면서 자식들은 모두 떠나고 나중에는 다시 부부로 남았는데 그만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낮에는 문을 잠가 놓고 다니지요. 만석 할아버지가 군봉 할아버지와 이뿐 할머니가 친하게 사귀는 줄 오해하고서 한 마디 하죠.
“이봐. 이봐. 이럼 안 되는 거 아냐? 집에 집사람도 있으면서.”
“난 내 아내를 사랑해. 그런 말 말게나.”
아내를 사랑하는 군봉이 할아버지의 삶은 평범한 시민의 미래를 미리 예측하게도 해요. 자식들이 모두 떠난 후의 삶.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둘이 남았는데 병에 걸린 아내. 그 상황에서도 외손자의 등록금을 걱정하는 막내딸에게 마지막 남은 생활비까지 찾아 건네는 부성애. 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는 아내와 결국 같은 날 함께 이승을 떠나는 방법으로 삶을 마감해요.
여든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호상이라는 말을 하자 만석 할아버지는 못 견뎌 해요. 그리고 나직하게 읊조리죠.
‘우리는 당장 죽어도 어색할 것이 없는 나이였다.’
만석 할아버지는 송이뿐 할머니에게 이름을 만들어주고 주민등록증도 만들어주죠. 또 장군봉 할아버지가 마음 놓고 뒷일을 부탁하며 비밀스런 유서를 건네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송이뿐 할머니를 수라리재에 있는 고향 집으로 데려다 주어, 그때까지도 딸을 기다리던 어머니와 송이뿐 할머니를 만나게 해 주기도 하죠. 정작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땐 송이뿐 할머니가 슬퍼하지 않도록 사망신고까지 늦춰달라고 부탁합니다.
참 깊고도 따뜻한 사랑이죠? ‘호상’이라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제가 ‘당신’이라고 부르는 남편에 대한 사랑도 다시 확인하고요. 불혹이 넘으면 부부 사이에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생기거든요.
그 사건들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은 갈라서기도 하죠. 이 책을 사십대 이상의 부부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어요. 만화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그림 속에 들어있는 행간의 의미를 읽는다면, 어쩌면 여린 금 정도는 봉합이 될지도 모르지요.
이 책을 우리 집 두 아이와 이웃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오늘 진행한 ‘책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올려요. 정리 시간은 10분으로 했어요. 2학년 밤톨이는 자기 전에 읽었는데 흐느끼면서 울고 자느라고 눈이 퉁퉁 붓기도 했어요. 정리는 글로 짧게 썼고 느낌은 말로 했어요.
똘망이(초등4학년)―정리: 이 책은 독거노인의 불편함을 잘 표현한 책이다. 장군봉 할아버지와 조순이 할머니는 동반자살을 한다. 하지만 김만석 할아버지가 자살을 방해하려했지만 장군봉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떼어 놓지 말게.” 군봉 할아버지 자식은 끝까지 돈을 얻어갔다.
(느낌: 재미있고 슬프다. 송이뿐 할머니가 글을 배울 때 김만석 할아버지가 하는 욕이 재미있었다. 장군봉 할아버지가 가스불로 자살할 때 제일 슬프고, 김만석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송이뿐 할머니가 혼자 살아남아 아직 살아계신 줄 알고 ‘잘 살고 있지요?’라고 인사할 때 슬펐다. 이 슬픔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지만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 그런 슬픔이다.)
지혜동자(초등4학년)―정리: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너무 슬픈 만화책이다. 등장인물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데리고 살다가 일부러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고 자다가 돌아가셨다. 그게 제일 슬펐다.
(느낌: 가슴이 먹먹하지만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 그런 슬픔이다.)
밤톨이(초등2학년)―정리: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인공은 송이뿐 할머니와 김만석 할아버지다. 김만석 할아버지의 아내는 돌아가셨고, 송이뿐 할머니는 할머니 곁을 떠났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주차 관리인이시고, 조순이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서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신다. 장군봉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돌아가시고 송이뿐 할머니는 고향으로 가고, 김만석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돌아가시고, 이뿐이 할머니는 오래 2007년 가을까지 사셨다.
(느낌: 김만석 할아버지가 차를 운전할 때 눈이 불타는 얼굴로 그려진 것이 웃겼고, 김만석 할아버지의 아내가 돌아가실 때랑, 장군봉 할아버지랑 조순희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너무 슬펐다.)
홍여사(지혜동자엄마)―느낌: 사는 과정이 슬펐다. 장군봉 할아버지가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 자식들을 모두 불러 얼굴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모의 입장들이 너무 슬프다. 송이뿐 할머니는 없는 것 투성이지만 김만석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행복한 할머니다. 김할아버지의 사랑은 저녁노을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슬픔이다.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도 입에서는 ‘어! 시원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상반된 표현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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