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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껍데기의 추억

그 친구들과 함께 먹던 '민중 음식'을 생각하며

등록|2008.01.10 08:41 수정|2008.01.10 08:41
  세상이 참 많이 편해졌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돼지껍데기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 팔다니 말이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창에 돼지껍데기라는 글자를 쳤더니 돼지껍데기 관련 사이트와 각종 요리법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지라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실 돼지껍데기라는 용어는 엽기성(?)과 기이함, 통속성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 지글지글 돼지껍데기 볶음 ⓒ 김대갑


그 때가 아마 2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부산 사상공단의 허름한 뒷골목에서 소주와 돼지껍데기를 먹었던 때가. 그때 난생 처음 먹어본 돼지껍데기는 질길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린 요상한 음식이었다. 입안에 들어간 돼지 껍데기가 어찌 그리도 부드러운지. 참 어이없으면서도 황당한 경험이었다.
 

▲ 껍데기와 함깨 한 푸성귀 ⓒ 김대갑


돼지껍데기는 철저히 민중적인 음식이다. 싼 값에 민중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니 말이다. 이런 기능을 하는 음식이 몇 개 더 있다. 닭발과 순대, 족발, 편육 기타 등등. 모두 하나같이 고기를 먹기엔 돈이 부족한 민중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음식들이다. 그래서 이들 음식들에겐 어딘가 정이 간다. 깊숙하면서도 늘쩡늘쩡한 정이 느껴진다.
 

▲ 선술집 내부 ⓒ 김대갑


오랜만에 자갈치 시장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늘 보아오던 자갈치 시장은 항상 활력과 희망이 넘실대는 곳이다. 그 자갈치 시장의 중심 거리를 지나 충무동 쪽으로 깊숙이 걸어가면 노천 횟집들이 즐비하고 그 맞은편에는 허름한 선술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 선술집에서는 돼지껍데기와 꼼장어, 파전 등을 팔았다. 돼지껍데기 볶음은 붉고 노란 색깔을 자랑하며 지나가는 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참 색깔 하나도 어찌 저리 민중적인지. 붉은 고춧가루로 범벅이 된 자태하며, 각종 야채와 감자가 알맞춤하게 혼합된 모습에서 고향의 정을 절로 느낀다.

  돼지의 일부분 중에서 분명 돼지껍데기는 버리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돼지 내장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데 이 내장과 돼지껍데기는 민중들에게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하던 소중한 음식이 되었다. 요즘에는 돼지껍데기가 웰빙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피부미용에 좋다는 콜라겐이 돼지껍데기에 많이 있다나 어쨌다나.
  

▲ 먹음직한 껍데기 ⓒ 김대갑


소주 한 잔에 돼지껍데기 하나를 톡 털어 넣는다. 알싸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혀끝에 고자누룩하게 감돈다. 옆자리에 위치한 취객들의 젓가락이 부지런히 입과 접시를 오간다. 그에 덩달아 나도 소주와 돼지껍데기를 번갈아 먹다 보니 어느새 소주 한 병이 동난다.

그리고 소주병의 푸른 색감 사이로 자갈치 시장을 오가는 민초들의 얼굴이 점점이 묻어난다. 오랜만에 먹어본 돼지껍데기. 이 음식을 함께 먹으며 울분과 격정을 토론했던 추억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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