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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어떻게 다를까

<이광재 독서록> 출판기념회 탐방기

등록|2008.01.11 10:37 수정|2008.01.11 10:37

출판기념회책을 구입하는 사람들과 참석자들이 많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 강기희

총선을 앞둔 요즘 서점가에 정치인들이 펴낸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비슷한 책들이라 책을 진열하는 직원의 손길 또한 분주한 시절이다. 총선 90일 전인 지난 9일까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줄을 이었다. 총선 90일 전엔 출판기념회를 할 수 없게 선거법으로 묶어 놓은 결과다.

정치인이 전하는 '독서록'이 호기심 자극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열풍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출판기념회를 하는 이들의 목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출판기념회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책이 그렇게 쏟아지지만 기실 책의 내용은 허접한 경우가 많다. 원고를 급조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원고를 만들지 않았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게 정치인들의 책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 건네준다 해도 책을 읽기보다는 구석에 처박는 일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난해 3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출판기념회를 했을 때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이 2만 5천여명이나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변 교통을 마비시킬 정도로 성황을 이룬 이명박 당선인의 출판기념회는 한국출판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출판기념회 관련 소식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할 정도였으니 역사적인 사건임은 틀림없었다.

며칠 전에는 이재오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문경새재에서 열렸는데, 1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산중까지 그 많은 사람을 오게한 것은 이재오 의원이 펴낸 책의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문경새재까지 간 데엔 책을 매개로 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 9일(수) 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갔다. 출판기념회 장소는 강원도 영월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이었다. 서로 얼굴을 아는 정도의 사이이긴 하지만 그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 먼 거리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걸음을 더더욱 아니었다. 적어도 그와 나 사이엔 그러한 일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나 시인의 출판기념회가 아닌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로서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출간한 책이 신변잡기를 늘어놓은 자전 에세이가 아니라 정치인이 전하는 '독서록'이라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탓도 있다.

▲ 독서광인 이광재 의원이 자신의 책에 담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인 관계로 정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 강기희

출판기념회를 연 이는 국회의원 이광재. 그는 태백과 영월, 정선, 평창군을 지역구로 당선된 초선 국회의원이다. 그가 지역구로 삼은 4개 지역은 서울 면적의 7.5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20만명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도시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보다 몇 배나 발품을 팔아야 지지도를 유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국회로 입성한 국회의원 이광재.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던 그가 금배지를 달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며칠 전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총선에 나선 안희정씨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져있다.

권력이 있는 곳엔 사람이 모이게 마련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후광은 그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다음 달 대통령의 임기도 끝나는데다 지난 대선까지 패배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야당 국회의원이 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다가오는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 행사였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행사장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들리는 소리로는 1천명 이상이 행사장을 다녀갔다고 한다. 아직도 그의 힘과 능력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로 보아야 할까. 행사를 지켜보면서 '아직은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 그럼에도, 출판기념회는 어쩐지 활기차 보이지는 않았다. 중앙정치의 힘이 예전만큼 실리지 않은 탓일 것이다.

축하 화환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동지인 이광재 의원에게 화환을 보냈다. ⓒ 강기희

무대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화환 하나가 놓여 있을 뿐, 안희정씨의 출판기념회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나 유력 정치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광재 의원조차도 정치적 거취를 정해야 하는 마당이라 정치인들끼리의 품앗이도 쉽지 않은 듯했다. 각개 전투로 살아남아야 하는 야당의 처지가 화려했어야 할 이광재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소박하게 만들었다.

"내 나이 칠순이 넘었습니다. 앞으로 10년만 더 살고 싶습니다. 그 정도 세월이면 이광재 의원을 큰 인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광재 의원을 사랑해 주십시오. 절대로 손해나지 않을 사람입니다."

이광재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은 이기명씨의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그는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이 되자 이광재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그는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까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볼 줄 안다' 라며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광재 의원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절름발이 지식인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을 모르는 자는 공부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자기 전공분야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지식과 수준이 떨어지는 절름발이 지식인이 너무 많다. 각 영역을 넘어서는 지식 통섭 시대에 맞는 교육체계와 지성이 넘치는 사회를 희망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공부를 안 하고 글을 쓰는 것일까. 신문 칼럼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 이광재 의원의 <독서록> 중에서

이광재 의원은 책에서 공부하지 않고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해 일갈했다. 그는 심지어 공부하지 않고 쓰는 신문 칼럼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고도 했다. 이 땅의 절름발이 지식인들이 펼치는 논조가 정치인 이광재를 한숨짓게 했다.

'사인 해 주세요'이광재 의원이 여성팬에게 사인을 하고 있다. 옆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이 의원 아들. ⓒ 강기희

그렇다면 국회의원 이광재의 독서 수준은 어떨까. 그는 국회의원 중에서 독서광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자기소개서 취미란에 '독서' 라고 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국회의원이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퍽 흥미롭다. 이번에 그가 펴낸 책의 제목은 <이광재 독서록>(연장통 펴냄)이다. 책을 즐겨 읽던 그가 혼자만 읽기에 아까운 책들을 소개했다.

이 의원, 경제력 키워 일본 꼭 이기고 싶어

이 의원의 책은 그가 책을 읽은 소감이나 나름의 서평을 적은 것이 아니다. 그가 읽은 책 중에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만들었다. 책 장 사이사이에 이 의원의 생각이 담긴 글이 있지만, 이 책도 여느 정치인들이 펴낸 책과 같이 완성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독서록>이 다른 정치인들의 책에 비해 우월한 것은 책이 갖춘 내용이다. 책에는 정치인 이광재가 읽어낸 '책과의 관계'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책에 관한 이광재의 관심은 인문학에서부터 경제학, 사회학, 미학, 정치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의 지독한 독서습관이 오늘 날의 그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36년간을 일본의 식민국으로 살았습니다. 전쟁을 통해 일본을 이길 수는 없지만 경제력을 키워 일본을 꼭 이기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며 그렇게 말했다. 식민국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역사의 원한을 갚긴 해야 겠는데,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을 이겨보려는 그의 신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가 오랜 기간 독서를 통해 축적한 지식이 있다면, 그 지식의 결정체는 '경제'였다.

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엔 '영원한 강대국도, 영원한 강자도 없다' 라며 부국만이 살길이라고 했다. 한때 소설가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의 독서 목록엔 <세종의 수성 리더십>과 <규제의 역설> <위대한 패배자> 같은 책도 있다. 장정일이 그러했듯 이번엔 정치인 이광재의 독서록이 회자되는 것은 아닐까.
오대산 상원사를 즐겨 찾는다는 그는 절집에 갈 때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책 보따리라고 한다.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정치인 이광재.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모습만큼은 책 읽기를 멀리하는 요즘 사람들에겐 귀감이 될 법하다.

책 내용보다 책을 펴낸 사람을 중시하는 게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 이광재 의원이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 강기희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노란 표지로 만들어진 책 한 권씩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보인다. 양복을 차려입은 이도 있다. 집으로 간 그들이 과연 이광재 의원의 책을 읽어볼까.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왜 그것이 자꾸만 궁금해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출판기념회를 세 차례 열었다. 판을 펼쳐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축하객은 많아야 100여명. 책값을 받는다 해도 뒤풀이를 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반면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선거법 때문에 식사는커녕 음료도 제공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가난한 작가들의 출판기념회에 비해 남는 장사임에는 틀림없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라고 문학인들의 출판기념회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행사장을 찾는 이들 중에는 가슴에 번쩍이는 배지를 단 지방의원이 많이 보인다는 점과 책의 내용보다 책을 펴낸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판을 펼칠 수 없는 게 문학계의 관행임을 생각하면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기존 작가들을 기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런 이유일까. 30년 넘게 소설을 썼지만 여직 출판기념회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어느 중견소설가의 말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국악인 김영임씨의 축가이광재 의원과 한 동네에 산다는 그는 남편 이상해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의원이 뭐가 좋냐고 물으니 '순박해서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광재 의원도 강원도 사람은 틀림없으니 순박할 수 밖에.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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