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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들이닥친 지천명과의 화해

[서평] 이재무 시집 <저녁6시>(창비)

등록|2008.01.11 14:31 수정|2008.01.11 14:31

▲ 이재무 시집 <저녁 6시> 표지. 이재무의 여덟 번째 시집은 창비 시리즈282번이다. ⓒ 창비


58년 개띠의 시인 이재무가 <저녁6시>라는 새 시집을 창작과 비평사에서 냈다. 몇 번 문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어설프게 수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던 이재무 시인에 관해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저리 바쁘게 이곳저곳에 출현하는 이 시인이 그 많은 시집과 산문집 등의 저작과 강의, 그리고 술자리까지 어찌 소화를 해내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1983년 등단한 이래 여덟 권째의 시집을 냈으니 작품이 준비되어도 출판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참으로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작품의 일정한 수준과 시작업의 성실성을 인정받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람처럼 떠다니는 듯한 이재무 시인과 내가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고 지낸 지는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를 잘 안다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워듣거나 그들이 이 시인에 대하여 나누는 대화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잘 모를 뿐 아니라 그의 시 세계에 대해서도 객관적 상황을 인식할 뿐 깊은 이해와 몰입이 없었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문학평론가 이형권은 이재무 시인의 시에 대해 "그동안 이재무시에 나타났던 ‘나’는 80년대의 폭력적인 정치현실과 불운한 가정현실, 그리고 90년대 이후의 반생태적 현실과 각박한 도시적 일상에 온몸으로 응전하려는 도발적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또렸했다"고 해설에서 말하고 있다.

한 시인의 시풍과 주제의식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어쩌면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재무 시인이 등단한 후 시작에 열중해온 24년 동안 현실적 외부 상황과 자신의 처지에는 그야말로 많은 변화와 이해가 교차했을 것이다. 적어도 수차례의 격변적인 정권교체, 바뀐 직장, 결혼 등의 중요한 생이 지나갔고, 그때마다 시인의 스크린에는 많은 분량의 이미지와 사상과 정서가 지나고 걸러지고 버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재무 시인의 시 경향과 주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의 새 시집을 소개하는 이 지면에서는 이 시집에서 그가 가장 눈에 띄게 집착하고 아리게 생각하는 몇몇 편린들을 통해 이재무 시인의 변모를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에서 말한 바대로 58년 개띠인 이재무 시인은 ‘슬픔은 늙지 않는다’의 첫 줄에서 "내 나이 올해로 오십이니"라고 말하면서 "애증과 집착으로 숯불처럼 이글거리던 눈/ 차갑게 식어버린 뒤 물 떠난 연못이 되어/ 산비탈 감자꽃 만나고 온/ 삐쩍 마른 바람이나 품고 있을 것인가"라고 그의 오십 년을 돌아보고 있다.

흔히 지천명(知天命)이라 불리는 나이 50은 참으로 안타까운 나이이며 바쁜 나이이다. 어느 시인이 불혹을 ‘앞으로 나가기도 뒤로 돌아가기에도 어려운 나이’라 했는데 이에 비한다면 지천명은 뒤로 돌아가기에는 ‘아예 불가능한’ 나이인 것이다. 그만큼 정열과 힘이 남은 약 십 년의 시간에 생의 중요한 일들을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신체적 노화의 낌새에 예민해지는 시기인 것이다.

이재무 시인도 시집 곳곳에서 이런 아쉬움과 후회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평소에는 남의 일처럼 말하던 ‘아내‘의 이야기며, ’부재‘ ’무덤‘ ’빈 자리‘ 등에 대하여 따듯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더듬고 있다.

50의 나이가 그렇듯 마누라 이야기가 나오면 시큰둥하던 시인도 시집에서 네 번씩이나 아내를 떠올리고 있음에 놀란다. ‘국수’ 에서는 아들과 멸치국수를 삶아 먹다가 뜬금없이, 시쳇말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정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라고 중얼거리며 시를 덮고 있다.

또한 ‘봄밤’에서는 중환자실 친구를 면회하고 돌아와 "아내 몰래 수음"을 하는 순진한 어설픔도 내비친다. ’빈자리가 가렵다‘ ’부재에 대하여‘ 등에서도 "웃음 잃은 아내"를 더듬거리다가, 이재무답지 않은 생뚱맞은 목소리로 멀리 요양 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면/ 함께 사는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살가운 말을 하리라"라고 설파한다. 그것도 기대치를 엄청나게 넘어서 "갓 데쳐낸 근대같이/ 조금은 풀죽은 목소리로"라고 말이다.

가끔 우리 58년 개띠들이 모여 목청을 높여 떠들던 ‘마누라’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이재무 시인의 시를 보며 정말 그가 지천명이 되었음을 느낀다. 첫째 그가 아내를 깊고 폭넓게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보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그가 이제는 넘치는 힘 거두고 가정으로 회귀하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속심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천명의 나이는 확실히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넓게 생각하며 무디게 행동한다.

▲ 이재무 시인. 모습은 아직 청년이지만 그도 올해 지천명이 되었다. ⓒ 창비


작년에 이재무 시인이 엮어낸 연시집(<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도서출판 화남)에 그의 ‘날생각’들이 피처럼 튀던 것에 비하면 새 시집 <저녁 6시>는 천지개벽으로 가득하다. "적멸 한 솥 끓이고 있다"고 화두를 던진 ‘무덤에 대하여’ , "가난은 이제 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라고 냉정한 끝맺음을 피같이 쏟아낸 ‘가난에 대하여’, "생의 종점에 다다를수록 바닥 더 깊어지는 욕망"을 경계하는 ‘빈 자리가 가렵다’ 등의 편편은 이재무 시가 깊이와 무게를 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이 다만 목청만 높여 질러대는 소리가 아니라 묵히고 삭혀 농익은 깨달음인지는 그가 시집 뒤에 붙인 "24년 동안 시를 써왔지만 내게 있어 시의 정체나 본질은 아직 요령부득이다. 삶에 특별한 전문가가 없듯이 예술행위 또한 각별한 비법이 있을 수 없다. 시는 내게 구원이면서 고통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즐거운 형벌에 만족한다"라는 '시인의 말'이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가 ‘이 즐거운 형벌’ 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형벌의 감옥에 꼭꼭 갇혀 더욱 농익은 시작에 빠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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