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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판한 언론사엔 광고 못준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 이후 경향·한겨레에 삼성 광고 '뚝'

등록|2008.01.11 18:40 수정|2008.01.11 18:40
조선일보 45건, 중앙일보 29건, 동아일보 15건.
한겨레, 경향 0건.

지난 12월 1일부터 조선·중앙·동아·한겨레·경향 등 5개 일간지에 실린 삼성의 광고 개수다. 32일 동안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삼성 관련 광고를 단 한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고발로 촉발된, 이른바 '삼성 비자금 파문'과 관련해 삼성에 비판적으로 보도해 온 신문들에 대해 '언론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삼성 친족 그룹들까지 '광고 통제' 동참

민주언론시민연합(대표 김서중·신태섭, 이하 민언련)이 지난 12월 1일부터 올 1월 7일까지 신문이 발행되는 32일 동안 5개 일간지의 삼성 관련 광고 게재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선일보는 해당 기간 동안 '애니콜' 돌출광고를 포함해 45건의 삼성 광고를 실었고, 중앙일보는 '하우젠' 돌출 광고 포함 29건, 동아일보는 15건의 광고를 실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선 삼성 광고를 찾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오래전에 르노자동차에 인수된 '르노삼성자동차' 광고가 각각 2건, 1건이 실렸을 뿐이다.

▲ 조선일보 경제면 1면에 실리는 삼성 '애니콜' 돌출광고(왼쪽 사진의 좌측상단)와 중앙일보의 삼성 '하우젠' 돌출광고(오른쪽 사진의 우측상단) ⓒ 조선일보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민언련은 "삼성 이건희 일가와 친족관계에 있는 그룹들도 '삼성 비판 언론'에 대한 '광고 통제'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민언련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여동생인 이명희씨가 회장으로 있는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조·중·동에 각각 4회, 3회에 걸쳐 전면광고를 집행했지만, 한겨레와 경향에는 단 한 건씩을 싣는 데 그쳤다.

또 삼성이 재단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대도 조선과 중앙에는 각각 6회에 걸쳐 광고를 집행하면서 한겨레와 경향에는 한 건도 싣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 후 삼성 광고 '뚝'

이와 관련 민언련은 "어떤 신문에 광고를 집행하고, 하지 않고는 전적으로 광고주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주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매체에 자기 돈을 들여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현재 삼성이 한겨레와 경향에 대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단지 호불호나 선택의 수준을 넘어 '비판언론 손보기' 내지는 '길들이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삼성은 이른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있기 전에는 한겨레와 경향에 대해 조·중·동 못지않은 광고를 집행해왔다. 민언련에 따르면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1차 기자회견이 있던 지난 10월 29일 바로 전 1주일(10월 22일~29일)만 하더라도 한겨레에는 모두 7건의 삼성 관련 광고가 게재돼, 5건이 실린 조선일보에 비해 많았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가진 29일 직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민언련에 따르면 지난 1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한겨레에는 11월 10일 르노삼성 1건을 제외하면 삼성 광고가 단 1건(11월 14일 삼성중공업)밖에 게재되지 않았다.

민언련은 "결국 한겨레와 경향에 광고를 집행하지 않는 삼성의 행태는 삼성비자금 문제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이들 신문에 대한 보복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의혹 양심고백' 내용이 하나하나 사실로 드러나는 마당에 삼성이 이를 자성하고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한 신문을 상대로 감정적인 보복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광고로 언론 길들이기...한겨레·경향 생존권 위협

▲ 12월 18일 동아일보 경제면 5면에 실린 삼성 전면 광고. 삼성증권이 홍콩 경제지 '아시아머니'에서 3년 연속 한국 최우수증권사에 선정된 것을 자축하는 광고다. 이 광고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모두 실렸지만,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 동아일보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삼성 광고비 비중은 각각 11.8%와 10.7%. 세계일보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삼성 광고가 많이 실리는 조선·중앙·동아의 삼성 광고비 비중은 각각 3.2%, 3.9%, 4.5% 수준이다.

민언련은 "비록 삼성 광고비 자체는 중앙이 124억 원으로 가장 많고 한겨레와 경향은 그 절반 정도인 61~63억 원이었지만, 전체 광고수익이 중앙에 비해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겨레와 경향이니만큼 삼성의 광고를 계속 수주하느냐 여부가 불행하게도 신문사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삼성이 해마다 언론매체에 대한 광고비를 늘려온 이유는 나날이 사세가 확장되어가는 삼성으로서 기업홍보, 제품홍보라는 광고 본연의 목적도 있겠지만, 아울러 광고를 통해 언론을 길들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번 삼성비자금과 관련한 비판언론에 대한 광고통제가 이러한 지적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회장 지시사항'이란 삼성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직접 "한겨레신문이 삼성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쓴 기사를 전부 스크랩해서 다른 신문이 보도한 것과 비교해보고 이를 한겨레 측에 보여주고 설명해 줄 것"이라며 "이런 것을 근거로 광고도 조정하는 것을 검토해 볼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자본의 오만한 권력..."시민의 힘으로 바꿔야"

민언련은 "삼성이 지금과 같이 자본을 통해 언론에 재갈 물려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오만한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 거금을 들인 기업 이미지 홍보로 쌓아 온 초우량기업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은 지금 당장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대한 광고탄압을 중단하라"고 성토했다.

민언련은 이어 "비판언론에 대해 광고를 끊어버림으로써 비판언론의 싹을 자르고 길들이겠다는 거대자본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자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사실상 어찌할 도리가 거의 없다"며 "시민의 힘으로" 한겨레와 경향을 살리자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한겨레와 경향이 자본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지금까지 해왔던 사회감시와 비판기능을 더욱 철저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의 힘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민언련은 "오만하고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는 재벌권력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신문들이 '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위기를 겪는 일만큼은 막자는 것"이라며 "주변곳곳에 삼성의 언론통제 실상을 널리 알리는 일에서부터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구독하는 일까지,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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