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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가면 신라 석탑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시대별 석탑의 변화가 한눈에 다 보여

등록|2008.01.11 20:03 수정|2008.01.11 20:03
천년고도 경주에 가면 역사적으로 신라 석탑의 흐름이 한 눈에 보인다.

신라 최초의 석탑 분황사석탑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이후에 삼국에서는 탑파가 전립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목탑을 세우다가 차츰 전탑과 석탑 등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분황사 석탑신라 최초의 석탑이다. ⓒ 김환대


분황사에 가보면 신라 최초의 석탑이라 할 수 있는 모전석탑이 있다.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한 석탑이다. 국보 제30호로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밑에는 상당히 큰 돌을 쌓았고 탑신 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있다.

기단 위에는 동서남북으로 사자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1층 탑신의 사방에는 감실을 두고 문을 내었는데 입구에는 각기 둘씩의 입체감이 두드러진 금강역사상(인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다.

금강역사상조각 수법이 아주 우수한 금강역사상이 새겨져 있다. ⓒ 김환대


1915년 일본인이 수리한 이후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리 당시 2층과 3층사이 탑 안에서 사리함과 각종 옥류 구슬 바늘과 침통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석함과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분황사 출토 석함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에 가면 있다. ⓒ 김환대


삼국통일 이후에 쌍탑이 등장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이제는 쌍탑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나타나는 탑이 바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이다. 양탑은 거의 같은 규모로 신문왕 2년(682)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959년 12월 서탑을 해체 복원한 이후에 동탑도 1996년 4월 25일 해체하였는데 사리공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도 서탑의 보수 공사가 진행중인데 곧 마무리될 예정이다.

감은사지 쌍탑삼국통일 이후 쌍탑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 김환대


이중 기단에 옥개석 밑에는 직각으로 꺾어지는 층 단식 받침이 있고 추녀는 좌우의 끝이 수평을 이루며 낙수면은 완전히 경사지게 되어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나원리 오층석탑 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며 7세기 말에 조성된 황복사지 삼층석탑(구황동 삼층석탑 국보 제37호)도 볼 만하다.

9세기 이후에 각종 장엄조식 표현

9세기가 되면 탑이 이제 전국적으로 거의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기단이나 초층 탑신에 팔부중상, 인왕상, 안상 등이 등장하며 몸돌에는 사천왕상이나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나타난다. 숭복사지 쌍탑의 팔부중상, 원원사지 쌍탑 상층기단의 십이지신상은 대표적이다.

원원사지 쌍탑기단에 십이지신상과 몸돌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어 볼 만 하다. ⓒ 김환대


이형석탑도 볼만

기존의 삼층석탑의 형태에서 다소 형태가 다른 석탑들을 이형 석탑이라 한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다보탑은 대표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원형의 지대석과 팔각 원당형으로 된 이중 기단 위에 있는 석굴암 삼층석탑과 안강 정혜사지 십삼층석탑도 볼 만하다.

석굴암 삼층석탑일반인들이 찾지 않는 석굴암 삼층석탑 ⓒ 김환대


정혜사지십삼층석탑다소 이형적인 석탑으로 층수에 비해서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 김환대


경주에 가면 이처럼 신라 석탑의 시대별 흐름을 한 눈에 다 답사하며 살펴 볼 수 있어 각 시기에 중요한 석탑 변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경주지역 석탑 순례

분황사석탑-고선사지 삼층석탑(국립경주박물관 야외)-황복사지 삼층석탑-나원리 오층석탑-정혜사지 십삼층석탑-불국사 다보탑·석가탑-석굴암 석탑-장항리사지 석탑-감은사지 석탑

장엄 조식이 있는 석탑

서악동 삼층석탑-남산동 석탑-장항리사지석탑-숭복사지석탑-원원사지석탑-창림사지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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