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문학과 음악, 여자를 좋아했던 애주가 탐정

[불멸의 탐정들 19] 모스 경감

등록|2008.01.13 12:25 수정|2008.01.13 12:25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1975년 작품 ⓒ 동서문화사

탐정들 중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맥주 킬러'였던 네로 울프, 기드온 펠 박사는 말할 것도 없고 피터 윔지, 마이크 해머 모두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 이었다.

영국작가 콜린 덱스터가 창조한 탐정 모스 경감도 술에 관해서는 빠지지 않는다. 모스 경감도 역시 술, 그 중에서도 맥주를 좋아한다. 모스 경감은 오전이고 밤이고를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신다. 근무시간 중에도 틈이 나면 식당으로 달려가서 맥주를 마신다.

모스 경감은 술에 대해서 독특한 사고방식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함께 술을 마시는 동료에게 '액체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이 두뇌활동에 좋다네'라고 말한다.

'액체로 된 음식'이 바로 술이다. 모스 경감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모스 경감은 하루 활동에 필요한 열량의 대부분을 술의 형태로 섭취한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던가. 모스 경감도 술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1989년 작품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에서 모스 경감은 자신의 집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병원에서 술 때문에 위장이 헐고 간이 부었다는 진단을 받는다. 모스 경감은 그래도 굴하지 않는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부하를 통해 몰래 술을 들여오고, 간호사의 눈을 피해 그 술을 밤마다 홀짝홀짝 마신다.

술에 관해서라면 그 어느 탐정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이 바로 모스 경감이다. 모스 경감이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투덜대면, 그의 상관은 '자네가 술집에서 낭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국 옥스퍼드 지역의 주임경감 모스

이렇게 술을 퍼마시면서 경찰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기특할 정도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스 경감은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거나 특별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스 경감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가 활동하는 지역인 영국의 옥스퍼드 구역에서, 모스 경감의 이름은 거의 전설처럼 떠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괴짜이지만,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이런 능력의 소유자인 만큼 경찰청에서 그의 음주습관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술 말고도 모스 경감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한다. 고전음악 그중에서도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하고 신문에 실리는 십자말풀이를 즐겨한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에는 집에 들어앉아서 자신이 가진 레코드 목록을 타이핑한다.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는 자신의 주변에 여자가 있지 않나 두리번거린다. 괜찮은 여자를 발견하면 그곳으로 다가가서 '작업'을 걸기도 한다.

모스 경감은 나이가 많고 머리는 점점 벗겨져 간다. 술 때문에 배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키도 크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작고 통통한 스타일이다. 첫작품인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서 모스 경감은 50세가 넘은 독신으로 등장한다. 동료의 표현에 의하면 모스 경감이 '자기중심적이고 게으르기 때문에 결혼을 못했다'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술집에서 작업을 하면 백발백중 여자들이 그에게 호감은 갖는다. 병원에 입원해서는 그곳의 간호사들을 상대로 작업하기도 한다. 그 여자들은 대개 모스 경감보다 20살 이상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다. 모스 경감이 가지고 있는 어떤 면이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일까.

중년의 탐정답지 않게 모스 경감은 여자들에게 붙임성이 있다. 문학과 고전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처음 보는 여자들과 대화하면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키플링과 콜리지의 시를 인용한다.

맥주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술집에서는 술을 한잔 사며 자연스럽게 여자와 이야기를 터나간다. 자신이 호감을 갖고 있는 여자에게 거침없이 칭찬의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태연하게 포르노 잡지를 뒤적이기도 한다.

그럴 때 모스 경감은 속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포르노소설 작가가 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수사를 하면서 뭔가 실수했을 때는, '내 능력으로는 경찰이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면에서 모스 경감은 무척 괴짜인 인물이다. 일반 사람들이 '경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선입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바로 모스 경감이다.

모스 경감을 따르는 부하직원 루이스

<제리코의 죽음>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1981년 작품 ⓒ 해문출판사

모스 경감에게도 파트너가 있다. 자신의 부하직원인 루이스가 바로 그 파트너다. 모스와 루이스는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서 처음으로 팀을 이룬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관할구역인 옥스퍼드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일반사람들의 눈에 모스 경감이 독특한 인물로 비쳐지는 것처럼, 처음에는 루이스도 모스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모스는 자신의 집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에 실려간다. 병원에서 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스를 보고, 루이스는 모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모스는 루이스에게 몰래 남의 집에 침입해서 증거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때로는 루이스에게 '자네는 천재야'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때로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자네는 점점 엉망이 되고 있어'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함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도 계산은 루이스에게 미루는 경우가 많다. 루이스에게 모스는 변덕스러운 기분을 가지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관인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곧 자신의 상관인 모스에게 적응한다. 루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스에게 농담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술값을 많이 내는 것에 대해서 모스에게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루이스는 모스를 굳게 믿고 따른다. 모스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몰래 술을 숨겨서 가져다 주었던 인물도 루이스다.

루이스가 모스를 따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스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수사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스는 루이스와 함께 수사할 때 자신의 능력을 더 발휘한다. 모스는 이런 사실을 경찰청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모스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루이스는 기분이 우쭐해진다.

사건이 발생하면 모스와 루이스는 함께 현장으로 출동하지만, 대부분의 추리와 분석은 모스의 몫이다. 모스가 대부분의 단서를 끼워맞추면서 퍼즐을 완성해간다. 하지만 100% 완성하지는 못한다. 마지막 남은 몇 가지 단서를 이용해서 추리를 마무리하려면 루이스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모스와 루이스 콤비

이 두 사람은 술집에서, 사무실에서 때로는 누군가의 집에서 대화한다. 그럴 때마다 루이스가 별 의도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모스에게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루이스는 오래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 관련자의 집에 걸려 있는 커튼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면 모스는 한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서서 감탄하는 것이다. '루이스, 자네는 정말 천재야!'라고 말하면서.

1975년 작품인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서 시작한 두 사람의 활약은 20년이 넘게 이어진다. 나이를 먹어도 이 두 사람은 여전하다. 함께 술을 마셔도 역시 루이스가 많은 술값을 부담한다. 엉뚱하고 익살맞은 대화도 그대로다. 수많은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그만큼 많은 범인을 잡아들일수록, 이 두 사람의 우정과 신뢰도 점점 굳어져갔던 모양이다.

여자를 좋아는 모스의 스타일도 변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건에 도전해서 고집스럽게 범인을 추적하는 것도 그대로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서든 마지막 단계에서 모스는 항상 슬픔을 느낀다. 모스도 나이를 먹으면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범죄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법을 수호하는 경찰관이다. 그렇더라도 법은 곧 정의일까?

모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의 상관은 신학적인 문제는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답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스는 조용히 생각할 일이 있을 때마다 혼자서 술집을 찾곤 한다. 20년이 넘게 술집에서 그가 생각했던 것도 그런 형이상학적인 문제였을지 모른다.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작품에는 어려운 사건을 분석하고 추리하는 재미도 있고,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하는 긴장감도 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모스와 루이스, 그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선문답같은 대화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통찰을 담고 있는 대화는 '모스 경감 시리즈'의 백미일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