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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서울시장과 대통령은 다르다

지지층이 반대하는 일도 해야

등록|2008.01.13 16:30 수정|2008.01.13 16:50
대통령은 서울시장보다 몇 배나 무거운 자리인가?

차기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의 일거수일투족에 연일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 당선 후 1달이 약간 안 되는 기간에 같은 교회 소속 5공 출신 인수위원장 선임, 부동산 관련 정책 변경, 신용불량자 빚 탕감, 한반도 대운하 건설 추진, 정부조직 축소 등이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정권이 출범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다.

신년인사차 아직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의 역사적 책무를 깊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동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세간의 부러움이나 방송에 비쳐지는 모습과는 달리,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역사와 5천만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고뇌의 자리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 둘러싸이고 수많은 조직을 거느리고 있더라도 수없이 많은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이다. 따라서, 여러모로 서울시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우리 국민의 1/5에 달하는 서울시의 행정을 책임지는 수장이지만,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다음으로 말석에 배석하는 것이 서울시장이다. 반면 군 통수권자로서 국군을 통솔하고 국가원수로서 정상외교를 하며 행정수반으로서 국정을 통할하는 것이 대통령이고, 경호나 의전 등에 있어서도 서울시장과는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겉보기 차이 말고, 대통령 당선의 배경이 되었던 서울시장과 앞으로 감당해나갈 대통령직의 근본적 차이를 잘 인식하는 것은 이명박 당선인에게 지금 필요한 일이다.    

서울시장은 튀어야 하는 자리, 대통령은 피할 수 없는 자리
 
먼저, 서울시장은 어떻게든 방송카메라 조명을 받고 싶은 자리이고, 대통령은 어디를 가든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다. 조용히 쉬고 싶어도, 잠시 숨어있고 싶어도 앞으로 5년간 그렇게 할 수 없는 자리다.

서울시장일 때는 조금이라도 튀어보이는 것이 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많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입방아를 찧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최근 이명박 당선인이 '노동자들은 태안 자원봉사자처럼 자세를 바꿔야 한다'라고 하자 보인 상당수 국민들의 부정적 반응이 한 예다. 

서울시장일 때와 달리 이제 대통령의 작은 말 실수, 행동 하나하나에도 가시가 달려 되돌아온다. 국회의원일 때는 솔직하고 투박한 말투로 ‘5공 청문회 스타’까지 되었던 노 대통령이 똑같은 말투로 대통령으로서는 ‘언어 품위’ 문제로 고생했던 것을 보면 알 것이다. 

다음은, 서울시민에 국한된 유한책임적 행정과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무한책임적 정치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서울시장일 때는 청계천 복원과 서울시 교통체계 개선 등 시민들이 좋아할 일, 인기있는 일만 해도 되었다. 납골당 문제나 하수구 정리, 오폐수 처리, 세금 문제 등 골치 아프거나 자칫 잘못하면 표 떨어질 일은 뒤로 미뤄도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인기없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고, 대내외적으로 산적한 일도 회피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서울시장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게 대통령이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지지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국익을 위해 반대되는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일 것이다. 여론이 나빠지고 민심이 이반을 해도 책임있는 대통령이라면 인기 정책을 꺼내 쓸 수가 없다.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 파병 문제는 물론 청년 일자리 만들기나 중소기업 살리기, 영세자영업자와 280만명의 신용불량자, 550만명의 비정규직 문제 등은 잠시도 내버려둘 수 없으며 5년 내내 매달려도 손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서울시장과 달리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책임을 미룰 대상도 없다. 모든 행정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심지어는 지방자치단체가 저질러 놓은 일까지 ‘국민 정서상으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예컨대 이명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일 때 추진했던 서울 도심개발이 전국적인 부동산 폭등의 한 원인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었다. 

비가역적인 변화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

정권을 되찾은 측에게는 ‘잃어버린 10년’, 정권을 내놓는 측에게는 ‘너무 짧은 10년’이겠지만 그동안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 공직자들에게 병역의무나 납세의무, 준법여부, 재산형성과정에 있어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세상이 바뀐 것은 큰 소득이다.

이제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이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적용했던 '엄격한 기준'에 따라 차기 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다음 달에 치러지는 것을 국민들은 보게 될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제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 훼손만 아니라면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언론이든 무제한적으로 비판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청이든 시청이든 세무서든 모든 관공서를 국민들은 내 집 드나들 듯 하고, 표를 갖고 있는 국민이 원하면 누구든지 면담을 안 해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한편, 참여정부가 대못질했다는 수많은 ‘진보 정책’들은 대부분 여야합의에 의해 법으로 정한 것이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 지방분권 특별법, 과거사 진상규명 특별법, 새만금 특별법 등 각종 특별법과 국방개혁법, 방위사업법, 사법개혁법, 사학법 등은 한나라당의 ‘입김’이 많이 반영된 것들이기 때문에 차기정부에서 명분 없이는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식을 하기 전에 받아야 할 BBK 특검도 20년 전 같으면 문제도 되지 않았을 사안이다. 이번에 인수위에서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 지시한 것이 문제가 되었듯이, 1970~80년대식 언론통제나 정보정치는 이미 10년간 자유를 만끽한 ‘국민의 입’에 의해 앞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물리학에서는 비가역적인 과정(Irreversible Process)이라고 하는데,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하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엔트로피(통계적 자유도)는 항상 증가한다. 이는 개별적으로는 무질서하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냄으로써 민주주의를 완성시켜나가는 정치 발전 과정과 아주 흡사하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주권의식을 갖고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키면, 민주주의라는 엔트로피가 반드시 성장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역사 법칙이다.

1년 안에 보여주려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면 안돼

우리나라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단임제이고, 그러다보니 대통령직을 미리 연습해 본 사람이 없다. 아무리 장관이나 시장, 국회의원을 오래 해도 앞서 언급한 대로 대통령직은 그 역사적 책무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니 차기정부는 지나치게 서두를 것이 없다. 국민들도 취임 후 1년 안에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5년간 차분히 국정과제를 잘 수행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우선은 인수위 단계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나 교육제도 개편, 세제 개편 등 대형 국정과제에 대해 5년간 추진할 로드맵 정도만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 '컴퓨터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서울시장으로 끝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은 차근차근 전문가와 국민여론을 들어가면서 추진해도 늦지 않다.

모든 공직이 가시방석이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백척간두다. 지금은 차기정부에 우호적이라는 일부 언론들과 재벌, 종교단체도 어떠한 상황이 와도 변함없는 지지를 5년간 보내줄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장 때는 가능했던 많은 것들이 오히려 대통령이 되면 가능하지 않다. 그것이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차이다.
덧붙이는 글 임춘택 기자는 과학평론가이자 전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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