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 속에 감겨 온 둥근 세월
[북한강 이야기 272] 장작을 패다가 문득!
▲ 눈 속에 통나무 장작더미 ⓒ 윤희경
요 며칠간 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화악산 꼭대기에서 칼바람이 내리치고 북한강이 얼어붙느라 쩌렁쩌렁 울어댑니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13˚를 오르내리며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추운 가슴을 데우려면 보일러를 틀어야 하는데 등유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점화버튼에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가슴이 덜덜 떨려오고, 보일러가 돌기 시작하면 돈 타는 냄새로 신경이 곤두서곤 합니다. 기름이 졸아드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애를 태우다 황토온돌방을 만들고 군불을 때기 시작합니다.
▲ 나이테 속에 수많은 세월의 주름살이 감겨와... ⓒ 윤희경
올해는 잣나무를 마당가득 부려놓고 나무들을 잘라 토막을 쳐놓습니다. 작은 나무들은 카터기로, 통나무들은 기계톱으로 붕붕 날려댑니다. 기계들을 사용하려면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한눈이라도 팔다 보면 톱이 살아서 날뛰기 때문입니다.
나무토막을 내다 나무 속 구경을 합니다. 나무는 계절 변화에 따라 세포분열을 하며 성장속도를 조절한다 합니다. 봄여름엔 세포벽이 두꺼워 나이테가 여리고, 가을 겨울은 반대로 얇아 진하게 나타납니다. 나이테를 보면 그 해 날씨는 물론 그 동안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주름살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비바람을 견뎌낸 되알진 참을성과 벌레들을 길러낸 아픔의 상처... 나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벌레들을 키워낸 통나무속, 세월의 아픔을 견뎌낸 또다른 모습 ⓒ 윤희경
나무토막들이 탱탱하게 얼어붙어 달달한 떨림을 보일 때 장작 패기로는 그만입니다. 도끼날에 힘을 불어넣고 자루를 단단히 잡아 날을 고추 세운 다음, 통나무와 한판 기(氣) 싸움을 시작합니다. 온정신을 몰아 한 번, 두 번, 세 번….
내리치면 꿈쩍도 않을 것 같던 통나무들도 나 몰라라 쫙 갈라집니다. 항복이나 하듯 양쪽으로 손을 벌리며 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숨을 몰아쉬며 맑은 햇살 아래 누워 있는 나목(裸木)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떤 승리감 같은 것이 솟아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해줍니다.
▲ 가운데가 자작나무 나이테, 자작나무는 나이테를 숨기고 산다. ⓒ 윤희경
통나무와 기 싸움을 벌이다 이마의 흐른 땀을 훔쳐 냅니다. 어느새 이마엔 길다만 줄무늬가 들쑥날쑥, 손가락 끝마디마다엔 둥근 무늬가 나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세월의 돌기가 거기에 감겨 있었던 것입니다. 아, 아프고 서러운 시간의 나이테들, 이마처럼 직선의 나이테는 줄고, 엄지손가락 나이테 닮은 순간들을 더 둥글게 감아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탱탱한 장작들을 두들겨대며 나무들과의 긴 시간을 만나러 매서운 겨울여행을 떠나갑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클릭하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