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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SAT를 벤치마킹하려면 제대로 해라

[주장] 눈만 뜨면 매일 바뀌는 인수위의 교육정책을 보면서

등록|2008.01.16 16:25 수정|2008.01.16 16:25
  눈만 뜨면 매일 바뀌는 인수위의 교육정책을 보면서 학부모로서 속이 터진다.

이제 고1 입학을 앞두고 있는 자녀를 두고 있기에, 바뀔 입시제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는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언론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마치 형식은 미국 SAT를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2년을 거주했기 때문에, 현지인처럼 SAT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그 내용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인수위의 교육정책을 보면 미국 SAT를 껍데기만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 SAT와 인수위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차이점 및 문제점을 3가지로 짚어 보려고 한다.

 첫째는 시험 회수의 제한 여부이다.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미국 SAT의 핵심은 ‘몇 번이고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매년 11월에 한번만 치러서 학생의 인생을 줄 세우고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 따라서는 몇 번이고 시험을 쳐볼 수 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 평균 2번 이상, 많으면 4번 정도 본 다음에 가장 좋은 점수로 대학을 지원하게 되어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과목별로 최고 점수를 선택해서 지원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3번의 SAT를 보았다고 하자. 그 중에서 2회 SAT 점수가 2200점으로 제일 높지만, 언어의 경우 3회 점수가 790점으로 제일 높으면(2회의 언어 점수가 770점이라면) 총점은 2200점을, 언어 점수는 790점을 제시해도 되는 학교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번 치른 점수로 대학을 지원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한 번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한번 시험을 잘못 치르면 재수를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가 수능시험 기회를 단 한 번으로 제한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사교육비의 가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미국의 SAT처럼 여러 번 보고 좋은 점수를 지원하게’ 했으면 한다. 교육부 관료들은 이런 제도 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선인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 같다. 제도 개혁은 학생들의 편에 바로 설 때 가능하다고 본다.

 둘째는 인수위가 입학사정관 제도의 위험성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SAT를 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를 한다. 미국식 입시 제도가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줄 세우기가 기본적으로는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버드는 몇 점 이상, UCLA는 몇 점 이상이 되어야 지원할 수 있다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자체 기준이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분명히 점수는 좀  모자라는데 입학을 했다거나, 점수가 굉장히 좋은데 떨어졌다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여기에 미국식 입학제도의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핵심은 바로 ‘입학사정관’ 제도이다.

 각 대학별로 입학사정관이 자체 기준을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는데, 그 기준을 몰라서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입학컨설팅’을 찾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또 다른 사교육시장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학별 자체 기준 때문에 미국 입학 제도를 두고 ‘대학별 자율에 맡긴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무런 보완장치 없이 이렇게 했다가는 엄청난 혼란과 입시부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현재 이명박 정부가 40여개 대학으로 입학사정관 제도를 확대하고 거기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와 국민성을 따져볼 때 이 제도가 성공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행되고 있는 ‘대학편입학 비리’의 확대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대학총장의 자녀들과 그 친인척들이 먼저 입학하고, 교수 자녀들과 친인척들이 입학하고 나면, 그 나머지 자리에 일반 학생들이 들어가는 ‘부익부 빈익빈’의 대입제도로 전락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입학사정관 제도 도입 등을 통한 대학 입시의 완전 자율화를 위해서는 ‘대입 비리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사전에 철저하게 마련돼야 한다.

 세 번째, SAT식으로 하려면 수능시험의 과목 수를 축소하면서 동시에 글쓰기를 추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본고사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폐지하는 대신 수능시험에서 논술을 테스트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에서 치러지고 있는 SAT1의 과목은 ‘언어, 수학, 쓰기’ 이 3과목으로, 각 과목당 800점 만점에 2400점이 만점이다. 그리고 SAT2는 심화과정으로, 학생별로 선택해서 2-6과목 정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자녀가 SAT1을 준비할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언어와 쓰기를 따로 치르는 것을 보고 꽤 놀랐다. 그리고 전 미국에 걸쳐서 쓰기를 테스트한다는 점에 더욱 놀랐다. 쓰기 자체에 오지 선다형도 있기는 하지만 에세이를 쓰는 파트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각 대학별로 지원할 때는 자기소개서를 쓴다. 이것을 잘 쓰기 위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작문 교습(writing tutoring)을 받는다. 

 미국 고등학생들도 내신(GPA), 수능(SAT), 쓰기(Writing)를 잘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만 수능, 내신, 논술의 ‘마의 트라이앵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SAT1은 언어능력과 수리능력을 평가하는 반면, SAT2는 작문능력을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 학생들이 Writing에 대한 부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너무 어려워진 논술은 학생들에게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논술을 준비하면서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의 폭과 깊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장점도 많다고 본다. 어떠한 문제점에 대해서 창의적이고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기반을 닦는다는 점에서, 대학에 가서 수학할 능력을 테스트하는 논술은 중요하다. 

 미국은 SAT를 통해서 전 국가적으로 Writing 테스트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가능하다해도 시행되기까지는 시일이 많이 걸릴 것이므로 대학별로 논술을 치르는 현재의 제도는 어느 정도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각 대학이 ‘정시 모집에서 논술의 비중 축소’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대학별 고사를 말하던 대학들이 이명박 당선인의 한마디 (논술시험 없이 수능 올 1등급자를 다수 유치한 연세대 경영학과의 성공사례에 대한 언급)에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에 학부모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입시제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쓰기이다. 한국식 논술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쓰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식 입시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정책 담당자들은 중요한 핵심은 빠뜨린 채 껍데기만 흉내 내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 지식정보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 수학능력시험에  SAT처럼 글쓰기 평가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본고사로 변질될 수 있는 대학별 논술은 자연스럽게 폐지돼,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현재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논술 폐지 검토는 잘못 알려진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전문적이지 않은 교육부 담당기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도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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