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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특검, '조조의 오소 습격'에서 배우라

빠르게 실천해 성공한 '오소 습격'...시기 늦어 의심받는 조준웅 특검

등록|2008.01.17 09:40 수정|2008.01.17 09:40
원소의 '오소(烏巢)', 이건희의 '27층 비밀금고'

"모아진 비자금은 전략지원팀 금고로 들어간다. 삼성 본관 27층 전략지원팀 내 경영지원팀(옛 재무팀 내 관제팀) 구석에 상무 방이 있다. 상무 방에는 가구가 있는데 그 뒤 벽에 비밀 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철창이 나오고 그 안에 비밀 금고가 있다. 안에는 각종 유가증권·의류권·상품권·순금이 있다.

이곳에는 경영지원팀 가운데 극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다. 2004년 퇴사할 때는 관제팀 내에서도 권 아무개 상무와 최 아무개 상무 담당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은 관제팀(현 경영지원팀)이 어렵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고 격려하곤 했다. 그만큼 막강한 힘이 있었다." -<시사IN> 7호 기사 < “삼성은 비자금과 편법의 제국이다”>의 일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을 역임한 김용철 변호사는,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이 '삼성 본관 27층 전략지원팀 내 경영지원팀 구석의 상무 집무실 비밀금고'에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위에 나온 <시사IN> 기사에서도 '27층 비밀금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이 금고를 전담 관리하는 전략지원팀 내 경영지원팀 중역들에게 삼성그룹의 2인자 이학수 부회장이 "어렵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고 격려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이 금고의 총책임자라고 지목한 전략기획팀장 김인주 사장은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그는 삼성을 지배하는 실질 권한을 가졌다. 삼성그룹의 모든 부회장과 사장이 그의 지배 아래 있다. 그가 전략기획실장 이학수 부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시대를 열 것이라고 한다."

<한겨레21>은 김인주 사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이재용이 (회장으로) 올라설 때까지 계속하고, 그 다음에 김인주 사장에게 (전략기획실장직을) 넘겨주라'는 게 회장의 뜻이었다고 한다.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의 관계가 단순한 주종관계가 아니라 비밀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일 것이라는 해석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이학수 부회장과 그의 후계자로 점쳐지는 김인주 사장이 그룹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물러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직·간접적인 여러 정보로 판단할 때 총수 일가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688호 기사 <이학수와 김인주는 오래 갈까>의 일부-

이쯤 돼서 생각나는 <삼국지연의>의 일화가 있습니다. 소제목에서 제가 "원소의 오소"를 인용했다는 점에서, 눈치채셨을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오소'에 소재했던 군량고가 후한 말엽에 하북을 지배하던 원소의 목줄기로 비견될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의 목줄기는 '27층 비밀금고'입니다.

곧바로 쳐들어간 조조와 두달 반 뒤 압수수색한 '조준웅 특검'

원소의 모사였던 허유는 모함을 받아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옛 친구였던 조조를 찾아갑니다. 조조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자 우쭐해진 허유는 다음과 같이 진언합니다.

"조 장군께서는 원소와 같은 큰 적을 맞이해 싸우면서 지원도 부족하고 양식도 바닥났으니 위급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소의 치중과 식량은 모두 '오소(烏巢)'에 있지만, 지키는 군사는 많지 않고 이를 지키는 장수 순우경은 술을 좋아하고 군사를 함부로 대하는 위인이니 좋은 기회입니다. 날랜 기병을 보내 오소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불태워버리면 원소는 반드시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것입니다."

조조는 본인이 직접 나서, 즉시 5천명의 군대를 동원해 원소군으로 위장해 오소를 습격해 쌀 한톨 남기지 않고 오소의 식량을 모두 불태워버립니다. 원소가 뒤늦게 장합에게 군사를 주며 순우경을 구하게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 기습이 관도대전의 향방을 가릅니다.

<삼국지연의>를 평역한 소설가 이문열이 이야기했듯이, 조조는 언제나 질풍처럼 군사를 몸소 이끌고 나아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며 많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한번 결단을 내리면 망설임없이 이른 시일 내에 실천해 전략의 효과가 빛을 바라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반해, '삼성 불법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특별수사·감찰본부와 '조준웅 특검'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후 무려 두달 반이나 지난 시점에서 '27층 비밀금고'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이라는 '승지원'까지 압수수색함으로써 주위의 시각을 환기시키는데에는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꾸준히 삼성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이나 누리꾼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미 중요한 자료를 다 빼돌렸을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조조가 허유의 제보 후 곧바로 병사들을 진두지휘해 원소의 식량고를 남김없이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누리꾼들의 냉소도 이해가 갑니다. 누리꾼들의 말마따나 "폭로 후 두달 반이나 지났는데 머리가 보통 나쁘지 않고서는 그 중요하고도 위험한 자료들을 집이나 금고 그 자리에 가만히 둘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죠.  

게다가, 원소는 일급참모 저수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순우경은 술을 좋아하고 병사를 함부로 대해 한곳을 진득히 지킬 장수가 못된다"고 진언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순우경을 오소에 보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오히려 저수는 "별동대를 파견해 조조의 약탈 가능성을 끊어버리자"는 날카로운 지적까지 남기지만, 원소는 마찬가지로 이를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허술했던 원소와는 달리, '조준웅 특검'이 상대할 이건희 회장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배권 승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인주 사장을 금고의 총책임자로 지명함으로써, 자신이 임명할 수 있는 최선의 인사를 가장 핵심 위치에 배치한 것입니다.

유방이 소하를 최고 행정 책임자로 근거지를 지키게 하고, 조조가 순욱에게 근거지의 모든 행정을 총괄시켰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신중했던 유비도 최초로 파촉 원정을 떠날 당시에는, 기존 지배지역인 형주에 자신의 핵심전력이라 할 수 있는 제갈량과 관우·장비를 그대로 남겨두고 떠났다는 것 역시 돌아볼만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원소야말로 황당한 인사 임명을 남발하다가 자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결코 원소에 비할 사람이 아니지만, '조준웅 특검'도 조조가 되기에는 그 상황이나 의지가 썩 비슷해보이진 않습니다.

'조준웅 특검'에게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

"삼성에서도 압수수색에 대비해 상당한 준비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태평로빌딩 26층에도 이미 삼성의 다른 사무실이 일부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27층 비밀금고도 우리가 상당히 치밀하게 확인했는데 현재로서는 확인된 게 없다. 만일 이전에 존재했다면 구조변경으로 없어졌을 수도 있다. 사무실의 배치도 과거와 달라진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금 시점이 '폭로 후 두달 반'이며, "이건희는 원소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원소가 전풍이나 저수와 같은 일급 참모들의 진언을 무시했다가 낭패를 본 것과는 달리, 이건희 회장은 이학수 부회장이나 김인주 사장과 같은 핵심 참모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주고 있습니다. "압수수색에 대비해 상당한 준비를 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도 이미, "지금 시점에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준웅 특검'의 윤정석 특검보는 "회사의 장부를 압수수색한다면 압수품이 몇 박스 나올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를 수색하는 데는 하루 종일 작업해도 디스크 한 장으로 갖고 나올 수 있다"면서, "외부적으로 보이는 압수물이 몇 박스냐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의 수사가 한두 번의 압수수색으로 결정적인 증거물이 나온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남깁니다. 시선을 주목시킬 수는 있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누리꾼들은 오히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문까지 제기합니다. 그 근거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폭로 후 두달이 훨씬 넘도록 중요한 자료를 집이나 비밀금고 에 그대로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포털 뉴스홈에 등재된 관련기사 댓글게시판에서는 이런 지적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준웅 특검'에게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입니다. 직접 이건희 회장이나 전략기획실 핵심 임원의 입장을 가정해 판단해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과연 나라면 어느 위치에 중요한 자료들을 보관할까"라는 판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전략기획실 핵심 임원들의 기본적인 신상 정보와 특별한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인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판단은 범죄수사의 기본입니다. "내가 반대 입장이라면 어떻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까", 이런 것입니다.

'허허실실'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생각치 않았던 곳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에 고도의 판단력으로 조조가 72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어 도굴꾼으로부터 자신의 무덤을 지키려 했던 사례를 그대로 재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준웅 특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창조적인 상상력이라고 봅니다.

시간은 짧고 해야 할 수사는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준웅 특검'에게 조조의 에피소드를 소개해본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조조는 언제나 질풍처럼 군사를 이끌고 그때그때 적절한 판단으로 활력있게 군대를 지휘했으며, 한번 결심한 사항은 곧바로 실천해 때를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조준웅 특검'에게 '조조'의 전법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조조의 특기 '허허실실'도 매력적인 수사 수단이 될 수 있겠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조준웅 특검'의 '의지'입니다. 수사를 끝내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국민들은 이 점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늘 잊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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