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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찾아오셔서 우리 살려주세요"

원유유출 사고난 태안지역 경제가 고사 직전에 있다

등록|2008.01.17 14:27 수정|2008.01.17 14:35
원유 유출 사고가 생긴 지 한 달이 넘은 지난 일요일(13일), 태안반도를 찾았다. 갑자기 몰아친 영하의 강추위로 바닷바람은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만리포는 의외로 청정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도 깨끗했고 냄새도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간혹 백사장에 엷은 먹물 같은 기름띠가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군데군데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띠를 손으로 긁어서 자루에 담고 있었다.

천리포와 백리포를 가보니 훨씬 많은 봉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돌을 닦고, 모래를 파헤쳐서 속에 배인 기름을 거두어내고, 모래자루를 옮기는 등 봉사자들이 귀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개목항을 가보니 상황은 참담했다. 콘크리트 제방에 가슴 높이만큼 검은 칠이 도배한 듯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제방 아래 쌓아놓은 거대한 자루마다 기름에 전 호박돌들이 가득 담겨 있었고 거둬 내야할 검은 돌들이 해변에 즐비했다.

신두리 사구를 거쳐 학암포를 들렀다. 남녀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에서 단체로 온 고등학생이란다. 춥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환한 미소로 "괜찮아요" 한다. 지금은 모두들 힘든 상황이지만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허리 굽은 할머니에서 나이 어린 초등학생까지 추운 날씨에도 자원봉사자들의 기름칠한 비옷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소원면을 들러 지인을 만났다.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차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찻길 건너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처음 사고가 나서 만리포에 갔을 때 온통 바다를 덮은 검은 기름들을 보면서 공포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제 틀렸구나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모여 깨끗해진 바다를 보니 우리나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국에서 온 물품이 군청에 가득 쌓이고 옷가지는 넘쳐날 정도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수십 명의 안마사들까지 찾아와 봉사자들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안마로 봉사를 자원했다는 것이다. 숙박업소가 어려움을 겪자 봉사자들이 일부러 숙박을 해주면서 도와주기도 했다. 개펄을 지키기 위해 입구에 수많은 배들이 모여 이를 지켜내는 등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안면도로 향했다. 연육교 입구에 겹겹의 오일펜스를 치는 등 기름이 흘러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낸 곳이다. 대하로 유명한 백사장을 찾았다. 한산했다. 차량들이 거의 없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꽂지 해수욕장까지 가보았지만 음식점이나 펜션과 같은 숙박업소에 주차한 차량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기름 피해가 없어서 안심을 했는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연육교 근처에서 식당을 찾았다. 건물에 건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도와주세요'란 문구가 절박해보였다. 한 식당에 들어서니 주인이 너무도 반갑게 맞는다. 넓은 식당에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청국장으로 좀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주인말로는 손님이 전보다 십분의 일도 안 온다는 것이다. 오가는 차량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지는 해처럼 주인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면도 전체가 큰 위기에 빠진 듯싶었다. 특히 안면도에 대거 들어선 펜션들은 거의가 은행에 빚을 내어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보험업을 하는 지인의 말로는 이자조차 내지 못해 보험까지 깨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이제 한계에 달한 것 같다는 것이다. 수많은 펜션들이 파산한다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삽교천, 대천 등까지 손님이 끊겨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들었다.

수산물의 피해도 컸다. 약간의 기름 피해를 입어도 어패물은 금방 냄새로 안다고 한다. 문제는 깨끗한 해역에서 잡은 것조차 사람들이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먼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마저 태안에서 온 것이라면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신이 무섭다고 했다. 안면도, 대천, 삽교천 등 주변 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은 탓에 하소연도 못하고 냉가슴을 앓고 있었다.

이제까지 백만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태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세계에 유래가 없는 거대한 자원봉사자의 물결이 우리 민족의 사랑과 저력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원유 유출로 직접 피해를 받고 있는 지역만이 아니라 수산물도 팔리지 않고 관광객의 발길도 뜸하여 고사 직전에 있는 주변까지 헤아려주어야 한다.

이번 겨울방학 아이들을 데리고 태안반도를 한번쯤 들러보면 어떨까? 환경에 대한 교육도 되고 그들에게 절실한 경제적 도움도 되진 않을까? 찾아가고 수산물을 믿고 사는 것, 그것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길이다. "찾아오시는 것이 저희들 살리는 길"이라는 주민의 말이 겨울바람처럼 춥게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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