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빤, 연탄 갈 때만 필요한 겨?”
내 외박으로 빚어진 연탄불 대소동에서 얻은 사랑 점수
‘여보, 빨리 와요. 연탄불이 속 썩여요.’
위의 내용이 담긴 휴대폰 문자가 왔다. 안양시에 일이 있어 1박을 하고 난 그 다음 날 아침에 아내가 보낸 문자다.
그렇다고 당장 집으로 갈 수는 없다. 시외버스를 타고 왔으니, 내 입맛대로 갈 수도 없거니와 안양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만 해도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에이, 어떻게든 하겠지. 자기들이 안 추우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할 테니. 난 그들의 자생력을 믿어.’
지금 당장 가지 못하는, 아니 안 가기로 마음먹은 내 속에서 합의한 생각이다. 아니 나의 행동을 정당화한 생각이다.
그러고도 한참을 안양시에 있는 지인과 대화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이번엔 전화가 왔다.
“아빠. 언제 와요? 연탄불이 속 시원하게 피질 않고 가물가물 거려요. 어떻게 해요. 엄마도 출근하시고.”
참 가관이다. 아내에 이어 딸아이까지. 아내도 아침에 연탄불 피우기를 시도하다 출근을 했기에 현재 아이들만(물론 놀러온 마을 아이들 몇 명까지 함께)있는 집에서 꺼져가는 연탄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 아닌가. 사실 아내와 아이들이 연탄불을 잘 보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잘 안되나 보다.
그렇게 난리를 펴도 나의 몸이 지금 여기에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볼일을 다 보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경. 예상대로 집의 온도는 평상시보다 몇 도는 내려가 있었다.
“왜, 이제 왔어요. 아빠.”
오매불망 내가 오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그렇게 반겨줄 줄이야.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평소 내가 며칠씩 어디를 갔다 와도 그다지 반갑게 맞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며칠씩 집을 비워도 전화 한 통 없더니.
아내도 “여보,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워요”가 아니고, 아이들도 “아빠, 보고 싶어요. 빨리 오세요. 아빠 사랑해요”가 아니지 않는가. 단지 나를 찾는 이유가 연탄불 때문이라니!
“단지 아빠는 연탄 갈 때만 필요한 겨? 너무한 거 아녀?”라고 살짝 투정을 부리자마자 거기에 있던 우리 모두는 웃음 폭탄을 터뜨린다. 놀러온 마을아이도 한참을 웃는다.
그런 후 연탄보일러 화덕을 열어보니 연탄불이 피기는 했는데 꺼질 듯 말 듯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니 원인이 바로 나왔다. 그래서 그 연탄을 끄집어내고 아궁이를 청소했다. 번개탄을 꺼내 불을 피웠다. 번개탄에 불이 확실히 핀 것을 확인한 후 번개탄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연탄을 그 위에 올렸다. 그런 식으로 세 아궁이(우리 집 연탄보일러는 3구 3탄이다)를 다 피웠다.
우리 집 연탄불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탄보일러를 한 3년 쓰다 보니 연탄보일러 아궁이 밑바닥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독한 연탄가스에 못 이겨 철로 된 아궁이 밑바닥이 삭았던 게다.
그 밑바닥을 연탄재로 채워 바닥을 형성하게 하고 그것을 연탄집게로 조금씩 뚫어 공기량을 조절하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연탄불을 자주 갈던 나에겐 눈에 들어오는 일이지만, 어쩌다 연탄을 가는 아내나 아이들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이렇게 연탄불 대소동은 잠재워졌다.
말은 ‘내가 연탄 갈 때만 필요한 거냐?’고 투정을 부렸지만, 정말 내 마음이 그랬을까. 사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연탄불 하나에 아내나 아이들이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실력을 인정하니 말이다. 가족에게 뭔가를 해줄 게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것도 나만이 해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 아닌가.
이렇게 해서 연탄불이 활활 타올라 우리 시골 흙집에는 어느덧 사랑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집에 있던 아이들과 저녁에 돌아온 아내로부터 점수를 왕창 딴 나는 덩달아 어깨가 한층 올라가 있었다.
위의 내용이 담긴 휴대폰 문자가 왔다. 안양시에 일이 있어 1박을 하고 난 그 다음 날 아침에 아내가 보낸 문자다.
그렇다고 당장 집으로 갈 수는 없다. 시외버스를 타고 왔으니, 내 입맛대로 갈 수도 없거니와 안양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만 해도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에이, 어떻게든 하겠지. 자기들이 안 추우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할 테니. 난 그들의 자생력을 믿어.’
지금 당장 가지 못하는, 아니 안 가기로 마음먹은 내 속에서 합의한 생각이다. 아니 나의 행동을 정당화한 생각이다.
그러고도 한참을 안양시에 있는 지인과 대화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이번엔 전화가 왔다.
▲ 연탄보일러우리 집 연탄보일러 뒤에는 연탄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줄을 서 있다. ⓒ 송상호
“아빠. 언제 와요? 연탄불이 속 시원하게 피질 않고 가물가물 거려요. 어떻게 해요. 엄마도 출근하시고.”
참 가관이다. 아내에 이어 딸아이까지. 아내도 아침에 연탄불 피우기를 시도하다 출근을 했기에 현재 아이들만(물론 놀러온 마을 아이들 몇 명까지 함께)있는 집에서 꺼져가는 연탄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 아닌가. 사실 아내와 아이들이 연탄불을 잘 보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잘 안되나 보다.
그렇게 난리를 펴도 나의 몸이 지금 여기에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볼일을 다 보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경. 예상대로 집의 온도는 평상시보다 몇 도는 내려가 있었다.
“왜, 이제 왔어요. 아빠.”
오매불망 내가 오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그렇게 반겨줄 줄이야.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평소 내가 며칠씩 어디를 갔다 와도 그다지 반갑게 맞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며칠씩 집을 비워도 전화 한 통 없더니.
아내도 “여보,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워요”가 아니고, 아이들도 “아빠, 보고 싶어요. 빨리 오세요. 아빠 사랑해요”가 아니지 않는가. 단지 나를 찾는 이유가 연탄불 때문이라니!
“단지 아빠는 연탄 갈 때만 필요한 겨? 너무한 거 아녀?”라고 살짝 투정을 부리자마자 거기에 있던 우리 모두는 웃음 폭탄을 터뜨린다. 놀러온 마을아이도 한참을 웃는다.
그런 후 연탄보일러 화덕을 열어보니 연탄불이 피기는 했는데 꺼질 듯 말 듯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니 원인이 바로 나왔다. 그래서 그 연탄을 끄집어내고 아궁이를 청소했다. 번개탄을 꺼내 불을 피웠다. 번개탄에 불이 확실히 핀 것을 확인한 후 번개탄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연탄을 그 위에 올렸다. 그런 식으로 세 아궁이(우리 집 연탄보일러는 3구 3탄이다)를 다 피웠다.
우리 집 연탄불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탄보일러를 한 3년 쓰다 보니 연탄보일러 아궁이 밑바닥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독한 연탄가스에 못 이겨 철로 된 아궁이 밑바닥이 삭았던 게다.
그 밑바닥을 연탄재로 채워 바닥을 형성하게 하고 그것을 연탄집게로 조금씩 뚫어 공기량을 조절하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연탄불을 자주 갈던 나에겐 눈에 들어오는 일이지만, 어쩌다 연탄을 가는 아내나 아이들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이렇게 연탄불 대소동은 잠재워졌다.
▲ 연탄불지금 연탄불이 활활 타오르려 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가족의 사랑의 온도가 올라갈 것이고, 나의 어깨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 송상호
말은 ‘내가 연탄 갈 때만 필요한 거냐?’고 투정을 부렸지만, 정말 내 마음이 그랬을까. 사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연탄불 하나에 아내나 아이들이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실력을 인정하니 말이다. 가족에게 뭔가를 해줄 게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것도 나만이 해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 아닌가.
이렇게 해서 연탄불이 활활 타올라 우리 시골 흙집에는 어느덧 사랑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집에 있던 아이들과 저녁에 돌아온 아내로부터 점수를 왕창 딴 나는 덩달아 어깨가 한층 올라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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