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사람은 사람의 온기로 산다

등록|2008.01.17 18:20 수정|2008.01.17 18:20
남편이 출근한 다음, 아직 어둑어둑한 거실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내게 절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염주를 꺼내 들고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습니다.

내 이부자리가 깔린 한 쪽 벽면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둥그런 원을 그려놓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얀 벽에 낙서가 하고 싶어 연필을 들고 팔을 한 바퀴 돌렸더니 순식간에 완성 된 동그라미 입니다. 그려놓고 보니 속이 텅 비어 아주 시원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이 동그라미를 쳐다보면 주술에 걸린 듯 속이 가라앉곤 하지요. 그 벽을 향해 서서 말합니다.

둥근 마음
텅빈 마음
부처님 마음

이렇게 중얼거리며 두 발을 포갠 위에 엉덩이를 천천히 내려놓았습니다.아프고 시린 오른 쪽 엉덩이 부분에 뒤꿈치가 닿자, 엉덩이에 시큰한 통증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지긋이 그 통증을 바라보니 시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방바닥에 짚고 이마를 조아렸지요. 이번엔 허리 쪽 근육이 아우성을 칩니다. 역시나 편안한 마음으로 통증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계속 염불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손을 다시 모으고 발끝에 힘을 주어 일어섰더니 헉헉 숨이 찹니다.

오랫만에 하는 절
마음을 낮추고 싶어서 하는 절
마음을 터엉 비우고 싶어서 하는 절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올라오는 절

절을 하며 염주를 굴리다보니 2년 전, 처음 108배를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108배를 하면서 감사 염불을 했는데, 염주 한 알 한 알에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지요. 오늘도 그렇게 해 보아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시아주버님의 얼굴이 스쳐갑니다. 그리곤 눈물이 그냥 툭 터져버렸습니다.

며칠 전 남편이 퇴근 후 옷도 벗기 전에 시아주버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힘들겠다며 통장으로 돈을 넣어주셨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남편은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그 얘길 또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역시 형님만한 아우 없어."

아주버님은 평소 두 아우들에게 늘 애정을 가지셨고 형제 간의 도리도 참 잘 하셨습니다.그리고 집안의 어른으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아주버님이 늘 감사하고 고맙기만 한데 두 동생은 형님에 대해 아주 짠 점수를 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형님만한 아우 없네요."

기회 될 때마다 몇 번 말을 하긴 했지만 전혀 접수가 되지 않은 채 나이 50을 넘겼는데
돈 좀 주셨다고 그런 말을 할 남편이 아니니 남편도 이제 철이 드나봅니다.

동생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꾸준히 당신 몫을 해오신 아주버님이 갑자기 존경스럽기도 하고, 이제라도 남편이 형님을 알아주니 같은 맏이로서 동병상린의 아픔이 전해져 가슴이 짜안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마음으로, 물질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당신 앞의 삶을 책임지십시오. 내 앞에 일어나는 일은 감사할 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아픈 가슴을 더욱 아프게 채찍질하시면서 강한 사람을 만들어주신 스승님.

하루가 멀다하고 남편을 찾아와 "사모님은 반드시 낫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매일 새벽 기도 하고 있습니다"하시며 몸에 좋다는 파동수를 1년 가까이 보내 주신 성 사장님.

"언니, 바람 쐬러 가자. 진작 갔어야 했는데 미안해."

3박 4일 동안 직접 운전까지 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사촌 시누이.

"언니 소식 듣고 어떻게 위로를 할까 고민하다가 보름 동안 작업했어요."

공부하랴 살림하랴 돈 벌이 하랴 자신의 삶도 버거울텐데 나를 위해 붉은 장미를 화폭 가득 담아 왔던 외가쪽 시누이.

"이렇게 목소리 듣게 돼서 기쁩니다. 걱정 마세요. 반드시 나으십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고요. 여전히 매력적이세요."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고마움과 반가움을 전하는 내게 큰 웃음을 주셨던 남편의 선배.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이 약값에 보태라며 큰 돈을 보내주셔서 흔해빠진 암보험 하나 없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분들은 또 몇몇인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준 친구의 봉투 속에 수표가 있어서 가슴 철렁했던 일, 조용히 놓고 간 책 속에 얌전히 끼워져 있던 친구의 마음, 거동이 불편한 나의 약을 대신 타다주던 친구의 우정, 딸의 손에 모기장을 들려 강원도 산골까지 보내준 남편의 사랑, 엄마가 곁에 없어도 전교 2등을 놓지지 않은 우리 아들의 듬직함, 명절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위로금으로 달래주던 아랫 동서, 함께 마음 공부하던 도반들의 응원……. 무엇보다 눈물로 기도하신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의 간절한 기원.

이 많은 이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를 오열케 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잘나고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로 24시간 숨을 쉬 듯
보이지 않는 그들의 끝없는 사랑이 내게로 흐르고 있었던거구나.
그들의 건강한 기운이 내게 스미지 않았던 들 어찌 내가 소생할 수 있었을까?
힘내자.
더욱 힘내자.
부등켜 안고 새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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