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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꿈에 나타난 엄마, 무얼 말하려고 했을까?

내 꿈에도 나타나서 이야기 좀 해줘요

등록|2008.01.24 15:00 수정|2008.01.24 17:04
자다가 일어나서 보니 아직도 밖은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찬서리가 내리는 걸까? 밖은 푸르스름했다. 자다가 일어난 흐미한 머리로 좀 전에 꾼 꿈을 생각했다. 무슨 꿈을 꾸다가 제 풀에 놀라서 깼던 것이다.

그게 무슨 꿈이었더라. 멧돼지가 쫓아오는 꿈이었다. 엄니를 앞세운 채 푸푸 콧김을 뿜으면서 멧돼지가 쫒아왔다. 나를 쫒아오진 않았다. 내 근처 있던 누군가가 멧돼지에게 당했다. 그 사람은 멧돼지 엄니에 찔렸다.

놀라서 일어났다. 꿈이었다. 일본으로 연수를 간 남편이 걱정되었다. 꿈 속의 그 사람이 꼭 남편 같았기 때문이다. 날은 추운데 남편은 없고 몸도 불편하다 보니 그런 꿈을 꾸었나 보다.

꿈꾸다 일어난 밤, 걱정스럽다

꿈 생각을 하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집에 가야겠다고 그러셨다. 두 달 동안 잘 계셨는데 무단히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그러시는 거였다. 남편은 나를 책망했다. 내가 아버지에게 서운하게 대해서 집에 가시려고 하는 거라면서 나더러 왜 그러냐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였다.

"꿈이 맞긴 맞나? 꿈을 우에 해석하는기고?"

꿈이라니, 아침밥을 먹는 자리에서 왠 생뚱맞게 꿈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요 매칠째 계속 똑같은 꿈을 여러 차례 꾼다. 깨보면 꼭 생시같다."
"꿈이라꼬요? 어떤 꿈을 꾸는데요 아부지?"
"너거 어매가 꿈에 자꾸 빈다. 살아생전에 내한테 눈 한 번 크게 안 치떠던 사람이 꿈에서는 내보고 막 머라칸다. 와 집 놔뚜고 여게 이렇게 있나 카면서 막 머라칸다."

엄마가 아버지 꿈에 나타나서는 집 비워두고 나가 있다고 막 잔소리를 하더란다. 그것도 여러 날 똑같은 꿈을 꾸고 보니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한 번 청도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그러셨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계속 말릴 일도 아니었다. 얼마나 집 생각을 했으면 꿈에 엄마가 다 보였을까. 살아생전 큰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아버지를 하늘처럼 섬기며 살았던 엄마가 잔소리를 다 했다니 못 가시게 말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아부지요, 그라마 일주일만 계시다가 올라오이소오. 꼭 와야 됩니데이!"

그렇게 아버지는 청도 집으로 다니러 가셨다. 집을 살펴보고 오겠다고 가신 거였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아버지가 청도 집에 도착한 그 날 밤에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가 가시자마자 내가 다친 거였다. 남편도 나도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버지 꿈에 여러 날 나타나서 집에 내려가길 권했다더니 뭔가 내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계신 것처럼 꿈에서 말해 주신 거 같았다.

만약 아버지가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에 내게 사고가 일어났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좌불안석이겠는가. 마치 자신 때문에 딸이 사고가 난 양 생각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사위 보기에도 미안할 것이고 사돈집 보기에는 얼마나 더 민망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 엄마가 미리 아버지 꿈에 나타나서 자꾸 그러셨나 보다.

아버지 꿈에 나타난 엄마, 내 꿈에도 나타나서 이야기 좀 해줘요

꿈은 뭘까. 마음 밑자락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꿈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꿈을 자기한테 맞도록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며 위안도 하고 경계하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는 오래 비워둔 집을 생각하셨을 거다. 고향 동네 사람들도 떠올렸을 거다. 그래서 아버지 꿈에 엄마가 나타나셨겠지. 하지만 나는 내 식으로 해석한다.

그 날 내게 일어난 교통사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일로  늘 바빴던 나는 그 즈음에 가선 몸도 지쳤고 마음도 지쳐 있었다. 그래서 친정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 계신 것도 부담스러웠다. 아버지를 귀찮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 갈 때 쯤 엄마가 아버지를 부르신 것이다.

잠시 다녀 오겠다며 고향 집에 내려가셨던 아버지는 두 달이 다 되도록 그냥 그 곳에 눌러 계신다. 열흘 있다 올라오마 하셨지만 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올라오실 수가 없었다. 딸인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올라 오실 수가 없었다.

한번씩 아버지께 안부 전화 드리면 '나는 괜찮으니 아무 걱정 마라. 잘 지낸다.' 그러신다. 그러나 그 말씀 밑에 깔려 있는 외로움이 보인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어찌해야 할까. 모셔와야 하지만 걱정이 된다.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데, 지금 다시 모셔오면 나한테 모든 책임이 떨어질까 걱정된다. 기력이 있을 때야 같이 지내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는 기력이 떨어질 테고 문 밖 출입을 못 하게 되면, 그 때도 내가 아버지를 모실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에 부담감이 생긴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올리오시라고 자신있게 말씀 드리지를 못한다. 아버지는 내 마음을 이미 읽고 계신 건지 '나는 잘 있다. 걱정하지 마라'고 늘 그러신다. 묻지도 않는데 그리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나는 더 이상 강권하진 않는다.

내 꿈에도 엄마가 나타나셨으면 좋겠다. 내 마음의 부담을 알아챈 엄마가 내 꿈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흔쾌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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