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문하생하면 ‘고생’이라는 말이 등식처럼 성립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만큼 실력이 되어 작품에 참여한다면 모를까, 그림을 막 배우고 있다거나 그 단계를 지났다 해도 한동안은 돈은 생각하지 말아야 할 만큼 받는 돈은 아주 적었으니까.
그러나 다들 그렇게 못 벌지는 않았다. 한창 대본소 만화가 활황일 때 인기 있는 작가들은 많은 문하생을 두고 원고를 했는데, 그런 화실에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잘나가는 화실과 그렇지 못한 화실과는 같은 문하생인데도 생활에 많은 차이가 났고 그건 먹는 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한때 일했던 곳은 만화 화실 몇 개가 모여 있던 수유리였다. 내가 일하던 화실 앞과 옆에도 만화 화실이 있었고 거기서 몇 십 미터를 가면 화실 몇 군데가 또 있었다. 내가 일하던 화실은 워낙 그림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한 페이지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런 그림이었다. 맞은편 화실은 그림이 우리 것보다 쉬운 데다 한창 유행하는 그림이라 원고에 참여하는 역할은 같았지만 돈은 우리들보다 몇 배는 더 벌었다.
식당은 화실에서 정해주는데 밥을 먹고 나면 화실마다 있는 장부에 표시를 했고 원고료 받으면 그 장부를 보며 밥값을 계산했다. 철도 소화시킨다는 20대 초반. 왕성한 식욕을 자랑해도 모자를 판에 몇 숟가락 뜨면 없는 백반은 늘 아쉬웠다. 공깃밥을 더 주문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와 동료들이 받은 원고료로는 하루 두 끼를 식당에서 사먹으면 끝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우리를 포함해 근처 화실에서 밥을 먹으러 사람들이 나왔다. 말 붙이기 어려운 선배들을 빼놓고는 우리랑 나이대가 같거나 만화원고에 맡은 역할이 같으면 금세 친해졌다. 나와 친구들은 음식을 고르는데 고민하지 않아도 될 백반이었지만, 돈 많이 버는 그들은 주로 제육볶음이었다.
친구 가운데 넉살좋은 애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사는데 꽤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 그 친구로 인해 그들 자리로 가 같이 밥을 먹었다.
눈치 때문에 제육볶음을 덥석하고 집지는 못하지만, 은근슬쩍 모른 척하고 입에 넣은 고기 한 점은 얼마나 꿀맛이던지. 나와 동료들이 지나간 자리는 설거지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했는데, 아마 제육볶음이 나온 접시까지 씹어서 먹으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 그렇게 했더니 앞 화실 애들이 우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빈대처럼 달라붙어 자신들 음식을 뺏어먹는 우리가 부담스러웠는지 우리를 피해 식당을 갔다. 그러나 우리 레이더를 마냥 피할 수 없었다. 가난은 자존심을 세게 만들기도 하지만 배고픔은 그걸 뛰어넘게도 한다. 우린 그들이 식당에 들어가고 난 뒤, 그러니까 제육볶음이 딱 나올 시간에 우연인 척하며 들어가 같이 앉아 밥을 먹을 만큼 조금 뻔뻔하기도 했다.
그럼 그 여유 있는 화실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이 달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는 나중에 좀 더 큰 작가가 되길 원했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을 쫓아 움직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신세 아닌 신세를 지면 고료를 받는 날 통닭에 생맥주 한잔이라도 꼭 샀다.
내 젊은 날, 사람을 치사하게 만들었던 그 제육볶음이 생각나 만들어 봤다.
일단 요리는 쉬어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요리하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빼고는 복잡한 요리는 귀찮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제육볶음에 가장 중요한 고기. 비계가 반쯤 있는 두툼한 돼지고기 목살이 있어야 하는데 한 3000원어치 사면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삼겹살로 해도 된다. 돼지고기는 뭐니뭐니해도 누린내를 없애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애써서 만들었는데 돼지 누린내가 나면 먹는 사람이 곤란하고,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이 그러니 좋을 리 없다. 다들 나름대로 비법이 있겠지만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들의 공통점은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다음은 양파, 양배추, 버섯, 당근, 파, 풋고추와 양념으로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굴 소스, 달걀흰자, 마늘 다진 것, 생강, 감자가루 푼 물을 준비한다. 채소는 집에 있는 걸 넣어도 된다. 만약 양파만 있다면 아쉬운 대로 그것도 괜찮다.
먼저 된장 푼물에 생강을 넣고 돼지고기를 삶는다. 집에 끓여놓은 된장국이 있다면 조금 덜어서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도 된다. 이렇게 하면 돼지 누린내도 없애고 삶아서 기름기도 줄이니 칼로리도 낮아 일석이조라 하겠다. 살찌는 거에 민감한 사람들도 이렇게 하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마늘과 생강으로 냄새를 잡는다면 그냥 해도 좋다.
돼지고기가 삶아졌다면 꺼내어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달걀흰자만 넣어 조물조물 주물러 놓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채소(양파, 양배추, 버섯, 당근, 파 풋고추)를 넣고 양념(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과 굴 소스를 1대1로 섞는다)을 넣고 볶는다. 여기에 만들어놓은 돼지고기를 넣어 마늘 다진 것과 볶아주고 마지막에 감자 가루 푼 물을 두르고 센 불에서 재빨리 볶으면 걸쭉하고 맛난 제육덮밥이 된다.
이렇게 만들고 보니 그 옛날 친구들이 그립다. 다시 만난다면 내가 뺏어먹었던 것의 몇 배를 만들어 줄 텐데.
그러나 다들 그렇게 못 벌지는 않았다. 한창 대본소 만화가 활황일 때 인기 있는 작가들은 많은 문하생을 두고 원고를 했는데, 그런 화실에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잘나가는 화실과 그렇지 못한 화실과는 같은 문하생인데도 생활에 많은 차이가 났고 그건 먹는 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 제육볶음밥에 쓱쓱 비벼먹어도 좋고 그냥 밥 한술 고기 한 점 이렇게 먹어도 좋다. ⓒ 위창남
식당은 화실에서 정해주는데 밥을 먹고 나면 화실마다 있는 장부에 표시를 했고 원고료 받으면 그 장부를 보며 밥값을 계산했다. 철도 소화시킨다는 20대 초반. 왕성한 식욕을 자랑해도 모자를 판에 몇 숟가락 뜨면 없는 백반은 늘 아쉬웠다. 공깃밥을 더 주문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와 동료들이 받은 원고료로는 하루 두 끼를 식당에서 사먹으면 끝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우리를 포함해 근처 화실에서 밥을 먹으러 사람들이 나왔다. 말 붙이기 어려운 선배들을 빼놓고는 우리랑 나이대가 같거나 만화원고에 맡은 역할이 같으면 금세 친해졌다. 나와 친구들은 음식을 고르는데 고민하지 않아도 될 백반이었지만, 돈 많이 버는 그들은 주로 제육볶음이었다.
친구 가운데 넉살좋은 애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사는데 꽤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 그 친구로 인해 그들 자리로 가 같이 밥을 먹었다.
눈치 때문에 제육볶음을 덥석하고 집지는 못하지만, 은근슬쩍 모른 척하고 입에 넣은 고기 한 점은 얼마나 꿀맛이던지. 나와 동료들이 지나간 자리는 설거지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했는데, 아마 제육볶음이 나온 접시까지 씹어서 먹으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 그렇게 했더니 앞 화실 애들이 우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빈대처럼 달라붙어 자신들 음식을 뺏어먹는 우리가 부담스러웠는지 우리를 피해 식당을 갔다. 그러나 우리 레이더를 마냥 피할 수 없었다. 가난은 자존심을 세게 만들기도 하지만 배고픔은 그걸 뛰어넘게도 한다. 우린 그들이 식당에 들어가고 난 뒤, 그러니까 제육볶음이 딱 나올 시간에 우연인 척하며 들어가 같이 앉아 밥을 먹을 만큼 조금 뻔뻔하기도 했다.
그럼 그 여유 있는 화실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이 달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는 나중에 좀 더 큰 작가가 되길 원했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을 쫓아 움직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신세 아닌 신세를 지면 고료를 받는 날 통닭에 생맥주 한잔이라도 꼭 샀다.
내 젊은 날, 사람을 치사하게 만들었던 그 제육볶음이 생각나 만들어 봤다.
일단 요리는 쉬어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요리하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빼고는 복잡한 요리는 귀찮아 하기 때문이다.
▲ 제육볶음안에 들어갈 갖은 채소들. ⓒ 위창남
먼저 제육볶음에 가장 중요한 고기. 비계가 반쯤 있는 두툼한 돼지고기 목살이 있어야 하는데 한 3000원어치 사면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삼겹살로 해도 된다. 돼지고기는 뭐니뭐니해도 누린내를 없애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애써서 만들었는데 돼지 누린내가 나면 먹는 사람이 곤란하고,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이 그러니 좋을 리 없다. 다들 나름대로 비법이 있겠지만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들의 공통점은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 제육볶음된장 푼물에 돼지고기를 삶는다. ⓒ 위창남
다음은 양파, 양배추, 버섯, 당근, 파, 풋고추와 양념으로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굴 소스, 달걀흰자, 마늘 다진 것, 생강, 감자가루 푼 물을 준비한다. 채소는 집에 있는 걸 넣어도 된다. 만약 양파만 있다면 아쉬운 대로 그것도 괜찮다.
먼저 된장 푼물에 생강을 넣고 돼지고기를 삶는다. 집에 끓여놓은 된장국이 있다면 조금 덜어서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도 된다. 이렇게 하면 돼지 누린내도 없애고 삶아서 기름기도 줄이니 칼로리도 낮아 일석이조라 하겠다. 살찌는 거에 민감한 사람들도 이렇게 하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마늘과 생강으로 냄새를 잡는다면 그냥 해도 좋다.
▲ 제육볶음달걀 풀어놓은 것과 감자가루 푼물. 원래는 달걀흰자만 쓰려고 했는데 아까워 다했다. ⓒ 위창남
돼지고기가 삶아졌다면 꺼내어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달걀흰자만 넣어 조물조물 주물러 놓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채소(양파, 양배추, 버섯, 당근, 파 풋고추)를 넣고 양념(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과 굴 소스를 1대1로 섞는다)을 넣고 볶는다. 여기에 만들어놓은 돼지고기를 넣어 마늘 다진 것과 볶아주고 마지막에 감자 가루 푼 물을 두르고 센 불에서 재빨리 볶으면 걸쭉하고 맛난 제육덮밥이 된다.
▲ 제육볶음다 만들어진 제육볶음. 고기가 꽤 푸짐하다. ⓒ 위창남
이렇게 만들고 보니 그 옛날 친구들이 그립다. 다시 만난다면 내가 뺏어먹었던 것의 몇 배를 만들어 줄 텐데.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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