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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도 “전화사기 조심하세요!”

[양속(兩屬)의 땅 대마도 ②] 공공의 언어 기호로 본 대마도

등록|2008.01.18 12:49 수정|2008.01.18 12:49
거친 대한해협의 한가운데에 떠 있는 대마도. 그 덕분에 청정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대마도. 그 대마도인들은 어떤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을까?

어찌 보면 인간의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같기도 하지만, 대마도도 인구 4만 명이 사는 곳이므로 여러 가지 일상적인 관심사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대마도 곳곳의 선전문구나 포스터 등에 표시된 공공의 언어기호를 통해 그곳 사람들의 최근 관심사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외딴 섬에서도 전화사기가…

▲ 하타카쯔항 대합실 유리문에 붙은 전화사기 피해방지 포스터. ⓒ 김종성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전화사기 방지 포스터였다. 최근 한국에서 속출하고 있는 전화사기 피해가 이런 외딴 섬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나 싶어서 특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전화는 어디에나 다 설치되어 있는 것이므로, 대마도라고 해서 무작위로 쏘아대는 전화사기 공세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마도가 소속된 나가사키현에서 대마도 북부 하타카쯔항 대합실에 붙인 포스터에는, ‘입금사기 사고 다발’이라는 제목 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나예요! 나! 나!”라며 뭔가 급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자 할머니는 ‘주인 양반이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합의금이 ……?’라며 의아해 하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제3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런 사기에 속아 넘어갈 수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막상 그런 일에 부딪히면 누구나 다 잠깐이나마 가족의 신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일지라도 가족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진위 여부가 확인되기까지는 누구나 다 초조해 할 것이다. 그런 초조함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일단 입금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위 포스터에서는, 그런 경우에 입금부터 하지 말고 먼저 가족이나 경찰에게 연락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통신 발달을 배경으로 범죄가 점차 광역화, 국제화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 로또복권(왼쪽) 및 주차요금 안내(오른쪽) 광고. ⓒ 김종성


한국과 다를 것 없는 풍경

한편, 대마도 남부인 이즈하라시 시내에 있는 로또 복권 광고와 주차요금 안내광고, 하타카쯔항 대합실에 붙은 음주운전 박멸광고, 대마도 어느 곳엔가 붙어 있는 20세 미만 담배 판매금지 전단 등은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풍경일 것이다.

특히 이즈하라시 시내 서점 창문에 붙은 “2억 엔(약 18억 원)이 부른다”는 로또 복권 광고는 책과 복권을 함께 판매하고 있는 서점 주인의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어서, 바닷바람이 차가워 몸을 웅크리고 있던 차에 그나마 잠시 웃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즈하라시의 대형 쇼핑센터 로비에 붙은 “90분 무료”라는 주차 안내문구는 이곳이 주차공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시골’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 외딴섬의 가솔린세 인하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왼쪽)과 지역격차 해소를 천명하는 자민당 국회의원의 연설광고(오른쪽). ⓒ 김종성



이 외에, 대마도 사람들만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들도 많이 있다.

대마도 최대 산업인 관광산업의 근간이 되는 청정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자연보호를 강조하는 선전문구들이 유난히 많다. 특히 한국인 낚시여행자들이 던지는 밑밥으로 인한 환경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선전문구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외딴섬의 가솔린세 인하를 위한 서명 캠페인은, 수송비 때문에 기름 값이 유난히 비싼 대마도인들의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지역격차 해소를 표방한 자민당 소속 다니가와 야이치 중의원 의원의 연설광고 포스터는 유난히 낙후된 대마도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짝퉁상품을 경고하는 포스터. ⓒ 김종성


한편, “테러 경계 중”이라는 문구와 “짝퉁 물건은 그만!”이라는 포스터는 대테러전쟁 구도가 지배하는 현재의 세계질서와 짝퉁 제조 같은 국제적 범죄가 외딴섬 대마도에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마도인들의 공공 관심사도 한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청정환경 보호나 유가 문제 또는 지역격차 등과 관련하여서는 대마도인들이 그들 나름의 혹은 남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대마도에서 특히 더 느낄 수 있는 것은 생존에 대한 강렬한 의지다.

대마도인들의 강렬한 생존 의지

예를 좀 더 들자면, 거리나 건물 곳곳에 한글이 많은 점, 현재 엄연히 일본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를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다는 점 등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려는 대마도인들의 고민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익현 선생이 누구를 특히 미워했는지를 생각하면, 이곳에 ‘최익현 순국비’라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로워질 것이다.

이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한반도와 일본열도 중 어느 곳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옛 대마도인들의 정서가 오늘날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엄연히 일본국 영토인 그곳에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를 안내하는 문구가 거리에 붙지는 못했을 것이다. 

▲ 최익현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의 위치를 알리는 문구. 한자와 한글로 ‘최익현 순국’이라고 쓰여 있다. ⓒ 김종성


예나 지금이나 대마도인들의 최우선적 관심사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기에 이런 분위기가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대마도인들의 관심사에는 아랑곳없이, 대마도를 방문하는 일부 한국인들은 “이곳도 우리 땅이었다”는 관념에 집착한 나머지 대마도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 것이냐 아니냐?’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어느 땅의 역사적 영유권을 규명하거나 어느 땅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려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침착함을 잃게 되면, 아무리 우리 것이었다고 해도 제대로 지키기가 힘들 것이다. 하물며 남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것을 되찾고자 한다면 한층 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되찾으려 하기 전에 혹은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려 하기 전에, 일단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 그것이 진정으로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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